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비키니] ‘인디’ 영화감독의 자격 (오영두 감독 Invasion of Alien Bikini , 2010)

2011. 8. 19. 11:10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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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는 적어도 중년 남성들에게 삶의 활기를 되살리는 공익성격의 프로그램이다. 그 동안 수많은 ‘회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남자의 도전은? 합창단일 수도 있고, 전투기를 몰아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방송된 것 중 흥미로운 것의 하나는 ‘영화배우가 되어보는 것’이었다. 10월 3일부터 2주 연속으로 방송된 <<남자와 초심>> 코너에 포함된 것이었다. 개그맨 이경규, 가수 김태원 등 남격 멤버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웃고 울리는 것이었다. 지금은 ‘불미스런 일’로 방송에서 빠진 김성민은 초심 편에서 재미있는 역할을 맡는다. 촬영 중인 한 독립영화의 단역배우로 출연하는 것이다. ‘봉창’ 김성민은 <두사부일체>의 세 번째 작품 <상사부일체>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영화배우보다는 탤런트, 그리고 그것보다는 <남격> 멤버로 더 기억된다. 그가 독립/인디 영화에 출연한 것은 자신의 초심을 자극하는 신선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는 특유의 예능감을 마구 발산했다. 당시 김성민이 출연한 영화는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였다. (<남자의 자격> 방송당시, 그리고 영화제작 당시 방송에서 노출된 제목이다.) 귀가 솔깃해지는 제목이다.

우선 독립영화라니. 일본침략군에 맞서는 독립군을 다룬 영화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 대한 열정하나로 뭉쳐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단의 무리를 말한다. 돈(예산)으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이고 일반적으로 독립영화라면 자본(충무로가 되었든 금융자본이 되었든)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영화감독 자신이 만들고 싶은 주제를 자신만의 미학으로 완성하는 영화를 말한다. 이런 영화는 열정과 재미로 만들지만, 일단 완성시켜놓고도 개봉관 잡기도 어렵다. 보통은 영화제를 통해 극소수의 관객에게만 잠시 소개된다. 이 작품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극장상영은 언감생심인데 일본에서 열린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덜컥 그랑프리를 받는다. 상금으로 200만 엔(2700만원)을 받았단다. 그리고 이어 열린 국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의 열화같은 환호를 받았다. 이 영화는 어제 개막된 CINDI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된 후(8/18. 8/22) 다음 주 부터 몇몇 극장에서 제한 상영될 것이다. 독립영화로서는 정말 행운이다. 국내최고의 공중파TV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 -의 최고 인기예능프로그램에서 사전홍보까지 한 셈이니 말이다. 사실 국내 극장에서의 흥행수익은 미미할 것이다. 대신 해외영화제에서 줄줄이 출품되어 꽤 많은 상을 받거나 덤으로 상금을 받게 되고 운이 좋으면 판권이 팔려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감독은 그 돈으로 또 다시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이고 말이다.

이런 영화라니? 이 영화는 확실한 B급 취향의 저예산독립영화이다. 저예산저예산 하는데 얼마가 들었을까. 김성민은 우정/특별/찬조출연이니 무보수였던 셈이고 나머지 배우들도 감독과 뜻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즉, 무료출연자-이다. 그만큼 B급 취향 물씬 풍기며, 저예산독립영화로서의 애정이 절절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가장 확실한 A급은 분장이다. 외계인에 두들겨 맞아 생긴 상처, 피. 분장은 감독의 아내가 맡았단다. 15년 경력의 충무로 영화분장사 출신이란다.

비키니 입은 외계인, 지구남자를 범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서울의 밤거리를 보여준다. 명동. 주인공 ‘영건’(홍영근)은 독특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남자이다. 바른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는 정의사회구현의 신봉자이다. 오늘도 서울 밤거리를 배회하며 나홀로 순찰활동을 계속한다. 인적 끊긴 서울의 밤거리 구석구석을 돌며 불법과 범죄의 현장을 단속한다. 그렇다고 고담시티의 베트맨같은 품격과 아우라를 기대하진 마시라. 보기에도 측은해 보이는 영건이니 말이다. 오늘밤 그의 눈앞에 범죄가 펼쳐진다. 몇몇 남자들이 여자(하은정) 하나를 쫓고 있는 것이다. 영건은 여자의 비명소리에 정의감이 불끈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들 남자들과 격투가 벌어진다. (이젠 수준급에 도달한 충무로액션을 기대하진 마라! 왜냐 B급 저예산영화이니!) 어쨌든 영건은 나쁜 남자들을 물리치고 여자를 일단 자신의 누추한 집으로 데려온다. 초라한 단칸방이지만 웰빙한 삶을 추구하는 영건은 여자에게 십전대보탕을 내놓는다. 알고 보니 이 여자 보통 여자가 아니다. 외계인이다. 그것도 나쁜 외계인이다. 영화설명을 보면 이 외계인은 종족번식을 위해 지구에 급파된 에일리언으로 날이 밝기 전에 최상의 지구인 정자를 얻어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일리언이 왜 <7광구>같이 징그럽지 않냐면 그럴 분장을 할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포스터처럼 그냥 지구인 처자 모양새의 ’에이리언 비키니‘ 차림이다. 지구인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생고생하는 지구남자 ’영건‘은 사정이 무지 급한 ’에이리언 비키니‘의 요청을 받아들일만한데 무지 고지식하다. “전, 안 돼요. 전 순결서약 절대 신봉자에요. 결혼도 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전 못해요...” 세상에 이런 어리바리 지구인이 있었나. 날이 밝기 전에  목적을 이루어야하는 외계인. 본색을 드러낸다. 남자를 묶고 강제로.....
(영화홍보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과연 숫처녀 영건은 미녀 에일리언 꽃뱀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 순결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김성민의 도전, 오영두의 도전

오영두는 이 영화의 감독이름이다. <남격> 김성민은 이 작품에서 초반 여자외계인을 쫓는 외계인추적대의 대장 역을 맡는다. <남자의 자격>에서는 인디영화촬영에 완전 몰입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완성된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성민은 몸을 사리지 않고 마구 뒹굴고 싸우고 나가떨어진다. 얼굴은 상처투성이이다. 이런 액션 씬은 영화에서나 TV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인디영화는 그런 장면 촬영마저 쉽지 않다.

왜, 숫청년 영건은 밤에만 배회할까. 외계인이 밤에만 출몰하여? 아니, 지나가는 사람 안 걸리게 서울시내를 맘껏 찍을 수 있는 것은 그 시간대뿐이니. 조명(+발전차량) 동원할 돈이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울시내 가로등 밑에서 ‘자연’조명으로 영화를 대부분 찍는다. 다행히 <남격>촬영팀이 오니 그 덕분에 병원 옥상 씬도 찍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엔 이 정도 규모의 영화 찍는 것도 돈이 많이 들었다. 이제는 동영상까지 찍을 수 있는 DSLR이 등장하여 인디감독들은 행복해진 셈이다. (이미 TV에서도 이 모델로 드라마를 찍기도 했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을까? 500만원이란다. 보통 촬영은 오후 2시 이후. 왜냐하면 밥값을 아껴야하니 알아서 밥 먹고 오라고.
이렇게 열정하나로 영화 찍는 사람은 많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릴 때 아버지의 8밀리 카메라로 단편을 찍었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이다. <반지의 제왕> 만든 피터 잭슨은 뉴질랜드 청년시절 동네친구를 모아 <배드 테이스트>라는 전설적인 B급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은 충무로 스태프시절 자투리필름 모아 엮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만들어 충무로 메인스트림으로까지 성장했다. 사실 알고 보면 충무로가 아니어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런 식으로 영화 만드는 사람 많다. 하다못해 아이폰으로도 영화 찍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오영두 감독은 ‘키노망고스틴’이라는 독특한 영화제작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이 영화 전에 <이웃집 좀비>를 그렇게 만들었고, 아마도 다음 작품도 이렇게 만들 모양이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충무로에 정착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헐리우드에 진출하게 될지 누가 알리오.

그럼, 영화는?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김성민 말고는 전부 생소한 배우들이 결사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보면 관객들도 ‘영화에 대한 열정’에 전염될 정도이다. 영화는 결국 지구인의 생체정보(정자)를 강탈해가는 외계인의 침략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것은 영건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이다. 영건은 아마도 아동학대를 받은 모양이다. (<초능력자>에서의 강동원처럼. 영건은 강동원같이 멋지게 성장하지는 않는다. 왜냐 B급 영화라서! ) 그런데 영화는 그런 에피소드와 주제를 굳이 연결시키며 강요하진 않는다. 철저하게 오락성을 추구하니깐. 저예산영화의 미덕인 셈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저리 자극적(?)일까? 감독이 외국영화제에서 외국기자에게 들은 말이란다. “영화제에서 환영받는 영화의 제목은 습격, 외계인, 비키니 이런 단어가 들어가야 한단다.” 그래서 그걸 다 사용했다는 것이다. 헐. 그런 심오한 뜻과 이런 심플한 스토리가 있었나. 3D가 아니라면, <아바타>나 <에일리언 비키니>의 티켓 가격은 같다. 그렇다고 저예산영화라고해서 이 영화를 천원에 볼 수는 없는 노릇. 즐거운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키노망고스틴의 <에일리언 비키니>를 제돈 내고 보시라. 나중에 이들이 <아바타의 제왕>이나 <반지의 습격>을 헐리우드에서 찍을지 누가 알겠는가. (박재환, 20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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