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碧奴] 쑤퉁(苏童) (김은신 역/문학동네 2007)
(박재환 2009.9.14.) 중국현대작가 중에 쑤퉁(蘇童,소동)이라고 있다. 우리에겐 오래 전 장예모 감독의 <홍등>의 원작소설 작가로 이름이 먼저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소설은 최근 한국에서도 활발히 번역 소개되고 있다. 그중 <눈물>이란 작품을 읽었다. <눈물>의 중국어 원제는 <벽노>(碧奴)이다. 극중 여자주인공의 이름이 벽노(중국어로는 비누이다. 소설은 중국 만리장성 축성과 관련이 있는 맹강녀 전설(孟姜女哭長城)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우선 맹강녀 이야기부터 하면. 중국에서 맹강녀 이야기는 우리나라 ‘환인 환웅 단군’ 이야기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 적어도 진시황(BC221)이 만리장성 쌓던 시절부터 약 2천 년은 더 된 옛이야기이다. 원래 이런 전설/설화/구전이야기라는 것이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더 보태지기고 하고 더 아름답게 윤색되기 마련이다. 또한 중국은 얼마나 땅이 넓고, 뻥쟁이 문학가가 많았을까. 대체적인 맹강녀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맹씨 집안 남자와 강씨 집안 여자가 결혼을 했고 신혼 초에 맹씨 집안 남자는 만리장성을 쌓는데 불러나간다. 고향은 산서성이고 성 쌓는 곳은 저 먼 북쪽. 신혼의 아내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남편은 오지 않고, 날은 갈수록 추워져서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겨울 솜옷을 지어 북으로 남편 찾아 길을 떠난다. 어렵게 축성 현장에 도착했지만 남편은 이미 고생하다가 죽었고 만리장성 어느 돌담 아래 묻혀 있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장성 밑에서 슬피 울고울고 또 운다. 그렇게 열흘을 울다보니 하늘이 감격했는지 장성이 무너지고 남편의 시신(해골)이 나타난다. 맹강녀 이야기는 보통 저런 기초에서 살이 덧붙여졌다. 진시황이 이 여자 이야길 듣고는 맹강녀를 부른다. 그런데 너무 예뻐 비로 삼으려하니 이 여자는 바다로 뛰어들어 죽어버린다. 이런 이야기는 망부석이나 정절녀로 분장되어 2천년을 중국 민간에서 전승 유포되어온 것이다.
물론 중국역사를 좀 더 알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진시황 이전에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중국 북쪽에 북방오랑캐 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장성 축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춘추좌전>에는 춘추 초기 제장공(齊莊公, 前749--前781在位 시절 ‘杞梁’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기원 700년 무렵에 산동성 쪽 장성이 무너져서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되기도 했었다.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가 뒤섞여 오늘날 중국인들이 아는 맹강년 스토리가 형성된 것이리라. 그리고 몇 해 전 중국의 작가 쑤퉁이 맹강녀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눈물>을 발표한 것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은 마치 군대 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위문편지 쓰는 모던 걸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배경은 그대로 진시황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단지 이야기가 상상무제한 자유분방 판타스틱 스토리이다.
중국어제목인 <벽노>( 碧奴)를 왜 굳이 <눈물>로 번역했을까. 소설을 읽고 보면 전체의 비정적 색채를 고스란히 전달해 주기엔 ‘눈물’만큼 나은 제목도 없을 것도 같다.
여자 주인공 비누는 특이한 재주가 있다. 눈물을 흘리는데 눈에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서 흘리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재주를 갖게 되었을까. 아니면 그런 몸을 갖게 되었을까. 진나라 말기 북산에 황제의 숙부가 유배 온다. 그가 억울하게 죽자 평소 그의 덕을 많이 본 북산 마을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린다. 황제는 눈물 흘린 사람을 모두 반역죄로 죽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제각기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그 비법을 전수한다. 비누는 원래 머리카락으로 우는 방법을 배운다. 머리카락으로 우는 비누는 완치량과 결혼하지만 완치량이 머나먼 북쪽 대연령으로 성을 쌓으러 끌려간다. 겨울이 되자 비누는 남편을 위해 솜옷을 지어 북으로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이 판타스틱 스토리이다. 사슴 대신 사람들이 사슴같이 뛰어다니는 동네가 있고, 말(馬)인간이 있다….
결국 비누의 눈물을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맹강녀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인데.. 이 소설 때문에 새로운 것을 하나 알게 되었다. 중국명절 중에 ‘한의절’(寒衣節)이란 게 있다. 한식(寒食)날에는 찬 음식만을 먹듯이 한의절에는 나시(민소매옷)만 입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음력 10월 초하루이다. 이날은 음력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날로 겨울옷을 준비하는 날이다. 여인네가 옷을 지어 먼 친척에게 보내거나,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서 종이옷을 만들어 산소에서 태우는 의례를 지낸다고. 맹강녀가 남편을 위해 겨울옷을 준비하던 것과 관련이 있는 명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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