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PLEX REVOLUTION 멀티플렉스 레볼루션 영화산업을 확장시킨 숨겨진 힘 조성진 저 | ER북스
(박재환 2018.6.28) 올해 초 개봉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는 여자주인공이 혼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주거하는 집의 아래층에 위치한 허름한 극장에 매일 혼자 앉아 자신만의 영화세상에 푹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자신만의 기억보따리 속의 영화관/극장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장 괴이했던 ‘극장추억’은 군대 있을 때, 전남 함평에서의 기억이다. 당시 읍내에 작은 극장이 하나 있었다. 평일에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고 주말에만(명절에만 였던가?) 영화를 상영했다. 상상이 갈 것이다. 스크린엔 ‘비가 내렸고’, 의자는 엉망으로 망가졌고, 바닥에 쥐가 돌아다니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런데 그 때 그 곳에서 본 영화는 놀랍게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었다!
여하튼 시골마을의 극장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도시엔 멀티플렉스란 것이 영화 팬을 유혹한다. 엄청 빵빵한 사운드에, 두 눈을 황홀하게 사로잡는 초대형 스크린에, 요즘은 이상한 체어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한국영화 역사만큼이나 한국극장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때 맞춰 그런 책이 나왔다. 책 제목이 <멀티플렉스 레볼루션>이다. 부제는 ‘영화산업을 확장시킨 숨겨진 힘’이다. 책을 쓴 사람은 CJ CGV에 근무하는 조성진(전략지원 담당)이다. 조성진은 중앙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방송사에서 PD와 기자 등을 거쳤단다. 산업부장까지 거쳤으니 영화를 보는 눈이, 극장을 바라보는 마인드가 남다를 것이다. 게다가 CGV에 근무한다니 얼마나 친(親)극장적(!)일지도 짐작이 간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일독했다.
저자는 1998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 극장 이야기를 펼친다. IMF한파가 한창일 때 삼성이 영상산업을 포기할 때 제일제당은 미래사업으로 극장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CGV는 한국 제일제당, 홍콩 골든하베스트, 호주의 빌리지로드쇼 등이 손을 잡고 뛰어든 사업이다. 멀티플렉스가 국내에 소개되기 전에는 당연히 단관개봉, 독점개봉 시대였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단관시절, 단성사 한 곳에서만 3개월 동안 상영하며 100만 관객 동원하면서 신문에 감격스런 사설이 실리던 시절이었다. CGV의 성공에 힘입어 삼성동 코엑스에 메가박스가 들어섰고, 롯데시네마도 열심히 전국에 멀티플렉스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연간 극장 관람객 수가 5천 만명에 머물렸다. 지금은 2억 명에 달한다. 국민 1인당 평균 4.2회 극장을 찾는단다.
멀티플렉스의 이점이라면 다양한 영화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1999년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새롭게 문을 연 CGV강변에서는 15분마다 새 영화가 상영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물론, 독과점논란이나 퐁당퐁당 상영, 밀어주기 같은 부정적 평가도 있다.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굉장한 진화인 셈이다. 게다가 극장시설은 ‘비 내리고, 부서진 의자, 쥐가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자면 격세지감이다. 극장마다 최고의 사운드시스템과 최고의 좌석, 최고의 영사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돈을 쏟아 붓는다.
그런데, 책에도 나왔지만 극장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암울하다. 극장관객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단다. 연 관람객 2억 명에서 더 늘어날 것 같지가 않다. 아무리 마블 슈퍼/울트라 히어로가 나오고, 아바타와 스타워즈의 콜라보 무비가 만들어지더라도 극장을 찾는 관객은 제자리 걸음이란 것이다. 그러니 극장 입장에서는 극장고급화(즉, 티켓가격 올리기)와 함께 사업다각화를 추진한다. 팝콘과 콜라를 포함해서 말이다. 주말에만 반짝 운영하는 예식장이 아닌 극장/영화관이 1년 365일, 하루종일 객석이 꽉꽉 찬다는 것은 판타지이다. 극장관계자들은 평일 10%의 좌석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금,토,일에 최대한 영화를 돌리고, 최대한 프로그램을 배치한다.
참, 모바일과 넷플릭스에 빠져든, 그리고 갈수록 그쪽으로 더 빠져들 ‘관객’을 붙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아바타>가 몰고온 3D가 반짝한 뒤에도 여전히 3D영화가 만들어진다. 완벽한 영상을 위해 아이맥스도 준비되었다. 그리고, 놀이동산에 대항이라도 하듯 4DX 상영관도 만들어졌다. 신기한 발명품이라고 할 스크린엑스도 있다. 이건 극장 상영용 영화에도 유용하지만, 상영 전 광고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저자 조성진은 CGV의 다양한 관객유입전략을 소개하며 ‘아트하우스’ 홍보에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영화팬으로서는 정말 행운인 것이 CGV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아트무비 관람기회이다. 최근 극장에서 양덕창(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소년살인사건>을 새로운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이동진의 무비토크 같은 행사는 이제 씨네필의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최근 월드컵 중계방송도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물론 이런 영화/상영방식이 공룡같은 멀티플렉스를 영속적으로 먹여 살리기는 힘들 것이다. 멀티플렉스를 넘어 컬쳐플렉스를 지향한다고 한다. 극장이 단순한 극장으로 거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문화행사의 접점이 되고, 그 플레이그라운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CGV는 한국 극장관객의 포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다. 이미 중국, 러시아, 터키 등에 CGV극장이 들어섰다. CGV자사체인이 아니어도 CGV가 개발한 스크린엑스와 4DX가 해외 멀티플렉스에 입점하면서 전 세계 영화팬들의 눈을 한껏 고양시키고 있다.
외국여행을 할 때 텐트치고 자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겠지만 고급호텔에 묵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할 것이다. 극장도 마찬가지이리다. 비 내리는 허름한 소극장도 운치 있겠지만, ‘거의’ 같은 가격이라면 럭셔리한 극장이 더 좋을 것이다.
여하튼 극장이야기만으로도 책 하나가 완성될 만큼 한국영화도, 한국극장산업도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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