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 영웅신화

2008. 3. 5. 22:33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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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7) 1998년에 쓴 글이네요. 무려 15년 전. 다시 보고, 다시 써야할 글 같습니다. 어제 이 영화의 주인공 피터 오툴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관련기사: [부고] 푸른 눈의 이방인 피터 오툴 별세(1932~2013)  *


[Reviewed by 박재환 1998-12-14]
   <트루먼쇼>의 피터 위어 감독이 1981년에 만든 <갈리폴리>를 보면서 왜 호주의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저 머나먼 남의 땅에서 개죽음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영화의 배경은 1차세계 대전당시 이집트 북단과 홍해 거너 아라비아반도 일대에서, 수에즈 운하를 사수하기 위해 (당시 아직은 석유문제로 싸움이 붙은 것은 아니었다) 서방세력과 터키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터키'라 하면 (증기탕으로 공식 改名된) 터키탕이라는 이상야릇한 이미지와 일마즈 귀니 감독의 <욜>이라는 영화가 대변하는 독재와 압제 후진국가라는 관념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그 나라도 한때는 그 일대를 호령하던 대국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아라비아 로렌스>는 <갈리폴리>의 시대적 배경과 거의 비슷하다. 그 아라비아 땅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한 인물의 궤적을 따라 여러가지 스펙트럼으로 관객에게 다가와 크나큰 감동의 모래폭풍 속으로 삼키고 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 두번째 보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도 내 초등 아니면 중학생시절 단체 관람갔었던 모양이다. 15년쯤 전인가? 그 당시 이 지겹고, 지루하고, (어린학생들에겐) 끝까지 앉아 보기 힘든 영화를 왜 학교에서 보여주었는지는 이상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결정을 내리신 교장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이 영화를 보았던 나의 급우 중에는 실제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영향으로 군인이 되어서 장군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치가가 될려는 야심을 품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남자로서 호연지기, 꿈을 키울려면 이 정도 야심과 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 그 시절에 본 영상은 모래사막과 지겨웠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을까....... 그 때는 아직 내가 정말로 어렸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엄청나게 이야기할 것이 많은 작품이다. 그중에 가장 쓸데없는 이야기부터 하자면,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는 마지막 70미리 작품이란 것이다. 기술적인 이야기는 할 실력이 못되고, 난 부산에서 커왔지만, 대한극장의 규모에 대해선 익히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대한극장에서 영화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 대한극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본 영화가 바로 이 <아라비아의 로렌스>인 셈이다. 밤 7시 15분에 시작하여 11시 너머 끝났고, 4호선 마지막 지하철타고 사당역까지 와서 2호선타고 신림역왔다. 음. 정말 형편없는 영화감상문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

음.. 사실 광학전공이나 건축공학 전공자가 아니라면(나처럼..) 대한극장에서 구현된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우와 굉장히 크다" 라는 단순감탄사와 더불어 왜저리 스피커를 "이~빠이"올려놓아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을 안겨줄까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한극장 사운드처리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당..

자, 그럼, 영화이야기합시다. 이렇게 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결국 매혹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팜플렛 참조)

▶ Synopsis

....수에즈 운하의 지배권을 두고 영국군과 터키군이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던 1918년 중동. 전선의 변화를 노리던 영국군은 터키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랍부족의 참전을 유도하기로 결정한다. 이 작전에 따라, 농담따먹기와 지도그리기로 소일하던 영국군 정보장교 로렌스 중위(피터오툴)는 파이잘 왕자 (알렉 기네스)를 만나 그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된다. 로렌스 만큼 아랍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문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파이잘 왕자는 사분오열되어있던 부족들간의 연합을 여러차례 시도하다 실패하자, 자신의 부대를 영국군에 편입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로렌스는 다시 한번 그를 설득시켜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 알리족장(오마 샤리프)과 연합을 이끌어낸다. 알리는 특히 관계가 나빴던 아우다(안소니퀸)에게는 돈과 무기를 약속하여 연합전선에 끌어들인다. 동시에 그는 아무도 상상조차 못했던 작전을 내놓는다. 모세 이후 그 누구도 건너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네푸드 사막을 종단하여 시나이 반도 남단의 아카바를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아랍 부족들은 사막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했고 같이 있던 영국군의 브라이튼 대령(안토니 퀘일)조차도 지중해의 해군의 지원을 받아 공격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모든 반론을 무리치고 작전에 감행한다. 아카바를 점령하려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사막만이 아니었다. 로렌스와 아랍 부족들과의 문화적 이질성 ,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나느 부족들간의 갈등. 이 두가지 문제는 사막보다도 더 끝없는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로부터의 공격에만 대비하고 있던 아카바의 터키군은 아랍 부족들의 맹렬한 공격에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카바를 손에 넣은 아랍연합은 영국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게릴라전을 펼친다. 이제 로렌스는 영웅이 되었다. 터키군의 요새가 있던 데라에 잠입했던 그는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어 치욕적인 고문을 받게된다. 그 이후, 로렌스는 터키군에 대해서 강한 증오심을 보이며, 무차별 학살에 가까운 공격을 감행한다. 심지어 항복하려는 패잔병들에게조차도 칼을 내리꽂는다. 2년에 걸친 항전 끝에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점령하게 되고, 아랍의 독립을 논할 시점에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아랍연합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다.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이미 밀담을 통해서 아랍 분할 계획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려 했고, 아랍 부족들은 과거처럼 또 다시 사분오열되어 뿔뿔히 흩어진다. 로렌스는 상부에 항의하고, 아랍부족들에게도 연합할 것을 권유해 보지만 이미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조국의 입장에선 적성분자였고, 아랍부족들에게는 자신들을 이용한 배신자였다. 결국 전쟁은 승리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씁쓸한 심정을 안고 다마스커스를 떠난다. 

영화는 근대사적 지식과 아랍에 대한 인식을 요한다. 오늘날 이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는 리비아-이란-이라크가 국가단위로 태동하기 직전의 그 시절의 이야기인 셈이다. 문제의 나라, 터키 또한 술탄왕에 의해 지배받던 전근대국가였다. 그러나 청년투르크당의 진보주의 청년들이 술탄을 폐위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며 러시아를 공격 흑해에 진입하면서 판도는 일거에 변해버린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터키에 전쟁을 선포하고, 처칠은 쉽게 터키를 굴복시키리라 생각하였지만, 연합군측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된다. (영연방으로 참전한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그들 역사에 있어 최고의 손실을 입어야 했다) 이집트 끝단에 위치한 갈리폴리 방어를 성공으로 이끈 터키군 지도자 무스타파 케말은 1922년 오토만 제국을 종식시키는 혁명을 이끌어냈고, 그로부터 1년후 터키 공화국 초대대통령이 되었다.

이 영화의 첫장면은 로렌스가 영국에서 소일하다 오토바이을 타고 가다 사고로 죽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곧 그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보인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미 그는 신화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를 아는 사람은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주저할때 많은 추종자들- 단지 한번 악수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을 영광으로 여기는 영국인을 보여줌으로서 이 사내의 신비로움을 배가시킨다. 영화는 곧장 사막의 나라로 옮겨져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그려낸다. 1918년 로렌스의 첫 등장은 후줄그레한 군복에 구부정한 장교모습이었다. 그는 상급자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않는 군기가 빠질대로 빠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유약한 내면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열정과 광기를 가졌을 줄이야. 그의 모습이 결코 일반적인 남성상이 아니고 여성적, 적어도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전적으로 로렌스 인물연구에 충실했던 피터오툴의 덕택이리라. 그가 나중에 터키군에게 붙들려 성고문에 가까운 대접을 받을 때 확실히 나타나지만 그의 여성적인 면모, 혹은 동성애적인 기질이 평생 따라 붙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피터 오툴의 연기로 재현된 로렌스는 남성적인 강인한 면모보다는 여성스런 면이 많이 부각된다. 그가 사막에서 "가심"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사막으로 되돌아설때의 가슴 뭉클함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러한 연유때문이리다. 낙오한 아랍친구 가심을 구해 돌아올때의 그의 의지는 분명 광기에 가깝다. 그것은 남성적인 약속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려는 어떤 자기학대의, 자아도취의 집념의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 가심을 손수 쏘아죽이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은 아랍부족으로부터의 신뢰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였기에 아랍부족의 신뢰를 받았을 뿐만 아리나 영웅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도 지키려했던 아랍의 영광은 끝내 산산조각 난다. 모래알 같은 아랍부족을 하나의 연합체로 이끈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물론 이후 로렌스의 노력으로 파이잘은 이라크의 국왕이 되고, 알리는 이란의 된다. (물론 그 이후 이라크와 이란에는 각각 혁명이 일어나 그들 건국세대는 몰락하게 되지만 말이다...)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장면은 분명 광활한 사막, 이글대는 모래언덕 너머로 신기루같이 보이기 시작하던 로렌스의 모습 - 모두들 포기하라고 한 "가심"을 구해오던 그의 영웅적인 모습이었으리라. 정말이지 광활한 사막에서 인간이 살아날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로렌스가 터키군에게 붙잡혀 매질당할때의 영상은 - <스파르타쿠스>에서 잘려나갔던 그 유명한 동성애장면 논란만큼- 애매모호함의 극치이다. 그 날 이후, 로렌스가 입은 정신적 피해는 그로하여금 터키에 대한 복수로 나타났고, 우호적인 아랍의 친구에게까지 우려를 불려일으킬 광신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랍의 영광을 추구하였다. 사실 그는 죽을때까지 자신의 아랍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영화와 관련없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제국주의 팽창시기의 끝단에 위치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서도 알수 있듯이 영국군 내에는 중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는 자가 분명 있었다.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한 인재가 아닐지라도 영국이라는 나라의 국익을 위해선 분명 필요했던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눈을 우리에게로 돌려 일제시대하의 조선반도를 보자. 일본의 제국세력은 한국을 집어삼키기 전에 이미 한국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를 진행하였고, 점령후 끝없는 지적 자산탐사를 수행하였다. 이는 이른바 관동군의 학술활동이며 기간조사였던 셈이다. 중국이나 만주에 대해선 열외로 하고, 우리나라에 한해서 실시한 것도 엄청난 분량을 차지한다. 몇년전부터 <동문선>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하기 시작한 이 시대의 연구서적은 깊이나 넓이가 엄청나다. <조선의 귀신문화>로부터 시작한 토속신앙의 탐사는 그후에도 우리나라에서 그만한 연구 실적을 올린 적은 없다고 한다. 사실 신라 이두문자에 대한 해독이 가능했던 것도 일본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많은 일본학자 군인들을 동원한 인문사회학적 조사는 물론 광개토왕비문의 조작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 나름대로의 목적과 의도가 있었지만 적어도 국가적 관계에 있어서의 철저한 준비조사 사실은 우리가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중일 국교정상화이후 중국에 진입하기 전에 국가차원에서, 기업차원에서, 개인차원에서 얼마나 많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진행했는지는 짐작이 가리라. 한중국교 수교이후 초기에 쏟아져나온 각종 중국관련서적은 거의 일본 도서의 번역이었던 점을 상기한다면 일본의 힘을 느낄수 있으리라... 중동을 차지하기 위해선 중동을 이해해야하고, 일본을 잡아먹기 위해선 일본을 이해해야 하는것이리라. (박재환 1998/12/14)


70밀리 영화: 70미리가 어떤 것인지 팜플렛에서 잠시 옮겨보면...  

70 mm 영화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Todd-AD
54년에 Cinerama를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Mike Todd의 아들인 Todd Jr.는 (그도 시네라마 연출자였다) 단일 카메라 방식의 Todd-AD 65mm 카메라를 만들었다. 55년 <오클라호마 Oklahoma!>부터 <아라모 The Alamo>,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Todd-AD 방식으로 제작된 들이다.

2. Super Panavision 70
65mm 카메라로 찍어 사운드가 포함된 70 mm 프린트로 상영하는 Super Panavision 70 방식은 양쪽에 6트랙의 사운드가 첨가되어 2.21:1의 화면비율을 가졌고 비압축 방식으로 70mm를 온전히 촬영하고 영사하는, 가장 효과적인 wide screen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ide screen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비롯,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마이페어레이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이 Super Panavision 70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3. Ultra Panavision
MGM Camera 65라고도 불리는 Ultra Panavision은 65mm카메라에 1.25:1배율의 애너모픽 방식을 써서 실제 영사되는 스크린의 화면비율은 2.76:1가 되는 놀라운 크기를 만들어내었다. 이런 방대한 비율을 만족시키는 극장시스템의 문제 등으로 <Raintree Country(1957)>와 <벤허>이후로는 시네마 스코프와 호환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Lawrence of Arabia (1962)
감독: 데이비드 린
주연: 피터 오툴, 알렉 기네스, 안소니 퀸, 잭 호킨스, 오마 샤리프, 호세 페러,안소니 퀘일
1963년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7개부문 수상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Lawrence_of_Arabia
http://en.wikipedia.org/wiki/Seven_Pillars_of_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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