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드] 우리에겐 '한계'란 없다!

2008. 5. 14. 11:03미국영화리뷰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8-5-14) 래리 워쇼스키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루머가 끝없이 나돌고 있다.

[Reviewed by 박재환 1999-5-5]
   이 영화는 적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수준을 여러 단계 끌어올린 흥행대작 <매트릭스>의 감독 래리와 앤디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데뷔작이다. <매트릭스>로 이 형제가 곧 헐리우드를 말아먹을 것이란 예상을 했다. 형 Larry는 65년생이고, 동생 Andy는 67년생이다. <매트릭스>는 정말 그런 기대에 조금의 어긋남이 없는 오락대작이었다. <매트릭스>보다 3년 전에 나온 그들의 데뷔작 <바운드>를 다시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들 형제는 그 이전에는 실베스터 스탤론 나오는 <어세신>의 각본을 썼을 뿐이다. 사실 <바운드>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좀 웃긴다. 처음엔 여성영화제 초청작으로, 그리곤 무슨 페미니즘의 한 경향으로, 그리곤 어떤 에로틱한 매력으로, 그리곤 숨막힌 긴장감으로 점점 관객층을 확장해나간 기이한 영화이다. 그래서 처음엔 단지 또 다른 '타란티노'소리를 듣다가 다음 작품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찬사를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놀라운 형제의 작품은 놀라운 재미가 숨어있다. (엄밀히 말해 여성영화로 볼 것은 없다)

  코키란 여자는 막 출감한 레즈비언이다. 그는 인도로 가버린 라지프의 뒷치닥거리를 할 겸 배관공으로 한 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그 옆집에는-아주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이올렛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둘이 처음 마주치는 순간부터 숨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엘리베이터. 바이올렛은 ‘시저’란 남자와 같이 탄다. 코키의 눈에는 이 육감적인 여자가 왠지 예사롭지 않다. 이내 그 얇은 벽 너머로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코키는 왠지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여기까진 장난일 뿐이다. 좀더 관심을 갖고 보았다면, 코키가 들어간 바에서 레즈비언에게 말 붙일려다가 퇴짜 맞는 장면이 있다. 이제부터 굉장한 열정과 음모와 긴장과 머리회전이 필요한 것이다. 시저는 마피아다. 그리고 머리도 꽤 쓸 줄 아는 남자이고 말이다. 바이올렛이 코키를 유혹한다. 그리고 둘은 첫 섹스를 나눈다(?). 그리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와진다. 일반적인 레즈비언이다. 그들은 델마와 루이스처럼 탈출을 꿈꾼다. 그것도 크게 한몫보고 날자는 것이다. 시저가 가져온 마피아의 세탁한 돈 2백 만달러! 두 여자는 이 돈을 훔쳐 달아나기로 한다. 어떻게 마피아의 돈을 훔칠 수가 있나. 마피아가 사람 잡는 것을 이미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야기는 그들 두 여자의 예상-계획과는 달리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간다. 시저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일은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다. 하지만 시저는 두 여자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난관을 끝까지 타파해가는 것이다. 설상가상의 최악의 상황을 헤쳐 가는 것이다. 이제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숨 막히는 승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기획될 때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코키'역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단다. 그러면 전형적인 액션치정극이 될 뻔했을지 모른다. 잔인한 마피아의 매력적인 정부를 사랑한 소심한 남자가 결국 이런저런 죽음의 고비를 겪고 둘은 행복한 새 출발을 한다... 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그럼 별 수 없이 타란티노 같이 꼬일대로 꼬인, 얽히고 설킨 총싸움질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로 코키가 여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아주 신비로운 긴장감을 더해 주는 뜻밖의 효과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인터넷 사이트를 쫓아가다보니, 레즈비언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레즈비언들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성애를 다룬 다큐멘타리 <셀루로이드 클로셋>을 보면, 검열이나 일반관객의 시선을 의식해서 동성애를 다룰 때는 그냥 상징적인 수법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검열의 칼날과 일반관객의 시선을 따돌리고 진짜 동성애자들만이 그러한 기호와 상징을 캐치해내면서 공감하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선 실제론 그런 그들만의 기호나 상징은 없어보인다. 가죽 옷이라야 요즘은 정상인(?)도 입으니 말이다. 그리고 코키가 페인트 브러쉬를 물로 씻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며 아직도 남아있을 그러한 감촉을 느끼는 듯한 묘한 웃음 등은 굳이 레즈비언만의 제스츄어는 아닐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선 일반적 레즈비언의 특성보단 보통 사람의 호기심으로 채워진 화면구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제 레즈비언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물리치고, 그들의 장애물을 총으로 쏘아죽여버리고 그들의 행복을 찾았다는 그런 줄거리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두 여자의 감정의 교류의 적절함이다. 둘이 처음 어떻게 유혹받고 오르가즘을 느꼈지만, 정신적인 교감이 온 것은 '가위'의 등장부터이다. 바이올렛이 참을 수 없는 그 살상극-셀리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며 "돈 어디 숨겼어?" 고문하는 장면-을 피해 아파트 문을 나설 때, 코키는 그제서야, 그 지치고 피폐해진 바이올렛을 보호해 줄 어떤 의무감내지는 포용심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순간이 레즈비언의 공감을 이끌었는지 모른다) 시져는 코키와 바이올렛의 관계를 뒤늦게야 알게 되고는 이런다. "You fucking dyke!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모두들 너네같은 종류의 인간들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잘 알지. Fucking queers 날 상처입혔어...." 이런 대사는 전형적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사람이라면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침대 위에서 뒹굴던 여자가 레즈비언이었고, 여자 짝이랑 돈 갖고 튀겠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 점에서 이 배우는 무척 연기를 잘 해내었다.

  워쇼스키 형제의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재미있다. 하지만 그 재미란 게 신경 쓰고 몰입해야 느끼는 재미이다. 한번쯤 호흡을 놓치거나, 쇼트를 넘겨버리면 이야기 진행방향이 사실 따분하고 지루해질 소지가 많다. 정신없이 수다스런 타란티노나, 아기자기하게 꽉 짜여진 코엔 형제에 비해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거나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잔뜩 신경 쓰서 봐야한다는 중압감이다. (물론 영화보며 몰입 안 한다는 것은 좀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

 참, 그리고 난 여성학을 그냥 지나가는 교양과목쯤으로 청강 몇 번 한 적 밖에 없는지라 솔직히 페미니즘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페미니즘 영화', '여성의 시각을 다룬 영화'..... 어쩌구하는 머리 아픈 메일을 받고는 가슴까지 아파한 적이 있다. 난 절대 그런 어떤 다른 의도, 다른 목적, 다른 시선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그다드 카페>를 백날 보아도 음악이 좋고, 여자들 사이의 우정이 아름답다 라는 이야기만 할 수 있지, 페니미즘의 'F'자도 언급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와서 여성학개론을 펼쳐 읽을 수도 없고 말이다... 참 아쉽다. 박재환영화평 독자의 반이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 (박재환 1999-5-5)

0123

바운드 Bound (1996)
감독: 앤디 워쇼스키(Andy Wachowski), 래리 워쇼스키(Larry Wachowski)
출연: 제닐퍼 틸리(바이올렛), 지나 거손(코키), 시저(죠 팬토리아노)
한국개봉: 1997-4-19
imdb
   네이버영화   香港影庫=HKMDB   mtime.com
위키피디아   Wachowski Br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