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3. 18:29ㆍ중국영화리뷰
(박재환 2004/11/11) 영화판의 큰손 CJ가 지난 달(2004년 11월) 개최한 제1회 CJ 아시아인디영화제에서 흥미로운 중국 영화 한 편이 소개되었다. 지난 2002년 제7회 부산영화제에서 [사라진 총]으로 소개된 중국 신예감독 륙천(陸川,루추안)의 두 번째 작품 [커커시리](可可西里)이다.
중국 지도를 펼쳐놓고 '커커시리'를 찾아보았다. 달라이 라마로 유명한 '티벳'과 실크 로드로 유명한 서북부 '신강위구르'지역 사이에 위치한 칭하이(靑海)성 일대의 해발고도 4~5,000미터의 청장고원(靑藏高原)이다. 어쩌다 영화나 TV영상물에서 중국의 황량한 자연 풍광을 보게 될 때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되는데, 바로 이곳 커커시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영화는 10여 년 전의 일을 다큐멘터리 터치로 다룬다. 4만 5천 평방킬로미터 면적의 이곳 칭하이 커커시리의 자원순찰대의 피눈물 나는 일대기이다. 이 넓은 천혜의 고원지역에는 1985년 이전에 100만 마리에 이르는 티벳 영양(藏羚羊)들이 떼를 지어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양의 털가죽에 서구 모피상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밀렵꾼들이 밀어닥친다. 영양 떼의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청해성 일대의 주민들이 영양 떼를 살리기 위해 자경단(野牦牛队的巡山保护队)을 조직한다. 그들은 드넓은 일대를 지프로 돌아다니며 밀렵꾼을 잡아서 공안기관에 인계하는 일을 자원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 중 하나가 밀렵꾼에게 사로잡혀 살해당한다. 북경의 한 신문사가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기자 하나를 파견하여 얼마동안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에 남기게 된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중국의 서부지역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한정적이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건국 이후 티벳 지역을 유혈 점령한 중국이나 실크 로드의 역정은 이미 잘 알려졌지만 칭하이 일대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사는지조차 베일에 가려진 오지 중의 오지로만 알고 있었다. 먹고살기 바쁜, 그리고 소수민족의 봉기에 극도의 긴장감을 보이는 중국의 현실에서 그런 자연보호주의, 생태계 보호에 신경을 쓰고 있는 자발적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들 자경단은 자신들의 돈으로, 국가나 기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그 흔한 위촉장 하나 없이 스스로 나서서 '영양' 보호에 나선 것이다.
이들 자경단은 실제 존재했던, 중국에서 보기 힘든 '목숨을 건' 자생적 환경보호단체인 셈이다. 자경단 구성원은 청해성과 인근 지역의 장족(藏族,티벳민족)과 한족(漢族)이 두루 포함되었다. 1993년도에 결성되어 5년 정도 활동한 이들 단체는 오늘날 중국 시민운동, 환경운동의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셈이다. 자경단은 실제 밀렵꾼들과 유혈 총격전도 여러 차례 벌였고 단체의 리더였던 索南达杰과 扎巴多杰도 모두 이 과정에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소개되지만 결국 커커시리는 중국의 국가급 자연보호구역(中国青海可可西里国家级自然保护区)으로 지정되어 중국당국의 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변변찮은 옷가지에 변변찮은 총기를 들고 몇 날 며칠을 황량한 들판을 돌아다니며 밀렵꾼들을 쫓고 쫓고 또 쫓는다. 가다가 트럭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모래무덤에 빠져 죽기도 한다.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밀렵꾼의 총알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들의 이런 희생적인 행동을 저 멀리 베이징의 관리들 눈에 들 리가 있을까. 머나먼 서부지역의 고원에서 펼쳐지는 그런 밀렵행위가 중국의 국가적 안정성을 해치리라고 보는 사람도 아마도 그 당시 '전혀' 없었을 것이다. 자경단 대원들은 하나둘씩 죽는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왜 죽었을까? 국가와 민족의 자긍심을 위해? 한 뼘의 땅을 위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내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장예모의 [연인]이 출품되자 많은 중국어 네티즌들이 [커커시리]를 출품시켜야하는 것 아니냐는 움직임이 있었다.
커커시리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소녀'라는 뜻이란다. 그리고 티벳 영양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상징동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독도의용수비대'가 생각났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독도 탕건봉 쪽 암초에 日本國島根懸竹島'라는 팻말을 붙이고 사라진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울릉군의 장정들은 며칠 뒤 같은 자리에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라는 표식을 꽂았다. 일본 순시선의 침범은 계속됐고, 독도는 그때마다 ‘다케시마’가 됐다. 결국, 4월 26일 울릉도 도동 선창에선 7인으로 구성된 독도 수비대가 발대식을 갖는다. 개머리판 없는 카빈총을 들고, 철모 대신 양재기와 밀짚 모자를 쓰고, 식량 대용으로 허리에 된장과 고추장 단지를 차고 있었던 그들은 볼품없는 패잔병의 모습이었지만, 독도를 지키겠다는 결의만큼은 어느 용맹한 부대 못지않았다. 싸우다 급성맹장염에 걸리면 안 된다며 보건소에서 전원이 맹장제거 수술을 받고 독도로 떠난 이들은 1956년 3월 “대한민국 경찰 소속 독도 경비대에 수비권을 넘기기 전까지 50여회의 전투를 치르며 독도를 사수했다. (대원사 펴냄 [독도]에서) 이들 독도수비대의 임무는 1956년 12월 대한민국 '경찰'에 인수인계하기까지 3년 8개월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국가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간에 그 자리에 국민이 나섰던 것이다. (2004/11/11)
감독: 륙천(陸川) 출연: 다포걸(多布傑), 장뢰(張磊), 조수(趙穗), 조설형(趙雪螢)
중국개봉: 200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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