[7광구] 산유국의 꿈, 블록버스터의 몽상

2011. 8. 9. 11:37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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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이다. 그런데 면적대비 인구는 참 많다. 다행인 것은 야무진 꿈을 꾸는 똑똑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수출도 많이 하고 크리에티브한 작품도 많이 생산해낸다. 이런 한국에 없는 것은? 없는 것도 많지만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석유(원유)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유까지 난다면 정말 대단한 나라가 될 터인데 말이다. 1970년대 초 이 나라에 난리가 났다. 제주도 남쪽 먼 바다 밑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바다를 몇 개의 섹터로 나눴는데 7광구(섹터7)쪽 바다이다. 제주도 남쪽, (일본 땅) 오키나와 북쪽 지역이다. 당시 추산으로는 8만 평방킬로미터의 이 바다 밑 해저 유광에는 석유와 가스가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와우~

옛날 서부영화를 보면 골드러시 시절 캘리포니아로 몰려간 사람들이 강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멕시코 쪽으로 내려가면 광산에서 석탄 캐듯이 금맥을 캐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바닥 모래를 하루 종일 채로 치고 산더미를 갈아엎어야 비듬 같은 금 조각을 조금 긁어모을 수 있다. 7광구 바다 밑 상황도 유사하다. 석유가 얼마나 매장되어있는지, 투입대비 산출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탐측장비 등 과학기술의 정도와 관련된 사람들의 노하우, 열정의 차이일 것이다. 이미 4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석유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전쟁을 몇 번이나 치러야했으며, 최근에는 일본대지진이 몰고 온 원전위협론까지 맞물러 7광구 석유가 다시 한 번 주목받을만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도대체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영화 한편이 7광구 석유이야기를 뱉어놓는다.


하지원, 7광구에 구멍 뚫다




김지훈 감독의 <7광구>는 제주도 앞바다 ‘7광구’의 시추선 이야기이다. 10여 년 전 안성기와 정인기(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하지원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배우이다!)는 7광구 심연의 바다에서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 사투를 펼친다. 해상에는 커다란 시추선이 떠있고 바다 깊숙이 시추봉이 박히고. 그 넓은 바다 밑바닥 여기저기 수십, 아니 수백 군데에 시추봉을 꽂아본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기를 기대하며. 그런데 어느 날 바다 밑에 시추봉 상황을 점검 나갔던 정인기는 원인불명의 사고를 당해 죽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의 딸 하지원이 다시 그 시추선에 탑승하여 아버지의 대를 이어 7광구 바다 바닥 이곳저곳에 시추봉을 꽂는다. 산유국의 희망을 접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날 시추봉을 통해 올라온 것은 뻘과 함께  심해생물체 (물고기 치어)였다. 이놈을 수조에 넣어두고 이들은 또 다른 곳에서 시추작업을 진행한다. 벌써 몇 년째. 선장은 시큰둥해하고 철수를 준비한다. 그런데 안성기가 헬기로 날아와서는 조금만 더 캐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기대하는 석유(원유)는 없고 정체불명의 괴물이 시추선을 지옥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시추선의 선원들은 하나둘 죽어나가고... 하지원은 살아남기 위해 총을 들고, 오토바이를 몰며, 기중기를 운전하고, 대형 믹서기(?)를 작동시킨다. 괴물은 살아남을까?




재밌을 영화, 재미없는 영화


정체불명의 괴물체 습격을 다룬 영화는 많다. 심해에서도, 우주선 속에서도 (▶에일리언 리뷰 ▶이벤트 호라이즌 리뷰) , 망망대해 시추선 갑판 상황은 유사하다. 과학탐사에 나선 전문가가 있을 것이고 개척정신이나 도전의식이 넘쳐나는 용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세상과는 격리되어 있다. 통신연락방식은 일찌감치 끊어져서 고독한 사투를 펼쳐야하는 것이다. 이 괴물체가 지구(인간세상)에 떨어지면 그야말로 인류멸망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7광구>는 그런 면에선 충실하다. 심연의 괴생물체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시추선에 등장하고 그게 무럭무럭 자란다. 괴물영화에서는 보통 무성생식의 한계를 돌파하여 무한번식과 증식을 거듭하여 울트라생물 성체로 변이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크리에티브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화지에 괴물 그려보더라도 한계는 있는 모양이다. 외계인을 그려보다면 손가락 길쭉한 E.T.에서 오십 보 백 보이고, 괴물체는 끈적끈적한 침을 질질 흘리는 H.R.기거 작품에서 플러스마이너스이다. <7광구>의 괴물도 비슷하다. 오리지널(?)에 <고스터버스터즈>의 먹깨비와 바다사자를 합쳐놓은 듯하다. 수조에서 헤엄치던 놈이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시추선 속 미로를 마구 헤집고 다니는 진화를 이루었는지 미스터리이다.


영화 속 괴물은 사실 생김새보다 그 생존방식이 흥미롭다. <에일리언>이 여전히 거론되는 것은 모성애라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종족번식에 대한 욕망이 사투의 동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7광구> 괴물은 그냥 우연히 세상에 튀어나왔다. 인간들을 왜 그렇게 잡아먹으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배가 고파서? 만약, 이 시추선의 소속이 다국적 석유회사였다면 ‘인간의 탐욕과 난개발이 부르는 엄청난 재앙’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면은 없어 보인다.


그럼 뭐야? 아, 이 영화는 그냥 오락영화이다. 한 여름 수많은 극장 스크린을 장악할만한 배급력을 가진 영화사를 통해 더위를 날려버릴 쾌감과 재미를 안겨주면 되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면 이 영화 재밌다. 하지원이 달리는 것도 귀엽고, 오지호가 쭈빗거리는 것도 이해가 되고, 안성기가 인상 쓰는 것도 용납가능하다. 할리우드가 만들었음 분명 돈이 더 들었을 것이고 유럽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다면 괴물이 더 혐오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한국적인 정서와 충분히 오락영화의 본령을 지킨 오락물인 것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웃기기도 하다. 특히나 괴물을 앞에 두고 ‘박수 치는’ 작태라니!


석유가 있다면 재밌을 영화


다시, 영화는 잠깐 잊고 다시 오래된 ‘7광구’ 관련기사를 찾아보거나 2028년 이후의 상황을 그려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중동 석유 값은 더욱 치솟을지 모르고 일본과의 외교 분쟁은 더욱 격렬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또한 그 바다를 탐낼 것이고 말이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인간은 여기저기서 멀리서 배 타고 와서 해저 밑바닥을 바늘같이 뾰족한 도구로 콕콕 찌르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그래서 심해 생물체가 화가 난 모양이다. 아, 그럼 이건 환경보호를 다룬 작품이란 말인가? <7광구>는 그런 영화이다. 적어도 관객을 화나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박재환, 20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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