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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리뷰

[명장] 양강총독 마신이는 왜 죽었을까?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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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과 [퍼햅스 러브]를 감독한 홍콩 진가신 감독이 차기 작품으로 [자마]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놀랐다. [자마]는 1973년 장철 감독의 쇼 브러더스 작품이 아닌가. 장철이라면 훗날 오우삼에게 심각한 영향을 준 ‘양강주의’(陽剛)미학의 대표자이다. 장철의 양강주의란 ‘람보’식 마초이즘의 동양적 양식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자마]를 진가신이 어떻게 리메이크한단 말인가. 결국 홍콩영화계의 부진, 아니 몰락은 괜찮은 영화작가 한 명을 장예모(영웅)와 진개가(무극)처럼 끔찍한 대작 모험주의 노선으로 내몰고만 것인가.

진가신 감독은 홍콩영화 파산상태에서 중국과의 합작을 추진했고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굉장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무려 4,000만 달러(US$)를 끌어 모아서 이 영화를 완성시키게 된 것이다. 진가신 감독은 이 중 1억 위앤(126억 원)을 이연걸의 출연료로 지급했다. 그가 얼마나 이 영화의 세계배급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중국 - 청나라 때 태평천국의 난이 수습될 즈음을 다룬다. 태평천국의 난이란 청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시달릴 때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천국의 안식을 가져다준다는 감언이설로 혹세무민하던 홍수전이 만든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청나라에 대한 반발은 홍수전을 남경을 중심으로 한 독립 국가 ‘태평천국’을 이룩한 것이다. 적어도 30년 이상 유지된 이 독특한 ‘해방구’는 무산주의 독재국가 중국에 의해 ‘농민기의’의 전형으로 평가받기로 했다. 물론 요즘 와서는 중국에서도 그 종교적 사기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만 말이다.

홍수전의 태평천국군이 양자강 이남을 유린하고 있을 때 청나라 조정은 속수무책 반, 수수방관 반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첨밀밀] 감독의 영화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대 살육극을 보여준다. 방청운 장군(이연걸)이 이끄는 청조 관군이 몰살당하는 장면이다. 방청운 단 한 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폐허를 전전하다 연생(서정뢰)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관군 출신, 대장 출신, 그리고 무엇보다 소림사출신의 액션스타 ‘이연걸’은 곧바로 도적 떼들의 큰형님으로 받들어진다. 관군의 양식이나 빼앗는 산적질에 흥미를 못 느낀 그는 무리들을 이끌고 관군에 편입하여 홍수전의 태평군 진압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산적 패거리 조이호(유덕화)와 강오양(금성무)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헐벗고 탄압받던 농민들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을 하다 갑자기 청조의 관군이 되어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태평천국군과 생사를 건 전쟁을 펼쳐야하는 것이다.

장철 감독의 [자마]는 청나라 시절 발생한 한 암살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양강총독이었던 마신이(馬新貽)가 한때 산적이었던 장문상(張汶詳)의 비수에 찔러 절명한 사건이다. 자금성의 실력자 서태후까지 놀란 이 사건은 반년 넘게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암살동기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곧 수많은 음모론과 소설적 상상력이 덧붙여져서 이 사건을 청대 4대 미스테리의 하나로 만들고 말았다. 역사학적 연구에 따르면 장문상이 마신이를 죽인 것에는 적어도 5가지 버전의 이유가 따른다. 그중 가장 대중적이고, 센세이션한 것이 치정에 얽힌 살인극이다. 장철 감독 이전에 이미 이런 시각의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마신이는 죽어서도 ‘억울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진가신 감독은 이런 통속적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촬영과정에서 [자마]라는 제목을 [투명장]으로 바꾸었고 주요 캐릭터의 이름도 새롭게 바꿔놓았다. 치정보다는 더 큰 명분과 갈등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진가신 감독이 제목을 바꾼 것에 대해선 역사논쟁을 피해 나가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진가신 감독은 철저한 고증의 역사 재해석보다는 비참한 역사적 시기를 두고 갈등을 거듭하는 인간적 영웅의 고뇌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역사적으로 허점투성이이다. 마신이의 죽음은 물론 소주성, 남경성 함락 등 세세한 역사적 사실이 영화적 상상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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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투명장’이란 제목도 흥미롭다. 원래 [수호지]에 등장하는 말이다. 세상이 어수선할 때 이런저런 이유로 양산박의 도적소굴에 108명의 영웅들이 모여들 때 임충이란 걸출한 인물도 있었다. 임충은 억울한 누명으로 죽음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양산박에 도착한다. 당시 양산박의 산적 수령은 자기 자리가 위태로울 것 같아 ‘투명장’을 요구한다. ‘항복문서’ 혹은 ‘갱단입회서’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입단의 절차로서 ‘나가서 아무 사람 하나 죽여서 우리 갱단에 들어오라’라는 공범의식의 입회 의식인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연걸이 처음 도둑 소굴에 들어 ‘투명장’을 요구받고 아무 죄책감 없이 사람 ‘하나’의 목을 딴다. 얼마 전 800명의 부하를 몽땅 잃은 이연걸 장군이 사람 하나 더 죽이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대신 “날 똑똑히 기억해 뒀다가 지옥에서 날 기다려라”는 말까지 남긴다.

[명장]은 중국에서 2억 1천만 위안을 벌어들이는 등 아시아에서만 4천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세계적 스타를 캐스팅하여 흥미로운 소재의 영화를 만든 진가신 감독의 베팅이 성공한 셈이다. 서구에선 ‘태평천국’이니 ‘마신이’니 하는 것보단 ‘이연걸 표’ 액션에 더 중점을 둘 것 같다. (리뷰 박재환 200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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