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13. 10:28ㆍ한국영화리뷰
(박재환 2008.09.25.)9년째, 450회째 계속 되는 부부전쟁 실황중계드라마
KBS의 장수 인기프로그램 중에는 [전국노래자랑] 말고도 ‘가족’ 드라마가 한 편 있다. 금요일 심야 시간대에 2TV를 통해 방송되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란 시추에이션 옴니버스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1999년 10월 22일 첫 방송되었다. 첫 회 제목은 [정공팔과 고춘자]였다. 이들은 결혼 11년차 부부이다. 아내와 불임과 남편의 사업부도, 그에 따라 흔들리는 가정경제, 덧붙여 남편이 자주 찾던 술집 여자의 등장 등으로 이 부부는 가정중재위원회까지 가게 된다. 1회분 연출은 장성환PD가 맡았었고 중견 탤런트 전원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후 매주 금요일 밤 [사랑과 전쟁]은 이달현, 이재우, 곽기원, 성준해 PD 등 KBS의 많은 드라마PD들이 거쳐 가면서 오늘날까지 그 인기를 유지해 오고 있다. 지난 주(9/19) 방송된 451회 <위장부부>의 경우 시청률 10%대, 점유율 20%를 이끌어내었으니 방송사 입장에선 <부부클리닉>은 여전히 블루칩인 셈이다.
KBS, 드라마를 개척하다
콘텐츠진흥 차원에서 TV방송물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해볼 만한 시도이다. 이미 KBS의 많은 프로그램이 영화화되었다. <맨발의 기봉이>나 <귀휴>(마지막 선물) 같은 영화는 <인간극장>에서 소개되면서 영화화 되었다. 역시 KBS의 인기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은 조금 특이한 경우이지만 ‘브랜드’의 유명세만으로도 한국판 공포물의 영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작년 <올드 미스 다이어리>가 같은 연출자, 같은 배우로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작품목록에 새로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더해 진 것이다. 이른바 원쏘스 멀티유즈라고 하는 콘텐츠재활용/확대재생산인 것이다.
드라마의 블로우업
그럼 이 드라마는 왜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사랑과 전쟁>은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시청자입장에선 누구나 공감할만한, 실현가능할 것 같은, 절대 남의 이야기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을 소개한다.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고, 위안도 얻을 수 있으며, 일상의 도피처가 될 수 있는 희한한 소재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450회나 계속되면서도 끊임없이 외도와 불륜과 이혼소재가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학적으로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 문제는 잠시 놔두고 영화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남편의 외도, 아내의 맞바람, 커져가는 파문
영화 <사랑과 전쟁- 열두 번 째 남자>는 TV에서 보여준 여러 사례들의 집대성이다. 행복해 보이는 한 집안이 문자메시지 하나로 이혼극으로 치닫게 된다. “당신의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다!” 호러영화에 등장하는 살인예고 메시지만큼이나 효과적이다. 곧이어 남편외도의 상대가 아내의 친구인 것이 드러나고 아내는 홧김에 맞바람을 피우고, 남편의 외도의 사유가 비뇨기학적인 원인- 혹은 심인성 발기부전에서 기인한 섹스리스였음이 드러나고 위기의 부부는 서초동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단 한차례 맞바람이 꼬리를 물고 사건을 불러일으켜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그래서 모든 남자가 한 번씩 집적대는 소동극이 벌어진다.
메디컬 드라마냐 코미디냐
TV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19금 영화답게 영화판 <사랑과 전쟁>은 성인물이다. 영화상영이 시작되고 타이틀이 올라갈 때 화면은 뜬금없이 남여의 질펀한 정사 씬을 보여준다. 갑자기 한밤의 케이블 성인채널을 보는 것 같은 상황. 하지만 곧바로 영화는 부부이혼법정 드라마로 이어진다. 보여주는 화면보다는 ‘위기의 부부’가 처하는 위태위태한 줄타기가 드라마를 이끄는 장치이다. 8년간 부부관계 없이 (겉으로 보기엔) 행복하게 살아온 커플, 외도의 정체가 8년간의 플라토닉 러브라는 설정, 동네 어린애(사실은 대학생)까지 “누나, 좋아해요”라고 끼어드는 과장된 러브라인 등은 이 영화를 전문적인 성(性)지식, 혹은 법률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게 만든다. 특히 차곡차곡 쌓여가던 인간관계가 폭발하는 경찰서 씬은 코미디 작가가 배워둘만한 부문이다. 사실 <사랑과 전쟁>의 매력은 부부 이혼극에 삽입되는 짧은 소극(笑劇)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다. TV드라마 1회에서는 이혼위기의 부부 이야기를 하다 여자주인공이 3층에 떨어지고 길에서 볼일 보던 남자가 깔려 다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사랑과 전쟁>은 [TV로펌]에나 등장할만한 이혼부부 법률공방전, 황당한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을 통해 웃고 마는 코미디,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가족의 재결합을 유도하는 건전한 가정극 등 잡다한 장르가 결합된 버라이어티 드라마인 것이다.
영화는 영화다
궁극적으로 영화 <사랑과 전쟁>은 드라마 <사랑과 전쟁>과 얼마나 다른가. TV에서 다 못 보여준 것이란 게 베드 씬만은 아닐 것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사랑과 전쟁> 전문 배우들의 화끈한 몸 연기가 이 영화의 셀링 포인트는 결코 아닐 것이다
. 요즘 세상엔 그것보다 더 ‘쎈’ 영상이 당신의 TV에서 마구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TV는 영화가 되고, 영화는 TV가 되고, 필름은 디지털콘텐츠가 되는 2008년 식 영화감상의 기이한 포맷변환의 한 과정일 뿐인 것이다. 이 점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전혀 별개인 것이다. 이 영화는 미드 <위기의 주부>를 좋아하든 KBS <사랑과 전쟁>을 좋아하든 상관없이 롯데백화점에 쇼핑 나갔던 아줌마들이 소원해진 부부관계에 대한 예방차원에서 한번 봐 주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영화는 킬링타임용 ‘행복한 부부’ 가이드이니 말이다. (박재환 200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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