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추운 땅에서 말야..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 1990)

2008. 4. 4. 21:363세계영화 (아시아,아프리카,러시아,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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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8.8.27.) 추운 동네에서 찍은 따뜻한 영화라고들 말하지만, 보고나면 가슴이 무척 아플 것이다. 이 영화는 1990년 깐느영화제에서 ‘the Camera d’Or for best first film’ 상을 받았단다. 감독의 첫 작품이 깐느라는 다분히 정치색 짙은(?) 영화제에서 상을 타게 되었을까? 아마도, 당시 무너져가는 ‘악의 제국’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해, 그 출발부터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이 영화는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한 마을 Suchan이란 곳은 전쟁포로-일본의 패잔병-수용소이기도 하며, 탄광 노동자의 막사가 더럽게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기만해도 답답한 두터운 의상을 걸친 툰트라 동네에서 무슨 따뜻함을 기대할 수 있으리오, 게다가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곧 시작될 이 나라에서 말이다.

이 마을에 주인공 소년 소녀, 발레르카(Pavel Nazarov)와 갈리야(Dinara Drukarova)가 있다. (소년 소녀를 연기하는 배우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발레르카의 어머니는 몸을 파는 여성이다. 공산철권통치 스탈린시대에, 그 추운 동네인 시베리아에까지 그러한 직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탄광촌에서, 저자거리에서 따뜻한 차를 팔아 용돈을 벌려는 발레르카. 그런데, 이미 그 시장바닥엔 갈리야가 먼저 자리잡고 있다. 차 한 잔이라도 더 팔려는 이 둘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과정은 소년이 도둑맞은 썰매를 찾아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 확실히 아름다운 소년소녀의 리틀로맨스가 펼쳐질 듯 이어진다. 적어도 여기까지, 전반부까지는 절제된 분위기와 차분한 유머가 제공되어 충분히 볼만하다. 그러나, 이들이 마냥 행복하게 가까워지기에는 확실히 이 동네는 너무나 춥다. 보여주는 광경이란 삭막한 게 아니라 진짜 썰렁하다.

어린 학생제군이 줄을 지어 걷는다. “우리에게 일용하실 양식을 주신-그리곤 고무신을 하사하신- “룰 외치며 운동장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행진한다. 누군가가 변소(똥통)에 이스트를 집어넣어 건물 앞마당을 완전히 똥바다로 만들어 놓는다. 이 냄새 나고 추운 동네! 결국 소년의 소행이 들통 나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소년은 곧바로 새총을 만들어, 기차를 정지시키는 혁명적 거사(?)를 실행하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마을을 떠난다. 그리곤 다른 마을에서 도둑의 앞잡이가 되어 보석상을 터는 일에 보초가 된다. 여기까지 쫓아온 갈리야 때문에 소년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끝없이 뻗은 기찻길을 소년과 소녀는 다정히 걸어온다. 소년은 줄곧 노래를 흥얼거린다. 소녀가 그런 소년을 바라보면, 한 번만 더 불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화면은 천천히, 넓게 펼쳐진 이 추운 동네의 숲을 보여준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두 발의 총소리가 가볍게 들려온다. 화면은 바뀌고, 마을에 실려 오는 어린 시체 하나. 소녀의 주검. 소년은 병원으로 실려간 모양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미쳐서, 발가벗은 채, 울부짖으며 탄광촌을 돌아다닌다. 마을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영화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이 영화에서 마을의 이방인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교수. 그 사람은 이미 미쳐있다. 밀가루 배급소에서 얻은 밀가루를 땅바닥 괸 물에 묻혀서 흙과 함께 먹는다. 그 사람의 눈을 오랫동안 클로즈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텔리젠트는 이러한 상황에선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방인 그룹. 잔류한 일본의 패잔병들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줄곧 그들을 모욕적인 호칭으로 부르며, 욕지거리를 내던진다. 소년이 어느 날 듣게 되는 일본인의 구슬픈 노랫가락.. 가사는 몰라도 분위기는 완전히 …이런 노래이다..

“따뜻한 내 고향, 남쪽나라, 못 가본지 몇 해던가… 눈물만 나오네…” 이런 스타일..

감독 Vitaly Kanevski는 실제로 불명확한 혐의로 소비에트 노동수용소에서 8년의 세월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의 어린 시절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고 하니, 실제 영화는 진실성이 있어야 느낌이 오는 모양이다. 소년, 소녀가 누구의 총에 쓰러졌는지, 그리고, 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른다. 그 후 소련이란 나라 자체가 40여 년 동안 꽁꽁 얼어붙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를 논하지도, 가난을 욕하지도, 어른의 세계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단지 소년과 소녀의 눈에 보이는 차갑고도, 우울한 광경만을 펼쳐놓는다. 소년과 소녀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할 것이다. 진짜.

제목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거야>(영어제목:Freeze-Die-Come to Life)> 참으로 시적이긴 하다만, 정확한 번역인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식 제목(발음)은 이렇단다. Zamri umri voskresni. (박재환 1998/8/27)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감독: Vitaly Kanevski 주연: 디나라 드루카로바, 파벨 나자로프 개봉: 1998년 9월 5일 

 

Freeze Die Come to Life - Wikipedia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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