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취협=방랑의 결투] 호금전+정패패

2008. 2. 17. 18:29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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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2003/7/18]    2년 전, 2001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호금전 회고전이 있었다. 그때 상영된 작품은 <용문객잔>, <협녀>, <충렬도>, <산중전기>, <천하제일> 등 모두 5편이었다.
 
순전히 중국영화사적 측면, 혹은 무협영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호금전 영화 회고전의 대표작품은 당연히 <대취협>이 되어야 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대취협>은 제외되었었다. 그러다가 홍콩에서 <대취협>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번 2003년 피팬에서 '쇼브러더스 홍콩영화전성기 특별전'에 장철 영화와 함께 '특별히' 호금전 영화 <대취협>이 한편 추가되었다. 호금전 영화들을 보게 되면 그의 대표작은 <협녀>가 아니라 <대취협>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가장 호금전다운 영화이며, 가장 무협영화다운 완성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31년 북경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미술을 배웠던 호금전은 1949년에 홍콩으로 건너와서 무대 디자인 등 미술스탭 일을 하였고, 쇼브러더스에 입사한 후 이런저런 영화에서 성격배우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감독으로 전향하여 중국영화사에 큰 획을 긋게 되는 것이다. 그가 1966년에 내놓은 <대취협>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영화사가, 혹은 영화비평가들은 그의 영화가 중국화, 중국역사, 경극 등 중국적 전통문화 혹은 소재를 서양의 영화기술, 테크닉에 활용시켜 동서양 문화의 오묘한 조화와 감동을 이끌어내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의 영화에 나타나는 배우들의 액션 시퀀스는 우아한 경극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투 장면에서는 '정'과 '동'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명상의 시간을 던져주기도 한다.

  영화 <대취협>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강호를 횡행하며 악행을 일삼는 일당들이 양강총독의 아들 장보청(張步靑)을 인질로 잡는다. 그러자 그의 여동생 장희연(張熙燕)이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나선다. 희연의 무술은 출중하여 강호에서 '금연자'(황금제비)로 불리운다. 악당들 중 간악하기 그지없는 옥면호(玉面虎)는 졸개들을 풀어 금연자를 해치우러 하지만 이때 어디선가 몰골의 거지가 나타나서 금연자를 도와준다. 알고보니 이 거지는 바로 '취협'. 결국 취협은 금연자를 도와 악당 무리를 일망타진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금연자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그 유명한 정패패이다. 이안 감독의 2000년도 작품 <와호장룡>에서 장쯔이의 표독한 사부로 등장하여 이미지가 별로이지만 1960년대에는 홍콩무협영화의 스타 중의 스타였단다. 실제로 이번에 피팬에서 소개되는 영화 <대취협>과 <금연자> 등의 영화에 등장하는 한창 때의 정패패의 모습은 오늘날의 장쯔이를 능가하는 판타스틱한 아름다움이 서려있다. 우와~!

  자료를 좀 찾아보니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취협 역의 걸인은 악화(岳華)가, 새하얀 얼굴의 기분나쁜 악역 옥면호 역은 진홍렬이, 그리고 막강한 무공을 자랑하는 료공대사 역은 양지경이라는 배우가 맡았다. 이 영화에는 이들 외에 원소전, 곡봉, 정소동 등의 인물이 출연한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홍콩 및 대만에서 만들어지던 무술영화라는 것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액션 씬으로 대부분이 채워졌었다. 그런데 호금전 감독은 <대취협>에서 전혀 다른 시도를 했었다. 무협영화에 있어서 처음으로 '무술감독'이라는 스탭을 동원한 것이다.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한영걸이 무술감독을 맡아 배우들의 액션씬을 지도했다. (홍금보도 액션시퀀스 스탭의 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대취협>은 이전의 영화에서는 결코 없었던 우아한 액션씬을 보여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에 무협영화의 양식을 제패하던 일본사무라이식 칼잡이 영화의 품격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호금전 식' 무협오페라 양식을 창조해 낸 것이다.

  정패패는 상하이 출신으로 영화계에 들어오기 전에 발레를 공부했었다. 그리고 쇼 브러더스에 합류하면서 북파무술 훈련을 배웠고 한영걸 같은 무술감독의 도움으로 진짜 '제비'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혹시 호금전의 이름에 미혹되어 <용문객잔>이나 <협녀> 등을 먼저봐서 그의 영화가 의외로 재미없다거나 따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재밌다. 캐럭터들의 생동하는 연기하나하나가 흥미롭고 상황묘사가 유머러스하다. 특히 호금전 영화에서 언제나 중요하게 취급되는 객잔 내에서의 결투상황은 관객의 집중력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후 와이어 액션이나 과도한 CG가 그려내는 하늘을 나는듯한 무술액션 씬 없이도 아기자기하게 고수들의 칼날과 주먹 힘을 만끽할 수 있다.
 

大醉俠 (1966) Come Drink with Me
감독: 호금전 (胡金銓)
무술감독: 한영걸
주연: 정패패(鄭佩佩), 임호(任浩), 악화(岳華), 원소전, 곡봉,한영걸
홍콩개봉: 196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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