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소년 파이, 얼라이브!

2013. 1. 9. 17:0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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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출신의 세계적 감독 이안의 최신작 <라이프 오브 파이>는 생각 이상으로 판타스틱하고, 스토리 이상의 충격적 의미를 담고 있다. 얀 마텔의 원작소설을 읽고 나서야 영화가 말하고자한 바를 제대로 이해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러하다.

 

인도 소년, 망망대해에 표류하다

 

영화는 낯선 연대의 낯선 동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950년대. 인도라는 나라가 영국에서 독립된 줄만 알았는데 사실 그 시절 인도 땅 어느 지역엔 작지만 프랑스령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때는 프랑스령이었던 그곳 폰디체리(퐁디셰리/푸두체리)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년 파이는 자연스레 프랑스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소년은 특이한 종교적 성향을 보인다. 크리슈나 신을 자연스레 찾는 힌두교에다,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진 이슬람, 게다가 기독교적 헌신까지. 소년은 세 가지 종교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마음의 등불로 삼는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동물원을 운영한다. 소년은 동물들의 습성을 하나씩 익히기 시작한다. 비록 우리에 갇힌 신세일지라도 벵갈 호랑이는 야생의 그 잔인함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정치적인 이유로 동물원을 처분하고 가족은 일본선적 화물선을 타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하지만 필리핀을 지날 무렵 배가 난파하고 소년 파이는 겨우 구명선에 올라탄다. ‘아마도’ 혼자 살아남은 모양이다. 그런데 얼룩말이, 오랑우탄이, 하이에나가, 그러더니 마지막엔 벵갈호랑이가 그 배에 올라탄다. 그로부터 272일 동안 소년은 망망대해 쪽배 위에서 생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목말라 죽든지, 호랑이 밥이 되든지, 굶어죽든지. 거친 바다 위 악조건 속에서 소년 파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진정한 코즈모폴리턴, 이안 감독

 

이안 감독은 1954년 대만(타이완) 남부 핑뚱 현에서 태어났다.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대만의 남으로 북으로 옮겨다니며 자랐다. 교육자 집안이 으레 그러하듯이 아버지의 기대치는 높았지만 아들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나섰고 한동안-꽤 오랫동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좋지 않았단다. 이안은 <쿵푸선생>이란 작품을 필두로 <음식남녀>, <결혼피로연>을 내놓았다. 이른바 이안 감독의 빛나는 ‘대만시대 3부작’을 완성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김기덕 감독이 그러한 것처럼 이안 감독은 내놓는 작품마다 국제적 영화제로부터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보면 대만인, 동양인의 정서를 느낀다기보다는 깜짝 놀랄 영화적 재미를 갖춘 보편성이 두드러진다. 그러기에 그가 대만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서 만든 <센스 앤 센스빌리티>, <아이스 스톰>, <라이드 위드 데블>을 보면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이 대만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런 그가 다시 동방으로 건너와서 <와호장룡>을 내놓자 거장의 귀환이라며 놀랬고 잇달아 <브로큰백 마운틴>과 <색.계>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야기꾼으로 열광하였다. 이안은 당연히 중국스런 이야기일 것이라는 작품에서조차 우주적 기를 느끼게 하였고, 비(非)미국인이 만들기엔 어려울 것 같은 소재의 작품도 놀랍도록 미국적 색채를 더했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작품 중 유일하게 저평가(?)받은 것이 있다면 <헐크>이다. 스탠리 큐브릭 이래로 다양한 장르에서 걸작을 내놓은 그가 유일하게 실패한 것이 아마도 ‘SF 판타지’류이다. 그래서인지 이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로 다시 한 번 판타지에 도전한 것이다.

 

얀 마텔의 소설, 이안의 영화

 

이안의 작품은 시나리오 측면에서도 놀랍다. 거의 잊힌 왕도려의 유장한 무협소설 <와호장룡>을 단 한 편의 영화에 압축시키는가 하면, 애니 프루의 너무나 간결한 단편< 브로큰백 마운틴>을 유장한 드라마로 엮어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각본 장악력을 알고 이 영화를 본다면 원작소설을 어떻게 새롭게 재해석했는지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프 오브 파이>(원작소설은 <파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는 대체적으로 얀 마텔의 원작소설을 그대로 따라간다. 물론 이안의 영화가 훨씬 판타스틱하다. 정말 꿈결 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그건 분명 영화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물론 소설의 장점도 있다. 원작에서는 동물원을 운영하였기에 알 수 있는 소소한 동물적 특성에 대한 이해나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에 대한 묘사가 철저하다.

 

소설을 읽는 독자나,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인도 출신의 ‘동물원 보이’가 태평양 바다에 표류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악조건 때문에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와 기묘한 정신적 생존을 이어가는 것에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바다에서의 272일은 너무나 길고 위태롭다. 내리쬐는 태양에 피부는 벗겨질 것이고, 식량과 수분 부족은 여러모로 인간의 조건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그에 반해 순수한 동물(벵갈 호랑이)은 동물원 우리 안이나 태평양 쪽배 위나 자신의 본성에 충실할 것이다. 이 기묘한 조합이 어떻게 해체되든가 종결되어질지가 2시간여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

 

 

*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일러스트판(작가정신)에는 토미슬라프 트로야나크의 일러스트가 포함되어있다. *

 

 

미어캣이 우글거리는 신비의 섬이 등장할 즈음이면 소년이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 이미 죽었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어쩜 소년은 이미 배가 난파할 때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르고 종교적 신심이 호랑이에 현현(顯現)했을 거야라고도 생각해본다. 소년과 호랑이가 일심동체, 혹은 자아분열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반전’은 이안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소년의 마지막 진술은 단순한 살인의 기억에 대한 회피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다. 마치 벵갈호랑이가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잡아먹는다는 것이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듯이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은 꼭 책을 보기 바란다.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으니. 그러나 영화를 보았든, 소설을 읽었든 비밀을 공유해야한다. 소년이 살아남은 것이 삶의 의지이며, 종교적 믿음이 있었기에 말이다. 벵갈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든 말든 말이다. (박재환, 2013.1.9.)

 

같이 볼 영화 = 얼라이브 (박재환 리뷰) ◀◀◀

 

 

 

* 이안 감독이 자서전에는 근엄하고 유머감각 없을 것 같은 이안 감독의 코믹한 모습이 살아있는 사진이 실려있다. 일리노이대학에서 연극하던 시절과, 뉴욕대학 졸업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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