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성(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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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645년의 고구려인, 중국에 맞서다 (김광식 감독, 2018)
(2018.09.27 박재환) 드라마 ‘대조영’과 ‘연개소문’ 등을 통해 당 태종 이세민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국 역사인물이다. 그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몰려온다. 고구려 북방의 성들을 차례로 공략하고 평양성을 치기 위한 길목에 위치한 안시성을 공격한다. 그런데 이곳 성주(城主)의 방어력이 만만찮다. 이세민은 엄청난 군사와 전략을 동원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게다가 안시성에서 날아온 화살에 한 쪽 눈까지 다치고 결국 패퇴한다. 안시성은 그렇게 지켜졌고, 고구려는 그렇게 수호되었고, 안시성은 그렇게 기록된다. 물론, 1500년 전 이야기이다 보니 논란이 많다. 당시 기록이나 유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당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란 것도 한참 지난 뒤 갑자..
2019.08.04 -
[친구2 언론시사회] 곽경태 감독, 유오성, 김우빈 (2013.11.4. 롯데시네마 건대)
친구2 ‘콩 심은데 콩 나고...’ ▶ 친구 (2011) 영화리뷰 보기 지난 2001년 개봉되었던 장동건, 유오성 주연의 영화 ‘친구’는 818만 관객을 깜짝 동원하며 영화계를 놀래게 만들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나 곽경택 감독은 ‘친구2’를 만들었다. 이미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곧 뮤지컬 버전으로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장동건이 연기했던 ‘동수’는 유오성이 연기한 친구 ‘준석’의 똘마니의 칼을 수도 없이 맞고는 비 내리는 부산 거리에서 쓸쓸히 죽어갔었다. ‘친구2’에서는 바로 그 준석과 죽은 동수의 아들 성훈(김우빈)이 부산의 조폭을 장악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어제 오후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는 ‘친구2’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에 이어 기자간담회가 열렸는데 곽경택 감독과 유..
2013.11.05 -
[주유소습격사건] 공짜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Reviewed by 박재환 1999-11-15] * 영화에서 노래부르던 아이들과 트렁크에 갇힌 남녀의 결과가 처리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 김상진 감독: 그들의 결과까지 넣어 편집을 해보니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이 나왔다. 극장의 흥행으로 볼때 상영시간을 1시간 40분∼50분대에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두 장면을 하는 수 없이 잘라서 편집했다. 참고로 노래하는 아이들은 매니저에게 픽업되어 가수가 되고 남녀는 눈이 맞아 결혼을 한다. (시네마조선인터뷰에서) 올해 대한민국 출판계에 최고의 화제를 몰고온 책은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교수의 작품 라는 책이다. 물론, 탤런트 서갑숙의 자전적 에세이 책이 더 화제거리일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인식과 사회체제의 변화의지 측면에서 보자면 이 '공자죽..
2008.03.10 -
[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년왕사 (곽경택 감독,2001)
(박재환 2001/3/18) 대만의 후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이 만든 일련의 영화나 양덕창 감독의 을 보면, 대만사회의 밑바닥 인생, 암흑가 똘마니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들 청소년들이 겪게 되는 학내와 가정의 문제들과 범죄집단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결국 대만현대사의 불행한 과거가 은연중에 깔려있음을 느끼게 된다. ‘민주수호’라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공산세력, 반정부세력에 대한 탄압인 ‘백색테러’와 집단 이데올로기 속에 억압받는 청춘들이 일탈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에서는 동화할 수 없지만 공감하게 되는 모티브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곽경택 감독의 새 영화 를 보면서 줄곧 이들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주인공들의 일탈에 대한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한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집착 때..
2008.02.18 -
[챔피언] 종말의 기억 (곽경택 감독, 2002)
(박재환 2002/7/6) 영화 을 보고 글을 쓰려니 나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권투선수도 아니었고 영화인도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하면 된다’는 박정희 시절의 산업역군이셨다. 부산의 소문난 공단인 사상공단(부산시 사하구 학장동)의 꽤 규모가 큰 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하셨다. 6.25때 홀몸으로 부산으로 피난 와서는(그렇다고 이북출신은 아니고…) 자수성가 바로 문턱에서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아직도 살아계실 때 문화생활 혹은 여가활동이라곤 낚시 밖에 모르셨던 당신이 어느 날 공장에 영화촬영팀이 들러 영화를 찍어갔다고 한다. 나도 대학 1학년 때 그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금형을 만드는 주물공장이었는데 종일 쇳덩이와 불과의 싸움을 벌이는 오염지대였다. 아버지는 영화촬영이란 것이 순전히 엉터리..
2008.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