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연평도포격으로 본 ‘페일 세이프’

2010. 12. 13. 11:08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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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4년 작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최고의 전쟁영화이며, 최고의 블랙코미디이다. 내용은 미국 전략공군사령부의 한 미치광이 장군이 어느 날 갑자기 출격 중인 B-52 전폭기에 뜻밖의 명령을 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련이 미국을 먼저 침략했으니 이미 훈련한대로, 기입력된 소련의 군사기지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B-52 조종사는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어떠한 명령이나 수정지시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온갖 난관을 뚫고 오직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다. 소련의 심장부에 핵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백악관과 펜타곤은 난리가 난다. B-52를 되돌리기 위해 별 짓을 다하지만.... 소련 서기장과 핫라인으로 “우리 공군대장이 미쳤고, 미친 명령을 내렸고, 날아가는 전폭기에는 수정지시가 하달되지 않고.. 그러니 당신들이 그 전투기를 추락시켜주시오...”라고 애원한다. 

■ 영화가 재밌나. 현실이 재밌나

미국 대통령이 소련 서기장 동무에게 매달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미소간의 군비경쟁, 핵탄두 쌓아놓기에서 파생한 전대미문의 무기체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이데올로기 전쟁의 최전선에서 서로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 천, 수 만 기의 핵탄두와 I.C.B.M.(대륙간 탄두미사일)이 있다. 어느 기지에서 어떤 미사일이 어디로 향할지 감도 잡을 수 없을만큼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양측에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우리가 너네들보다 더 좋고, 더 많은 핵탄두가 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한발만 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모든 무기를 당신에게 쏟아 붓겠다.” 그러면서 등장한 게 ‘둠즈데이 시스템’이다. 정말 인류멸종의 메카니즘을 개발한 것이다. “우리 말이 뻥이 아니란 것을 말하겠다. 우리측 기지가 핵공격을 당하면, 나머지 기지들에서 자동으로 핵무기시스템이 작동하여 당신들 땅으로 미사일이 발사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너네들 조심해라!”인 것이다. 돌대가리, 닭대가리 전쟁광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핵억제 전략’인 셈이다. 이쪽에서 핵미사일이 100개가 있든 1000개가 있든 10000개가 있든 그것은 상관없다. 단 하나라도 우리 땅에 떨어지면, 우리의 알수 없이 많은 핵이 자동으로 너네 쪽으로 날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기장 동무랑, 김정일이랑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놈들 핵미사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식이다. 그 때문에 <영화에서> 미국 대통령은 이미 날아가고 있는 자기네 B-52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안달인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핵무기 시스템, 미소간의 우스꽝스런 경쟁, 이데올로기 경쟁에 최선두에 선 군인들의 경직된 사고관 등이 최고의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낸다. 기회가 되면 한번 꼭 보시기 바란다. 이 영화 리뷰는 한번 했었고, 오늘은 연평도포격전과 관련하여 한번 다시 보고 생각난 것을 쓴다.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그리고 페일 세이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함께 소개되는 영화로 시드니 루멧 감독의 <페일 세이프>(핵전략사령부)라는 작품이 있다. ‘페일 세이프’는 ‘구멍 뚫린 안보’라는 의미와 함께 특수한 상황을 일컫는다. (소련도, 한국공군도 비슷한 공군전략체계를 갖추었겠지만 ..) 핵탄두를 탑재한 미군 전폭기는 24시간 하늘에 떠있다. 기지가 폭격을 당하면, 그 시간에 하늘에 떠있는 전폭기가 적진을 폭격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상공에 떠있을 수도 있고, 소련 국경선을 따라 날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24시간 교대로 말이다. 그런데, 실제 적국이 미국의 어딘가에 먼저 폭격을 했다면.... 펜타곤은 날아가고 있는 전폭기에 명령을 내려 소련의 핵심시설에 대한 보복폭격을 명령할 것이다. 그럼, B-52는 즉각 비행기를 돌려 모스크바나 평양이나.. 이런대로 날아가서. 싣고 있던 핵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아마도 하늘에선 엄청난 전자/첩보전이 전개될 것이다. “야, 임마! 방금 내린 것은 훈련용 메시지야. 취소야. 그냥 돌아와!”라든가... “야, 오바마 대통령이 보복은 말도 안 된대.. 그냥 돌아와...”라든지... 어쨌든 엄청 고공을 날고 있는 B-52조종사는 인터넷 실시간 검색을 하지도, CNN을 시청하지도 않을 테니.. 어떤 명령을, 어떤 정보를 따로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떤 명령에 따를지는 실제, 평시에, 훈련대로, 어떤 프로토콜에 따라 행할 것이다. 그 개념에 ‘페일 세이프’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날아가는 전투기에 어떤 명령이 하달되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는...(예를 들어 북위 38도를 넘어가는 순간, 아니면, 명령하달 뒤 12분 뒤 별도 명령이 없다면.... 식으로....) 일체의 무선 교선을 하지 않고, 오직 첫 번째 명령을 따른다는 것이다. 미국이 먼저 폭격당했다거나, 공격당했다거나, 오바마가 취소했다거나... 하는 그 어떠한 후속명령도 완전 개무시하고.. 무조건.. 첫 번째 명령대로, 아니면 평소 훈련한대로, 모스크바 핵기지나 평양 김정일 궁전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페일 세이프! 후속 취소명령은 적의 교란신호일 수 있으니 무조건 첫 번째 명령에 따르라!!!!!

둠즈데이 이론

이건 진화된 게임이론이다. 김정일이 좋아할 무대포 작전개념인 셈이다. 해마다 국군의 날이나 건국기념일되면 각 나라에선 자신들의 최신무기를 경쟁적으로 내보이며 군사프레이드를 한다. 그리고, 각종 군사저널이나 잡지, 언론을 통해 신형무기를 쬐~금 보여준다. 왜 그런 신형무기를 비밀로 하지 않고 적당히 공개할까? 이유는 물론, 상대국에 대한 경각심 고취일 것이다. 저게 껍데기이든지, 아니면 더 좋은 진짜 무기를 감추기 위한 페인트모션이든지.. 여하튼 군사/정보당국은 긴장할 수밖에. 북한이 지난 10년간 가장 재미를 본 것이 ‘핵무기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핵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러니 북한은 신이 날수 밖에. 1개 있는 것과 100개 있는 것이 결국 똑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은? 1개, 100개가 아니라, 수천 개 수만 개가 자기들 영토 전역에, 그리고 우방국 기지에 깔려있는 것이다. (아닐 이전엔 깔려있었다...) 그러니 수적 우위를 서로 주장하기엔 그다지 효과가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둠즈데이’이다.  너네들이 하나만이라도 우리에게 쏘면, 우린 자동으로 백개, 천개가 날아간다... 이건 뻥이 아니다. 완전 100% 자동화시스템이다.... .. 이럴 경우, 미국은 어쩌겠는가... 아마 하나라도 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자기들 미사일 사고 안 나게 관리하느라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는 말이다.

연평도의 경우

지난 11월 23일 있었던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청와대측의 확전불가 지침 논란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논란 자체만으로 우리나라 국방전략의 허점을 북한에 고스란히 내놓고 말았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이 국지전을 펼칠 때 한국은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우왕좌왕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국력이 집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갈라져서.. 니가 먼저 쏘았니 내가 당했니... 하는 어이없는 논쟁으로까지 번진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선 대포 하나 쏘고선 최고의 효과를 달성한 셈이다. 중국까지 쩔쩔매는 것을 전 세계가 목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자(12/13) 조선일보를 보니 이런 기사가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북한이 1, 2차 포격에 이어 3차 포격까지 감행했다면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을) 때리기로 결정이 내려졌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당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3차 포격 시 전투기 폭격 대응' 결정이 내려졌었다. 2차 포격 후에도 F-15K 등 우리 전투기가 떠 있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1, 2차 포격 때도 군에 '전투기로는 어떻게 못하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그런데 합동참모본부 쪽에서 '(확전이 되면) 우리 민간인의 대량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식으로 보고해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군이 적극적인 대응을 건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13/2010121300159.html


무슨 뒷북 같고, 책임회피성 발언같지만.. 정상적인 국방책임자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조치나, 지침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결국 미국과 한국, 소련과 북한의 전쟁전략차원에서의 사고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확실히 이런 인식이 있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절대 안된다. 민간인의 대량피해는 절대 안된다.”라는 백의민족다운, 평화주의 사고방식!  미국놈이나 소련놈은 전쟁이란 것은 수십만 수백만이 죽을 수도 있는 당연한 것이다... 라는게 자기들 건국 때부터 입력된 사고이다.  이건 진짜 논외로 다뤄야할 문제인 것 같고...

연평도의 페일 세이프는?

나중에 다 밝혀졌지만 연평도 공격을 받은 뒤 우리나라 공군 전투기도 하늘에 떠 있었고, 공격무기도 갖추고 있었단다. 그들에겐 공격지침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버턴에 손가락만 대고 하늘에 떠있다 귀환한 셈이다. 평화주의자에겐 잘된 일이고, 일반국민정서에서 보자면 무슨 병짓이냐일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하면 뭐하나, 실제 상황에선 뭘 할지 모른다면 말이다. 그 경우와 함께 생각해야할 것이다. 지휘자, 군인의 판단의 한계이다. 국방부장관이 “오케이”할 것인가, 대통령이 최종결정할 것인가. 연평도기지부대장이 책임질 것인가. 전투기 조종사가 할 것인가. 전투기 조종사라도 난감하겠다. 평양을 폭격할 것인지, 아님 연평도에 포 쏜 저쪽 방사포인지 뭔지하는 북한 진지를 폭격할 것인지...

둠즈데이 이론으로 보자면. 

일단 연평도에 포가 떨어지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자동으로 응사하게 되어 있다면. 둠즈데이 메카니즘처럼. 북한이 열발 쏘면, 우리는 20발 쏘게 되어 있다면. 이것은 최악을 염두에 둬야한다. 우리가 이런 걸 개발하면 북한도 개발할 것이고, 어느 쪽에선가 실수로,(연평도 다음날  실제로 휴전선부대에서 그런 오발탄 사고가 있었잖은가...) 포를 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자동보복포격전이 이어질 것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만 없다면. 상호간에 가장 확실한 ‘전쟁억지력’으로 기능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일단 겁먹고, 포 쏠 엄두도 못 내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전쟁은 결국 군인이 하는 것

연평도포격이 있은 뒤 이런 해설 기사가 났다. 북한의 4군단장 김격식이란 사람이 이번 포격전의 핵심인물이라는 것이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미치광이 사령관처럼 김격식 같은 인물이, 아니면 방사포기지의 부대장이 술김에, 홧김에, 미쳐서. 버턴을 누를 경우..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는 이제 확실히 보복포격전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인데.......

문제는 이런 것 같다. 911테러에서 민간항공기를 납치하여 초고층건물에 들이박을 줄은 시나리오 작가나 생각한 것이란 것이다. 이제는 대테러 당국은 그런 각종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을 세워둬야한다는 것이다. 김격식이 명령했던, 또라이가 오발탄을 쏘았던... 둠즈데이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정상(?)적인 남북관계가 이루어진다면..  밑에 놈들이 미사일을 잘못 눌렸을 경우, 핫라인으로 국방부 장관을 찾든, 아니면 핸드폰으로 야당 대표를 찾든 “아이고, 이건 실수요...”라고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

당신이라면?

국방부 관계자, 국정원 관계자, 청와대 관계자가 모여서.. 각종 시나리오를 검토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네티즌을 상대로.. “당신이 북한 또라이 군인이라면 한국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내어 천 가지, 만 가지 각종 공격패턴을 접수하여 가능성 0.0001%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아마도 미국 대테러당국자도 그런 시나리오별 대책에는 아주 귀가 솔깃할 것이다. 나라면 우선 인터넷을 접수하겠다. (박재환, 20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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