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남들 거의 다 아는 이야기.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에 얽힌 파란만장한 역사담이다.
‘아메리카’ 들어가기 전에 우선 다른 나라 이름부터. ‘한국’의 어원은 아마도 ‘한민족의 나라’일 것이고 영문명 ‘Korea’는 고려(高麗)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일본(日本)은 6세기 경 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서한을 보낼 때 자기들의 나라가 ‘해가 떠오른 땅‘이라는 의미에서 일본으로 호칭했다. 영문 ’Japan‘은 더 복잡하다. ’日本‘의 중국어 발음일테지만 지금 발음은 [르-번/ 르-뻔]에 가깝다. 그런데 이게 고대(6세기 전후) 중국에서는 어떤 발음으로 읽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개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Cipangu‘로 설명한다. 주로 상하이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이 지역 중국어로 ’日本‘은 [즈뻔] 정도로 발음된 모양이다. Zeppen/ Jepang/ Jepun이 지금의 영문 국가명 Japan에 가깝고, 서유럽 쪽에는 Cipangu/ Zipangu/ Jipangu 정도로 알려졌을 것이다. 세계의 중심, 중국(中國)의 영문이름 China는 진시황의 진(秦) 'Chen'에서 유래한 것이고....
자, 다시 그럼 오바마 대통령의 나라 미국의 영문이름 America는 어디서 유해했을까. 보통 그 땅을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갖다 붙인다. 통상 미국(정확히는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그 부속 도서의 일부) 땅을 처음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또 다른 인물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말한다. 물론 1492년 10월 11일, 콜럼버스 이전에 이 땅에 상륙한 외부 사람은 있다. 유럽 사람도 있었고, 중국 사람도 있었단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1492년의 콜럼버스만을 중시한다. 그런데, 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콜롬비아’대륙이라 하지 않고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했을까? 정말 콜럼버스는 미국 땅(대륙)은 밟아보지 못하고 중미 대륙의 쿠바나 그쪽 인근 섬만 밟았기에 기준미달이고,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뭐, 플로리다 해변이라도 밟았는가 보다. 과연 그럴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사람이 그 미스테리에 도전했다. 그 땅에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가 무엇인지. 합당한지에 대해 문헌학적인 검토를 시도한다. 재밌다. (아마 mbc의 서프라이즈에서 몇 번은 써먹었음직한 내용이다)
황금을 찾아 동방으로..
물론 모든 역사적 서술은 기독교적 서구인의 시각에서 출발했다. 중동에 이슬람 세력이 들어서고 동쪽으로의 전진은 막힌다.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천신만고 끝에 중국과 동방의 화려함을 유럽인에게 전한다. 하지만 육로로는 황금이 가득하다는 중국/일본/인도 쪽으로 전진할 수가 없다. 대신 뱃길을 찾는다. 서유럽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방법. 너무나 멀고 험하다. 콜럼버스는 다른 방식을 생각한다. 그냥 주~욱 가면 중국에 도착할 것이라고. (그때는 중간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 등을 이끌고 도착한 섬이 인도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도 죽을 때까지. 그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험담을 전해들은 모든 유럽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는 마르코 폴로 이래로 황금이 가득하다는 그 땅에서 기대했던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선단을 이끌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항해했다. 네 차례 항해에서 모두 그는 중남미 섬만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그는 1506년 세인의 무관심 속에 쓸쓸하게 눈을 감는다.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할지 애매한 업적을 남긴 채 말이다. 대신 그 신대륙을 백인의 야욕으로 원주민을 거의 몰살시킨 점령군 최선봉 사령관의 이미지만 남긴 채 말이다.
여기에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등장한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항해과정을 꼼꼼하게 일지로 남긴다. 그리고 그의 모험담은 아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 속에서도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적어도 한 두차례 아메리고는 콜럼버스의 항해에 참가했었던 모양이다. 수많은 뱃사람, 혹은 관리로서 말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은 모른다.
1503년,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자기가 네 번이나 다녀온 곳이 서인도라고 여전히 믿고 있을 때, 유럽 여러 도시에서 작은 책자(팸플릿)가 하나 출판된다. 4~6쪽에 불과하다. 제목은 라틴어로 <<신세계>>(Mundus Novus>>이다. 저자는 알레리쿠스 베스푸치우스란다. 내용은 메디치 가의 주인(!) 앞으로 보낸 여행 보고서이다. 베스푸치우스는 포르투갈 왕의 명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소책자의 내용은 콜럼버스가 본 것과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갔다온 곳이 ‘인도의 어드매’가 아니라 ‘신대륙’이라고 표현한 것 뿐.
신세계 - Mundus Novus - 라는 용어는 수백 년간 유럽에 발이 묶여있던, 그리고 마르코 폴로의 황금 전설에 한껏 부풀어 있던 유럽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표현이었다. 특히나 국왕과 항해를 통해 한몫 크게 보려는 모험가, 상인들에게는 말이다.
몇 년 뒤 그 소책자는 이태리어로 좀 더 내용이 보충된 형태로 발행된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네 번에 걸친 여행에서 발견한 섬들에 대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콜롬버스 이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뱃길로 진짜 인도를 다녀온 바스코 다 가마의 이야기도 흥미로울 수 밖에. 그 시절 인쇄업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엮어서 책을 낸다. (저작권이나, 정확성 같은 것을 엄밀하게 기대하지는 말지어라! <음란서생> 시절에 해당하니...)
1507년 한 인쇄업자는 제법 두꺼운 (126쪽에 달하는) 여행보고문을 출간한다. 그림(삽화/지도)도 많이 넣어서. 이 책에는 ‘카 다 모스토’(서유럽을 떠나 아프리카 서쪽, 지금의 세네갈/기니비사우 정도까지 항해했던 최초의 유럽인)와 ‘바스코 다 가마’(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를 다녀온 최초의 유럽인), 그리고 ‘카브랄’(왕명에 따라 인도로 향하다 폭풍을 만나 브라질에 표착, 그 땅을 포르투갈령으로 만든 항해자), 콜럼버스의 항해, 그리고 베스푸치의 짧은 팜플렛 <신세계> 등, 기존에 나온 항해담을 몽땅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 출판업자는 이 책 제목에 <<새로운 세계와 피렌체 출신의 베스푸치가 새로 발견한 땅들>>이라는 대담한 제목을 붙인다.
이 책 <아메리고>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1507년에 나온 이 불법(?) 인쇄물이 ‘아메리카’의 역사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소개한다. 인쇄업자의 오해였는지, 무지였는지, 실수였는지... 여하튼 ‘새로운 세계’의 발견자는 콜럼버스가 아니라 베스푸치로 낙찰되는 계기가 되었단다. 실제 베스푸치 또한 분명 콜럼버스처럼 그 땅을 밟아본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출판업자(?)의 실수는 점점 정교해지고, 다양해진다.
당시까지만 해도 콜럼스를 포함한 모든 항해자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지도는 AD 1세기 경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였다. 이 책의 지도를 통해 세계를 상상하고, 개척해 나갔던 것이다. (2천년 전, 이 세계지도를 보면 아메리카 대륙이 없다.)
그런데 1507년 또 다른 책이 하나 더 나온다. <<지리학 입문. 그에 필요한 지리학 및 천문학 기본원칙들.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네 번의 여행기 첨부. 또한 평면도뿐만 아니라 구 모양으로 그린, 프톨레마이오스에겐 알려지진 않았다가 최근에 발견된 모든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지도 첨부>>라는 꽤나 긴 라틴어 제목의 책자가 나온다. 이 책은 수학자이며 지리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물러 (퓔라크뮐루스라는 그리스식 이름은 쓰기도 했음), 마티아스 링만(필레지우스라는 필명), 장 바진 이라는 이태리어 -> 라틴어 번역자까지. 이 책은 베스푸치에 대해 더 많은 과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콜롬버스는 빠지고 대신, 작명의 역사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 문장이 등장한다. 발트제뮐러는 지구의 네 번째 대륙(신세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제안을 덧붙인다. “그 대륙을 아메리쿠스가 발견했으므로 오늘부터는 그 땅을 아메리쿠스의 땅, 또는 아메리카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고. 동시에 책에 첨부된 세계지도에도 ‘아메리카’를 기입한다.
근데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당시 왕의 명령에 따라 신세계나 신천지, 식민지 개척에 앞장섰던 야심만만한 정치가도 모험가도 군인도 아니었다. 살아생전 유럽 땅 어디에서 어떤 몰상식한 인쇄업자가 그딴 책을 만들어내고 열심히 읽히고 있을 때에도 본인과는 상관없는 소동이었다. 그런데도 콜럼버스의 위대한(!) 업적을 가로챈 인물로 역사는 기억한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피렌체 태생으로, 1494~96년에 메디치 가문의 사무원으로 에스파냐에 파견되었단다. 메디치 가문은 당시 유럽의 다국적 전당포이자, 전 지구적 규모의 조달본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콜럼버스 항해에 필요한 온갖 물자를 제공했고 그 관리인 자격으로 콜럼버스 항해에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경리사원, 회계사에서 원양어선 재산관리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이 그렇게 화려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았고 자신의 이름이 대륙의 이름에 차용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인쇄업자와 지도업자, 모험가, 독자들이 적절한 시점에 오해와 몰상식, 실수와 오독이 뒤범벅되어 그냥 미국이 ‘아메리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하면 된다. (아메리카 명명과 관련하여 뉴욕 타임스에서는 1천년 내 인류 최대의 실수라고 평가했단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꽤 오래된 책이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독일 나찌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브라질에 정착하였단다. 얼마 뒤 세계대전의 확전에 충격 받고 아내와 자살했단다. 이 책은 그의 사후, 1944년 출판되었다. 그 이후, 지리학적 발견만큼이나 사료발굴도 많았을 터인데 이 책에서 말한 것이 뒤집어질만큼 새로운 발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 땅은 이상한 과정을 거쳐 ‘아메리카’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남미에 있는 커피 많이 나는 나라 콜롬비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대륙은 놓치고 일개(?) 국가 이름으로는 남아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책이다. 참 이 책 나온 출판사는 ‘삼우반’이다. ‘삼우반’은 무슨 말일까. '아메리카'만큼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인터넷 찾아보았다. ≪논어 (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擧一隅三隅反"이다. '한가지 일을 들어 보이면 스스로 반성하여 세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뜻이다. (박재환 2010..7.8)
http://historical-travels.com/2010/01/06/martin-waldseemuller-map/
http://sites.google.com/site/scopertasudamerica/america%3Aa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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