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더 포스트 ‘취재원과 특종’

2018. 7. 11. 10:1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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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포스트 ‘취재원과 특종’

2018-02-21 17:17:06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엔 이른바 중앙지와 지방지가 명확하지만 미국에선 USA투데이 지(紙)가 창간되기 전까진 전국지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전문지는 빼고) 우리가 아는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도 지역단위에서 명성을 떨치는 신문이다. 그런데, 뉴욕에서 발행되면서도 전국적인, 그리고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뉴욕타임즈와는 달리 워싱턴포스트는 지명도가 한참이나 떨어지는 진짜 ‘지역지’였다. 그런 워싱턴포스트가 뉴욕타임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특종보도 때문이었다. 닉슨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려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린 것이 워싱턴포스트였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또 하나의 특종이 있다. 바로 ‘펜타곤 문서’특종이다. 1971년의 일이다. 당시 미국 대통력은 닉슨이었고, 수렁에 빠진 월남전에서 출구를 찾아 헤맬 때였다.

 

영화 <더 포스트>는 바로 그 시점의 미국을 배경으로 워싱턴에서 발행되던 ‘지방지’ 워싱턴포스트가 직면한 ‘특종’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71년에 창간된 워싱턴포스트는 1933년에 유진 메이어가 인수한다. 그는 루즈벨트 시절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거물이었다. 1946년에 WP 사주(社主) 자리를 딸 캐서린 그레이엄이 아니라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에게 넘긴다. 필립이 죽은 뒤 ‘미망인’ 그레이엄이 전면에 나선다. 조금은 보수적인 풍토의 미국(신문업계)에서 얼굴마담이 아닌, 여자 사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국)언론사에서 사주와 편집장의 관계는 흥미롭다. 사주는 주로 경영을 책임지고, 편집장은 기사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원론적인 설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사주는 백악관과 친하고, 장관들과 교류하고, 온갖 셀럽들과 친분을 유지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고급정보가 나오거나, 특종의 실마리가 잡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WP가문은 백악관 사람과 친했고, 국방부장관(로버트 맥나마라)과도 잘 아는 사이였으니 특종에 꽤 가까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사건이 터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의 하나인 랜드연구소의 연구원이 펜타곤의 극비 문서를 빼돌린 것이다. 지난 역대 미국정부(백악관)가 베트남에서 펼친 모든 것(더럽고, 치명적인!)이 고스란히 포함된 문서였다. 그런데 이 문서를 먼저 입수한 것은 뉴욕타임즈의 명기자 닐 시헌(Neil Sheehan)이었다. NYT는 다니엘 엘스버그로부터 문서를 입수한 뒤 석달 간 8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를 분석하고, 결국 1보를 터뜨린다. 백악관이 뒤집어진다. 미국 정부는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기밀의 유출’이라며 후속보도를 금지한다.

 

 

‘경쟁사’의 특종에 다급해진 워싱턴포스트도 백방으로 노력하고, 결국 펜타곤 문서를 입수하는데 성공한다. NYT보다 늦었지만, 더 자세하게, 더 공격적으로 신문에 실을 준비를 끝낸다.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전가의 보도인 소송을 선택했고, 미국 대법원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벌어진다. 언론자유와 국가의 안위에 대한 재판이었다.

 

영화 <더 포스트>는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여사와 편집장 벤 브레들리(톰 행크스)가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언론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주 입장에서는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이다. 편집장 입장에서는 이번 보도로 NYT의 반열에 올라설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물론 둘 다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미국의 언론이 왜 튼튼한지, 아니면 언론이란 것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SF에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링컨>과 <스파이 브릿지>를 거쳐 내놓은 <더 포스트>는 국가와 언론의 정면대결을 다룬다.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명연기는 영화에 빛을 더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언론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영화적 재미를 과다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현대사에서, 적어도 영화에서는 닉슨은 악역으로 충분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닉슨의 백악관은 줄곧 언론과 각을 세우고, 보도통제를 주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마지막엔 워터게이트로 이어질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실제 닉슨은 펜타곤 문서와는 별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월남전 철수를 결정한 것도 닉슨이었고 말이다. 닉슨은 원론적으로, 과도한 언론자유가 ‘국가의 안위’와 전장에서의 ‘미군’을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보수적 정치인이었을 뿐이고 그런 차원에서 키신저의 방식을 지지했을 뿐이라는 시각이 있다.

 

아마도, <더 포스트>를 본 사람은 ‘워터게이트’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도 챙겨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언론자유, 혹은 언론파워는 끝없는 투쟁의 결과이다. 그것은 정부와의 투쟁이고, 사주(편집권)와의 투쟁이고, 팩트와 역사에 대한 투쟁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NYT’는 물 먹은 셈이 되지만 언론인들은 다 안다. ‘WP’보다 더 빨랐고, 정확했고, 능력이 있었음을. 결국, 특종이란 것이 기자들이 발로 뛰는 것, 그리고 평소 취재원을 어떻게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취재원은 어떻게든 끝까지 지켜야하는 직업윤리도 알려준다.

 

워싱턴포스트는 ‘타임’과 맞먹던 ‘뉴스위크’라는 시사주간지도 발행했었다.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경영난에 빠진 WP는 잡지 ‘뉴스위크’를 단돈 1달러에 팔았다. (물론, 엄청난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그레이엄 가문의 손을 떠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인터넷거물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에게 인수되었다. 억만장자 베조스는 넘치는 자금을 바탕으로 ‘WP'를 어떻게 ’잘‘, ’스마트하게‘, ’디지털스럽게‘ 활용할지 고심하고 있다.

 

참, 영화에서 캐서린은 남편(필립)의 죽음을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말한다. 이혼소송 진행 중 자살한 것이란다. 사연을 보니 조금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어쨌든, 스필버그 작품 치고는 심심한 정통드라마이다. 물론, 저널리스트라면 꼭꼭 씹어볼 영화이다. 2월 28일 개봉예정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