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TV에서 식품업체 연구소에서 일하는 달인을 보여준 적이 있다. 끓인 라면을 한 입 맛보면서 그게 ‘무슨 라면인가’가 아니라, 어떤 물로 끓였는지를 알아맞히는 것이다. ‘생수’, ‘하루 전 받아놓은 수돗물’ 식으로. 정말 타고난 미각, 혹은 후각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여기 그런 인물이 있다. 유해진은 제과업체 연구원이다. 최고의 맛을 알아내는, 그래서 그런 과자를 만들어 빅히트를 친 인물이다. 이 사람, 연애는 제대로 할까? 상대는 무려, 김희선이다!
치호(유해진)은 정해진 시간에 딱 일어나서, 출근해서는 종일 과자 맛만 본다. 점심도 연구실에서 혼자 과자만 먹는다. 현실감각은 제로이다. 그런 세상의 한편에는 일영(김희선)이 있다. 어릴 때 낳은 딸 진주(정다은)와 단 둘이 살면서도 항상 밝다. 빚을 갚기 위해 캐피탈회사에 갔다가 바로 그곳에 취직한 ‘긍정마인드’ 뿜뿜의 인물이다. 치호가 그 곳을 찾았다가 둘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세상에는 이 둘은 갈라놓기 위해, 혹은 응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다못해 김밥집 옆자리 손님들도 이들의 하찮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비록 그것이 ‘아제개그’일지라도!
<달짝지근해>는 유해진과 김희선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족하다. 둘이 로코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지난 세기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김희선은 TV드라마에서 초절정 인기를 누렸고, 유해진은 <주유소습격사건>에서 ‘철가방’으로 나오던 시절 말이다, 둘 다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으며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김희선은 영화에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비천무> 출연 당시에는 연기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아우라가 쌓이면서 이제 자연스럽게 두 배우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에서 조우한 것이다.
<달짝지근해>는 유해진과 김희선의 100% 예상가능한 로맨스 연기이고, 결말을 200% 짐작할 수 있는 완전안전 무해드라마이다.
이 영화를 더 재밌게 만드는 것은 조연들과 카미오이다. 차인표는 유해진에게 김희선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삶을 완벽 장악한 철없는 형으로 와일드한 매력을 보여준다. 진선규는 유해진이 근무하는 제과회사의 금수저 사장으로 엉뚱한 매력을 선보이며 한선화와 또 다른 깜짝 로맨스를 보여준다. 이들과 함께 이한 감독의 전작의 인연으로 대단한 배우들이 얼굴을 내비친다. 물론 제일 놀라운 카미오는 정우성. 왜 나왔는지, 무얼 보여주려고 했는지 짐작과 추측만 하게 하는 어이없는 연기를 멋있게 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고아성과 임시완, 염혜란도 등장한다. 출연진만으로도 배부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병헌 감독의 초기 시나리오를 이한 감독이 영화화한 것이란다. 보고 있으면 이병헌 감독의 유머코드가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한 감독의 선하디선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사진=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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