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중국 광동성에서 발행되는 격월간(雙月刊) 문예지 <<화성>>(花城) 3월호에는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작품 하나가 실렸다. 문단의 중견작가 염련과(閻連科,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라는 중편소설이었다. 게재 당시 이미 많은 부분이 삭제된 상태였지만 발간되자마자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의 긴급 회수명령이 떨어졌다. 3만 부 대부분이 회수되었고 이른바 ‘오금’(五禁)조치가 내려졌다. 이 작품에 대한 출판·홍보·게재·비평· 각색이 금지된 것이다. 그 소설이 한국에서 작년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중국당대문학걸작선’의 첫 번째 작품으로 번역출간된 것이다. 이 책이 중국에서 호들갑을 떨며 수거되고 금지된 이유는 그동안 신의 영역으로 모셔졌던 ‘모택동’ 신격화를 희화화했고, 혁명전통을 희화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내용일까. 일단 읽어봐야지.
이것이 바로 인민을 위한 복무의 한 방식이다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문혁기간이라고 한다) 우다왕(吳大旺)은 28살 먹은 혈기왕성한 군인. 지금 사단장 관사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자기들 식으로 이야기하면 공무분대장이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군무원하고 사단장‘따까리’정도인 모양) 우다왕은 혁명의식과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혁명의 총아였다. 그가 사단장의 취사병으로 들어갈 때도 원칙을 줄줄 외고 있었다.
“묻지 말아야할 것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할 말은 하지 않는다.” “사단장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라는 철저한 책임감이었다.
그의 계급성분은 빈농이었고, 승진을 위해, 계급상승을 위해 군에 입문했고 그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모택동 어록을 줄줄 외웠으며 정치학습에 자신의 여유와 지능을 다 바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마음 한정신 다 바쳐 매일 텃밭에서 채소 뽑고 헌신적으로 요리를 한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사단장 부인 류롄(劉蓮). 나이는 32살. 우다왕보다는 몇 살 많지만 사단장보다는 열 일고 여덟 살이나 어리다.
어느 날 류롄은 우다왕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거실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나무 팻말을 보여주며, “샤오우(우다왕), 앞으로 이 나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있거든 내가 볼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해.”라고 말한다.
우다왕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고향에는 아내가 있다. 어렵게 결혼하여 군문에 몸을 담은 것도 아내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올해 안에 공을 세우고, 내년에 입당하여, 3년 뒤 간부로 발탁되어, 가족을 위해 도시호구를 얻고, 매일 찐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하겠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서약서까지 썼잖은가.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모택동 어록을 열심히 외웠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헌신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사단장 부인 류렌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며 뭔가 지시를 하지 않는가.
소설은 작가의 서술처럼 통속 대중소설의 궤적을 따라간다. 사단장부인 류롄은 우다왕에게 자신을 ‘류롄 누나’라 부르라했고, 둘은 사단장이 베이징으로 한동안 교육 떠나간 사이 그 넓은 사단장 관사에서 성적 쾌락의 세상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역전의 용사 사단장에겐 필시 신체적 결함이 있었던 모양이고, 젊은 류렌 부인은 원시적 욕망으로 ‘혁명성에 충실한’ 우다왕을 끌어들여 폭발적인 에로스의 향연을 만끽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것이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식이 되어버린 두 사랑의 한시적 열정=애정=육욕은 희한하게도 모택동의 어록과 모택동의 동상과 모택동의 혁명정신을 희회화시키며, 모욕하며,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갑작스러운(그게 실제적 사랑이든, 육욕의 화신이든)은 두 사람을 극한으로 유치하게도 만든다. (번역본 166페이지 참조)
‘그대의 향한 나의 사랑이, 나를 향한 그대의 사랑보다 천 배 만 배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택한 사랑의 증명방법은 벽에 붙은 모택동의 어록을 떼어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는 가장 난폭하고 위험한 정치방식이었다. ‘누가 누가 더 반동이냐...’ 이 모습은 여태 중국 그 어떠한 불량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고, 그 어떠한 6세대 지하전영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정치행위인 것이다.
이것과 같은 기이한 문화적 정치행위를 비교설명하자면 단 두 개의 예를 들 수 있다. ....... (후략)
모택동 그림 위에서 질펀한 섹스의 향연을
....................... 중국도, 지금도 그러하지만 ‘문혁당시’ 모택동을 두고 그렇게 희화화시킨다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삼족을 멸할 중범죄인 것이다. 문혁 영화 보면 손바닥만한 ‘모주석어록’을 손에 들고 뭐라뭐라 외치면 그게 ‘헌법’보다 상위이요, ‘성경 코란’보다 영험한 매직스틱이었다. 아마, 우다왕과 류롄누님이 범한 그 천인공노한 범죄를 탄핵할 검사님도 입을 파르르 떨며 “이 쌍 놈년들은 감히 땡땡땡에 대한 땡땡땡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라면서 감히 위대한 그 이름과 그 끔찍한 사건의 전말을 입에 담지도 못했을 것이다.
옌롄커, 진정한 작가
작가 옌롄커는 하남(河南,허난)성 낙양 숭현 출신이다. 우와! 하남성이네!! 소설에서 우다왕의 고향이 허난성 서부 복우산(伏牛山) 오가구(吳家溝,우자거우)로 나온다. 복우산은 그 원시자연경관으로 이제는 최고의 관광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아마도 이런 소설을 읽어보면 아마도 작가의 군대생활 경력이 작가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는 1978년 입대했다. 1978년이라... 얼마 전 모택동 주석이 죽고 그 광란의 10년 ‘문혁’이 끝나 중국이 원시에서 현대로 넘어가던 역사적 순간의 해였다. 그는 제남(濟南)군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사병에서 비서, 창작원, 그리고 군관련TV에서 극본도 썼다고 한다. 1985년 허난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군 문예술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옌롄커는 1992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여 진짜 작가가 된다. 이후 수많은 소설을 내놓으며 노신문학상만 두 차례 받는 등 중국내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발표되자마자 판금조치 당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터넷에서 이 작품관련 기사나 정보를 구할 수가 없다. 옌롄커는 작년에 <풍아송>(風雅頌)이란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도 문제작이 되어 버렸다. 감히 중국 최고명문 중의 하나인 ‘북경대’를 폄하했다는 것이다. 문단과 인터넷이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이 사람이 논쟁과 파문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현대화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각종 ‘정신적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고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왔다는 증거이리라.
이 번역본에는 ‘한국독자에게 보내는 작자의 글’이 실려 있다. 자신은 문학을 위해 노래하고, 생명을 위해 노래하고 사랑과 존엄을 위해 노래한다고 밝혔다. 이 작품이 자신의 창작에서 그렇게 돌출된 위치를 차지하지 말았어야했다며, 그러나 운명 때문에 이 소설이 자신의 창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고 말았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큰 유감이며 동시에 큰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모택동의 이야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는 모택동이 1944년에 말한 것이다. 1944년 9월 5일 섬서성 안차이(安寨)현에서 탄광 붕괴사고가 일어났다.(번역서 253쪽 설명글 날짜가 잘못되었음!) 공산당 전사인 장사덕(張思德,장쓰더)이 압사당한다. 장사덕은 빈논출신으로 어려서 고아가 되어 홍군을 따라 대장정을 했던 전사. 입당 뒤 모택동의 내위반에서 경비업무도 했었다고. 장사덕이 죽은 뒤 3일 뒤 모택동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늘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다. (▶모택동원문보기) 내용은 “장사덕 동지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의 죽음은 태산보다도 중요하다. 지금 중국 인민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만큼 그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분투하고 있고 이러한 분투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며 역설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는 국민(인민/민초)을 떠받드는 공무원/공인/지도자의 헌신적인 자세를 말한 것이다. 그 당연하고, 감동적인 혁명적 언사가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희화화되었으니 중국에서의 ‘오금’조치는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책은 인터넷으로, 불법으로, 외국을 통해 우회입수되어 중국인민들에게 읽히며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모택동은 1976년 9월 9일 죽었다. 죽은 지 이미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인민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중국 그 어떤 지방, 그 어떤 관광지를 가더라도 모택동을 아이콘으로 삼은 콘텐츠는 늘려있다.
나의 군대 생활?
위에 사단장 ‘따까리’라는 심히 속된 표현을 했는데.. 지금, 그리고 이전에 그런 직책을 가지고 군복무한 사람에겐 미안할 따름이다. 사실 나도 군에 처음 갔을 땐 뛰어난 학벌과 명석한 상황판단력, 타고나 친절함, 그리고 눈빛에서 솟아나는 혁명성과 탐나는 외모로 연대장 따까리로 추천되었다. 그런데 내가 싫어서 그만 두었지만.. 이후 대대장 따까리와 친해 그들의 군 생활과 하는 일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난 이런 소설 쓸 경험도, 그런 혁명/ 혹은 반혁명 의식도 없노라고 고백한다. (박재환 200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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