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부영화를 탐닉하고 있다.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쏘아대는 정의의 총질은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 영화를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건국신화를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1492년 콜럼버스부터, 독립전쟁, 남북전쟁, 그리고 보안관과 악당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나라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직접 책으로 낼 생각이고^^)
미국 서부영화를 보다보면 인디언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서부영화 자체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으니 인디언을 만나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한때는 서부영화가 굉장한 인기를 누렸었다. 수많은 장르의 서부영화가 나왔다. 그런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의 모습은 어땠을까. 용감하고, 인간적이며,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를 가졌을까. 절대 아니다. 지난 백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나온 서부영화에 투영된 인디언의 모습은 모두 야만적이며, 우스꽝스러우며, 바보 같은 원시인 모습이다. 말을 타고 떼 지어 나타나서는 도끼를 휘두르며 죄 없는 백인 군인과 백인 여자를 살육하는 살인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괴성을 내지르면서 말이다. 아주 소수의 영화에서만 인디언의 불쌍한 모습이 정면으로 다루어진다. 우리에게까지 소개된 영화가 있다면 아마 단 한편의 영화일 것이다.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했던 <작은 거인>이란 영화! 베트남전쟁이 지지부진하면서, 반전분위기가 일어나고 미라이 학살사건이 전해지면서 미국에서는 수정주의 서부극이 등장했다. <작은 거인>이나 <솔져 블루>같은 영화이다. 이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인디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바로 그 즈음에 아주 유명한 책이 나왔었다. 역사학자이며 작가인 디 브라운이 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다오>라는 책이다. 1970년 첫 출판된 이래 이 책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꾸준히 읽히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심는사람’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2002년 출판되었다. 번역은 전북대 영문과 교수인 최준석 씨가 맡았다.
인디언의 땅,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1492년 스페인 여왕의 지원을 얻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산타 마리아 호를 타고 신대륙에 온다. 물론 그는 산 살바도르와 쿠바 인근의 섬만을 밟았을 뿐 죽을 때까지 북미대륙엔 발을 디뎌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이 신대륙이 아니라 인도인줄 알았다. 그 뒤를 이어 유럽인들이 줄줄이 이 새로운 땅에 몰려든다. 유럽제국의 탐욕스런 군인과 장사치와 종교인들이 총칼을 앞세우고 쳐들어왔고,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대륙 끝자락에 자리 잡았다.
(지금 같은 구글맵이 없던 시절, 인공위성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없던 시절이다!) 북미대륙의 동쪽 끝 해안에 도달한 이들은 그 대륙이 얼마나 광활하고 얼마나 비옥한지, 그리고, 누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모른다. 백인들은 서쪽에서부터 야금야금 전진하기 시작한다. 유럽은 이 땅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하고, 가난한 농부, 야심찬 상인들, 어중이떠중이, 모험가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물론 이 땅에는 토착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콜럼버스 때문에 그들은 인도사람이 아닌 인도사람, 즉, 인디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인디언의 땅을 두고 유럽의 제국들은 식민지 전쟁을 치르고, 결국 미국은 독립한다. 1776년의 일이다. 그때까지도 당시의 백인들은 그 대륙이 얼마나 넓은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서쪽에 더 좋은 땅이 있다는 소문, 서쪽에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서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미국의 인구는 3억 명이다. 1492년 콜럼버스 시절, 북미대륙의 백인 인구는 아마 “0”이거나 아니면 혹시 표류한 극소수 백인들이 있었다면 손가락에 셀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영국 백인은 102명이었다. 백인은 쏟아져 들어왔고, 번식(?)을 거듭했다. 당시 그 땅에 살던 토착인 즉, 인디언은 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백만에서 수천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들은 약탈되고, 학살되고, 죽어가기 시작한다. 1860년에 미국 백인들은 3천만 명을 넘어선다. 이미 그때 인디언의 수는 30만 이하가 된다. 불과 몇 세기만에 대륙의 인종 구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백인들은 주인행세를 시작한다.
서부가 개척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리고 서부가 개척되면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갖가지 비책도 다 동원하기 시작한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넓은 땅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인디언이 문제인 것이다. 탐욕스런 백인들은 자신들은 문명인이라 생각하고 인디언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자신들의 방식을 펼치기 시작한다. 처음엔 동쪽 땅 끝에 도착하여 조금씩 정착하더니, 이제는 대륙을 집어 삼켜버리는 것이다. 백인의 정착과 서부개척에 장애가 되면 군인을 동원하여 오지로, 벽지로, 황무지로 쫓아내버린다.
이 책은 바로 1830년에서 1880년에 즈음하여 미국(백인/정부/군인)들에 의해 사라져간 인디언들의 이야기이다. 인디언들은 광활한 대지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버팔로를 잡아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으로 겨울을 이겨낸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이 와서는 그 땅을 가로지르겠다고 한다. 서부의 황금을 쫓아서. 처음에는 길만 빌려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땅을 내놓으라고 하고, 마지막엔 모두 죽든지 아니면 저 먼 땅으로 이주하라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황무지로 내몰린다. 북미대륙 곳곳에서 인디언들이 내몰린다. 추위와 기아에 인디언들은 죽어가는 것이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인디언의 운명과 관련된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격언이 있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가 소개되었다. (281쪽~)
미군이 인디언을 마구잡이로 몰아내던 1868년 11월 27일 발생한 학살극이다. 오클라호마 와시타 강가에 자유롭게 살던 샤이언족과 아라파오 인디언을 몰아낼 명령을 받은 사람은 제7기병대의 죠지 암스트롱 커스터이다. 커스터가 셰리던 장군으로부터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남쪽으로 앤털롭 언덕을 거쳐 와시타 강 쪽으로 나아가 인디언 거류지 마을을 불태우고 말을 없애버릴 것이며 전사들은 모두 죽이거나 목을 매달고 부녀자와 아이들은 생포해 오라는 것이다. 커스터의 기병대는 마을을 짓밟고 수백 마리의 말을 쏘아 죽인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 늙은 노인과 부녀자와 어린애들을 가려내고 전사들만 골라 쏘아 죽인다 말인가. 비능률적이고 시간낭비라 생각한 커스터는 무차별 사살을 한다. 이게 바로 샌드크리크 학살(1864)에 이어 발생한 또 하나의 학살극이다. 얼마 뒤 코만치 추장 토사위가 셰리던 앞에 투항한다. 토사위는 떠듬떠듬 영어로 “토사위, 좋은 인디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셰리던이 불멸의 명대사를 내뱉는다.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다 죽었어”
이 말은 그 자리에 있었던 찰스 노드스트롬 중위에 의해 옮겨져서 미국 사람들의 유행어가 되었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뿐.. 이라는 말로.
점령군 백인에 맞서 싸운 인디언 전사들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제로니모처럼 모두 백인의 총칼에 쓰러진다. 그리고 미국은 백인의 나라가 된다. 인디언은 죽고, 죽고, 또 죽어. 겨우 소수만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곳에 내몰려 명맥만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인디언’이란 명칭이 참으로 부조리하게 명명되었듯이 ‘인디언 보호구역’이란 것도 대단히 괴이한 수용소이다. 인디언을 처음 이상하게 보았던 것은 아마도 오래 전 본 영화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의 거인 인디언이었다.
인디언의 슬픈 역사를 보며 미국역사와 미국식 정의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 (박재환, 20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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