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1. 18:21ㆍ미국영화리뷰
(박재환 2018.08.13) 노인복지정책을 다룬 듯한 느낌을 주는 제목의 영화 <노인의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스릴러이다. <핏빛 자오선>,<로드> 등 묵직한 독서감을 안겨주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 <바톤 핑크>, <파고> 등을 만든 에단 코엔/ 조엘 코엔 형제가 영화로 만들었다. 2006년 개봉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각색상을 수상했다. 오랜만에 다시 극장에서 재개봉되어 영화팬을 찾고 있다. 그 동안 코엔 형제는 더 거장이 되었고, 이 영화에 나왔던 죠슈 브롤린은 마블 영화 속 최강자가 되었다.
영화는 미국 텍사스 시골마을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이 직면한 일련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마약 밀거래 현장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마약을 팔던 놈과 사는 놈이 서로에게 총질하다 허망하게 죽은 것이다. 이곳에 사슴사냥을 나왔던 참전용사 모스(조슈 브롤린)는 시체들만 즐비한 현장에서 20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수습한다. 모스는 돈가방을 챙겨 멀리 도망갈 작정이었지만, 그 돈가방의 행적을 쫓는 자가 여태껏 본적 없는 ‘사이코패스 킬러’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제, 살벌한 추격전이 시작된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은 은퇴할 나이가 된 베테랑 보안관 벨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보안관이 보기엔 킬러인 쉬거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많은 악당을 잡아 사형장으로 보내봤지만 이 놈 행적에서는 뚜렷한 목적이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쫓기는 신세의 모스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킬러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가족(아내)을 위험에 노출시키며 도주행각을 이어간다.
진짜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는 킬러(안톤 쉬거)의 행동양식이 이해될 수 있다. 그는 킬러로서의 프라이드와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월남전 다녀온 모스는 삶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소설(영화) 제목으로 쓰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에서 뽑아온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예이츠의 시 제목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이다. 국내에 출간된 책(사피엔스 21 임재서 번역) 첫 페이지에는 이 시가 소개되어 있다. 그 번역문을 옮긴다.
저것은 늙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서로 팔짱을 낀 젊은이들과 숲속의 새들,
저 죽음의 세대들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취해 있고
폭포에는 연어가 튀고 바다에는 고등어가 우글거리니
물고기와 짐승과 새들은 여름 내내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것들을 찬양한다.
모두들 저 관능의 음악에 취하여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모르는구나
시를 읽으면 벨의 정서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은퇴를 앞둔, 살면서 별의별 살인과 살인자를 다 본 늙은 보안관은 ‘안톤 시거’와 ‘모스’의 행동에서, 그리고, 신참 같은 부보안관의 모습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벨 보안관은 나름대로 죽도록 치안과 질서유지를 위해 살아왔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긍정적인 조언을 주었지만 요즘 젊은 것들은 그 선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도하게 총질에, 쌈박질에, 살인극을 이어간다.
영화에서 사이코 안톤 시거의 행동을 더욱 괴이하게 보이는 것은 동전던지기 게임이다. 쉬거는 그냥 동전 하나를 던져 사람의 운명(생사)을 결정짓는다. 단순한 선택, 그리고 돌발사태의 연속이 그들 프로페셔널조차 살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운명들이다. 나이와는 상관없는 삶의 무게감이 보안관의 입을 통해 확인되는 순간이다. 2018년 8월 9일 재개봉 (KBS미디어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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