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은희 작가 “킹덤은 넷플릭스가 매력적인 플랫폼이었다”

2019. 8. 3. 10:10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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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과 <시그널>이라는 걸출한 드라마를 집필한 김은희 작가가 이번에는 좀비 스토리를 썼다. 좀비를 죽이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하고, 목을 잘라야하고, 화면엔 유혈이 낭자할 것 같다. 지상파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손을 내민다. “앗싸~!”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와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함께 2년 반을 매달려 6부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킹덤>을 완성했다. 제작발표회 날 당당하게 “시즌2도 만든답니다.”고 공표할 수 있었다. 지난 25일, 전 세계 190개국에서 일제히 공개된 <킹덤>의 대설계자 김은희 작가를 만나 ‘드라마’보다 더 신났을 ‘킹덤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좀비물 좋아하는지 

“좀비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일본 호러물은 좀 무서워한다. <링>이 나온 후로는 너무 깜짝깜짝 놀란다. 좀비물은 익사이팅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새벽의 저주>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병원 같은 곳에서 주인공이 혼자 격리되어 있다 세상에 나와 보니 그새 지옥도처럼 변한 거리의 모습. 이런 장면 좋아한다.” 

●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반응은 살펴봤나. 

“1주일 정도 지나, 마음의 준비가 생기면 볼 생각이다. 제가 좀 극소심한 면이 있다. 저랑 처음 일하는 사람은 좀 놀라더라. 무서운 영화 못 본다면 어이없어 하더라.”

● ‘킹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1년 드라마 <싸인>이 끝날 때 즈음. 난 한 작품 끝나면 다음 아이템을 생각한다. 좀비물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은 좀비하면 긴장이나 공포로 보는데 난 굶주림에 미쳐 달려오는 그런 좀비를 생각했다. 슬픈 인상이다. 배고픔의 크리쳐! 그런 좀비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처참한 지경에 이른 민초들일 것이다. 차별이 횡행하던 조선시대에 대입시킨다면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체절단이나 훼손, 피가 나올 텐데 지상파에서 드라마로 만들긴 불가능할 같았다. 술 마시며 이야기 하다가 윤인완 작가와 뜻이 맞았고 우선 만화로 만들었다.(‘버닝헬 신의 나라’) 만화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외계인이든 뭐든 다 넣을 수 있으니. 좀 더 자유롭게, 세자는 좀 더 나약하게, 어리게 만들어보자 그랬다. 영화 쪽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안 된다고 하더라. 공중파에선 힘들 테고. 드라마 <시그널> 끝날 즈음 우연히 넷플릭스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 내가 제안했다. “좀비 되나요?”라고.

● 김성훈 감독은?

“김성훈 감독은 제가 설득했다. 영화 <끝까지 간다>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꼼꼼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감정선을 적확하게 집어낸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영화와 드라마의 콜라보를 해보자고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이야기했었다. 넷플릭스와 기회가 와서 장원석 대표(‘터널’ 제작자) 통해 감독님께 정식으로 제안을 드렸고, 여의도에서 캔 맥주 마시며 의기투합한 것이다. 감독님도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김성훈 감독은 정말 좋은 의미로, 독한 면이 있다” 

어떤 면이? “조선시대를 그리려면 궁궐이나 나루터, 화전민촌 등 세트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 이 작품에는 몹 신, 추격 신이 많다. 조그만 잘못 찍어도 비어 보이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로드무비 형태의 작품이다 보니 길 위에서 찍는 경우도 많다. 세팅하기도 힘들고 연출이 힘들었을 것이다. 꽉 채우려고 노력하시는 게 보이더다.” 

● (부산)동래에서 성주, 상주를 거쳐 북상하는 구조이다. 왜 경상도 루트를 택했나

“처음 구상할 때는 세자 일행이 엄청난 역경을 겪으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건을 겪고 감정적으로 성장하는 구조다. 그래서 되도록 먼 거리였으면 했다. 한양에서 제일 먼 거리, 땅끝 동네. 왜 해남이 생각이 안 났는지 모르겠다.”

“동래를 생각하다가 세트를 짓고, CG작업을 하니 이쪽으로 올라오는 게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자연스런 지형선을 보면 그렇다. 좀비출몰 상황을 통제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지형적인 면을 이용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 근데, 출연 인물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사투리에 대한 고민도 했었다. 배두나가 연기하는 서비는 동래출신이 아니다. 힘들었던 시기에 살기 위해 떠도는 민초들이다. 부산과 상주의 사투리를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표준어로 가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킹덤’ 속 좀비에 대한 특별한 설정은

“좀비물을 보면 신체훼손이 특징이다. 조선시대는 유교사회인데 그런 아이러니가 특별할 것 같았다. 기획의도 자체가 배고픔의 이야기이다. 높으신 분들은 권력에 대한 배고픔일 수도 있고, 이쪽 민초들은 진짜 엄청난 허기의 배고픔일 것이다. 그것이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11년부터 계속 생각했다.”

‘온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질병, 역학조사. 이런 책을 읽는 것을 이상하게 좋아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괴질을 보면서 그런 역병을 생태학적인 변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만의 좀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넷플릭스 관계자 반응은 어땠나

“싱가포르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들 영어를 쓰니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원더풀’, ‘뷰티풀’ 하시더라. 예의상 해주시는 것이겠지. 나중에 들으니 넷플릭스 내부 시사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 글로벌하게 홍보를 펼칠 수 있는 퀄리티라고 생각했다더라. 홍보비도 많이 쓸 것이라고 하는데 작가 입장에선 그게 얼마나 큰 규모인지는 몰랐다. 그렇게 돈을 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 배고픔과 카니발니즘

서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주지훈 배우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이 작품을 소개하면 ‘문화권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개를 대하는 정서가 다르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기아에 허덕이던 조선 민초가 개라도 잡아먹는 장면이 있는가 우려했는데 뜻밖에 카니발니즘이 나온다. 넷플릭스에서 놀라지 않던가.

“인육을 먹는 것은 우리 작품의 기획의도와도 관련이 있다. 그 사람들이 과연 인육을 알고 먹었는지, 그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고, ‘배고픔’의 경지를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 이야기에 대해서는 ‘하우스오브 카드’에서 개를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넷플릭스는 개를 죽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끝까지 해야겠다고 했고, 넷플릭스가 받아들였다고 하더라. 금기시하는 문화가 당연히 있겠죠. 대본작업을 할 때, 넷플릭스와 화상회의를 할 때 뭔가 걸리는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는데 한 번도 없었다.”

지율헌에서 배두나와 김성규가 그 문제로 첨예하게 다툰다. "그 정도의 배고픈 시절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간미를 어쩔 수 없이 상실하는 그런 광경이다. 화면에서는 최대한.. 안 보이지만.“

● 배우들에 대한 한줄 평

“영신으로 등장하는 김성규는 ‘범죄도시’에 나왔던 배우이다. 화면을 뜯어먹는다고 생각된다. 상주의 안현 대감 허준호는 특별한 양반이다. 대부부의 양반들은 도망치기 바쁜 탐욕스런 자들인데, 분명 자기 자리를 지킨 책임감 있는 지배계층이 있었을 것이다. 허준호 배우는 진중함과 카리스마로 그 역할을 펼쳤다.”

“주지훈은 이상하게 얼굴을 보면 소년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약하게도 보이고. 완전히 정의롭게 보이지도 않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욕망도 읽힌다. 오글거릴 수 있는 표현도 잘 소화해 냈다.”

“류승룡 배우는 글을 쓸 때부터 이 역을 해 주셨으면 생각했다. 전형적인 악인일 수 있지만 카리스마와 연기력이 있는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 자기대본에 대한 완벽주의자인가

“그렇진 않다. 내가 이른바 대사발이 없어서. 토씨하나까지 내 대본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작가가 아니다. 대사가 중요한 장르가 있다. 로코나 휴먼드라마처럼. 제 작품은 대사보다는 상황, 액션이 많다. 그 씬의 목적을 아시고 대사의 의미를 아신다면 맘 편하게 바꿔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 작품엔 남자가 많이 나오는데 난 여자이고 아줌마이다. 연출에게도 편하게 하라고 말한다.”

● 시그널의 사회파, 킹덤의 민중파?

“‘시그널’을 통해 정의가 구현된다는 그런 부분에 시청자가 열광한 것 같다. 그런데 뭔가를 해야지 생각을 하고 한 것은 아니다. 정의를 구현하는 게 수사물이니 그렇게 보인 것 같다. <킹덤>도 마찬가지다. 결국 (결과물이) 저같이 나오더라. 제가 어떻게 보여줘야지 애쓴다고 그렇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장 관심 있는 것, 제가 생각하는 세상, 그런 것이 대본에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넷플릭스 스타일

“원래 ‘킹덤’은 8부작으로 기획되었다가 6부로 조정된 것이다. 이야기를 다 담기 힘들었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70분, 80분인데. 넷플릭스에서는 50분 남짓의 런닝 타임을 선호하더다. 정주행을 염두에 둔 플랫폼이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시즌을 늘리는 게 어떨지 이야기했었다.”

“넷플릭스가 매력적이었다기보다는 ‘킹덤’이란 작품이 ‘넷플릭스’란 플랫폼에 맞았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자유를 생각해 보더라도 잔인한 장면의 포함 같은 문제를 떠나, 우리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들어가는 장점이 있었다.”

김은희 작가는 이 말도 보탰다. “작가들한테는 공중파냐 넷플릭스냐가 아니라, 어디 가면 이 기획을 제일 잘 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것 같다.”고.

‘시즌1’은 좀비의 등장, 좀비의 북상, 폭풍전야같은 상주의 상황으로 끝난다. 던져놓은 이야기는 많다. ‘왕은 어떻게 좀비가 되었는지’,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사초가 무엇인지’, ‘영신과 서비에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등등. 작가는 어디까지 염두에 두고, 확장가능성을 두고 이야기를 그려나갈까. 

“‘시즌2’ 대본 6편 다 나왔다. 시즌 3,4까지 기획하고 썼다기보다는 더 재밌는 이야기, 더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한 번 만들고 나면 내 새끼 같은 출연인물이다. 이 캐릭터로 더 재밌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 작가 김은희

‘킹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작가 김은희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이어졌다.

글을 정말 잘 쓰신다. “글 쓰는 게 힘들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다. 살림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수영도 못하고. 아니 살아남기 위해 수영 조금 하고. 살아오면서 칭찬 받은 게 글 쓰는 것 밖에 없다. 잘 하고 싶다.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글 쓰는 것이다. 딴 일 없으면 노트북 앞에 앉아 글 쓴다. 노트북 없으면 불안하다.” 

김은희 작가는 언제나는 SF도 쓰고 싶다고. “SF를 한 번 해 보고 싶다. 한국적인 SF. 에일리언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괴물이 나오긴 하는데 한국형 괴물이 나오는 느낌.”

● 하나뿐인 내편, 장항준

 창작계의 동료이자, 인생의 반려자인 남편 장항준 감독 이야기도 나왔다. “장항준도 분명히 슬럼프가 있었다. <기억의 밤> 전까지 영화가 엎어지고 그랬다. 장항준의 좋은 점은 사람이 점점 좋아진다는 것. 일이 안되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굳어지는데.  그 나이에 되어도 좋아질 수가 있지. 그런 면 때문에 잘 사는 것 같아요. 어. 잘 살고 있는가? (하하) <기억의 밤>으로 재기를 했고, 일을 즐겁게 하니까. 본받고 싶다. 저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다.” 

● 최근 ‘넷플릭스’에서 본 작품은

“‘버드박스’, ‘힐하우스의 유령’. 귀신집 나오는 게 제 취향에 맞다. 그리고 ‘나르코스’.”

인터뷰를 끝내고.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다. 19세기 말 중국(청나라말기) 태평천국의 난 때 배고픔에 허덕이던 민초들이 자기 아이를 남의 집 아이와 맞바꾼다고. 제 자식을 먹을 순 없으니깐. 김은희 작가, “대기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서비의 과거나 영신의 과거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김은희 작가는 그런 민초의 배고픔을, 분노를 좀비 떼로 승화시킨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킹덤>은 지난 25일 전 세계 190개 나라 넷플릭스에 동시에 공개됐다. (박재환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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