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레이디 버드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2018. 7. 11. 10:14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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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레이디 버드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2018-04-09 11:58:43

 

 

 

[스포일러 주의!] 영화는 뜬금없이 새크라멘토를 찬양(!)하는 문구로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봐야 한다." 이 말은 새크라멘토 출신의 저널리스트 존 디디온의 말이란다. 화려한 LA와는 달리 (같은 캘리포니아에 있으면서도) 왠지 촌스러울 정도로 평온한 새크라멘토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글이리라. 영화는 바로 그 새크라멘토 출신의 ‘여성감독’ 그레타 거윅이 그린 여고생 성장드라마이다.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새크라멘토의 서민 맥퍼슨 집안의 딸이다. 우리가 보아온 풍요로운 미국 중산층 가정보다는 (경제적으로) 더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가족이다. 프로그래머인 아버지는 실직 위기이고, 어머니는 야간 잔업수당을 받아가며 집안 경제를 힘겹게 꾸려가고 있다. 어릴 적 입양한 오빠는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학비 때문에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크리스틴은 이런 가족이, 집안이, 상황이 싫을 뿐이다. 대학은 이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떠나 저 멀리 번듯한 대학,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을 뿐이다. 그게 삶의 탈출구이니.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신을 아무리 ‘레이디 버드’로 우아하게 불러도 삶은 화려하게 채색되지 않는다. 반짝 맘이 통하던 단짝 친구와도 멀어지고, 오를 수 없는 세상을 향한 겉멋만 는다. 근사한 남자에게도 반하지만 끝이 그렇게 로맨틱하지는 않다. 아쉬움으로 끝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크리스틴은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면서 가족의 소중함, 친구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크리스틴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영화 초반 크리스틴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스물 시간 이상 타며 진학할 학교를 알아보는 장면이 있다. 엄마는 운전하며 오디오북을 듣는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이다. 대공황시기, 집을 떠나 낡은 트럭에 세간을 싣고 생존을 위해 ‘약속된 땅’을 찾아 떠나가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삶의 무게를 아는 엄마는 눈물을 짓는다. 그 후 근 100년. 미국의 삶은 여전히 도로 위를 불안정하게 달리면 약속된 행복과 안주할 곳을 찾는다.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이 싫어, 자신의 이름 크리스틴 마저 싫어, 스스로 ‘레이디 버드’로 불리길 원하는 소녀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나이 대의 삶을 거치면서 껍질을 깨고, 둥지를 떠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플레이걸’ 잡지를 집어든 쿨한 순간, 세상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 크리스틴이 대학생이 된다고 세상이, 자신을 둘러싼 공간이 달라질까. 삶은 여전히 팍팍할 것이고, 주위의 남자들이란 결국 똑같을 것이다. 아참. 배경이 2000년대 초반이다. 트럼프의 미국에서 살기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KBS미디어 박재환)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사얼샤 로넌(크리스틴), 로리 멧칼프(엄마), 트레이시 레츠(아빠), 루카스 헤지스(대니), 티모시 샬라메(카일) 2018년 4월 4일 개봉/15세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