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왕후장상이 될 땅은 따로 있다 (박희곤 감독 明堂, FENGSHUI 2018)

2019. 2. 11. 13:18한국영화리뷰

반응형

(박재환 2018.09.27) 영화 <명당>의 영어제목은 ‘FENGSHUI’이다. ‘풍수’(風水)의 중국어 표기이다. ‘명당’이라 함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좌청룡우백호’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지하철 초역세권을 의미할 것이다. 대선 때가 되면 “유력주자가 조상 묘를 이장했다”라는 뉴스를 볼 수 있을 만큼 일상적이다.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권력욕에 불타는 야심가들이 최고의 지관(地官)들로 하여금 최고의 묏자리를 찾게 한다. <명당>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믿거나말거나’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과 가문의 존폐가 달린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영화 <명당>(박희곤 감독)은 조선 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왕(헌종,이원근)은 존재하지만 진정한 왕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한다. 그의 배후에는 수렴청정하는 존재가 있었고, 조정에는 기세등등한 권문세가들이 자리 잡고 있기에 왕은 허울뿐인 왕좌나마 감지덕지 할 뿐이다. 이야기는 조선 최고의 지관 박재상(조승우)의 사연으로 시작되지만 기본 축은 대원군 이하응(지성)과 영의정 김좌근(백윤식)의 야욕의 격돌이다. 흥선대원군은 ‘상갓집 개’ 소리를 듣고도, 파락호 노릇을 하면서도 은인자중, 와신상담 기회를 노린다. 김좌근은 애비 김조순의 뒤를 이어 세도정치의 핵심이 된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보아온 궁중암투는 여인네를 두고, 외척들이 펼치는 질투와 암전이 대부분이었다. 영화 <명당>은 기본적으로 왕좌를 둘러싼 권력싸움이지만 그 필살기가 ‘풍수지리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조선 사회에서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는 것은 조상에 대한 효도일 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땅의 기(氣)가 한 곳에 모인다는 명당에 조상의 묘를 잡으면 후손이 그 음덕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럼 어디가 최고의 명당일까.

영화에는 조승우가 연기하는 박재상과 함께 박충선이 연기하는 정만인이라는 지관이 등장한다. 실제 사서에는 이하응이 정만인에게서 천하의 명당자리를 듣는다. 정만인은 두 곳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자손이 커다란 부를 누릴 수 있는 곳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땅이라고. 이하응은 ‘후자’를 택한다. 그곳은 지금은 충청남도 예천이다. 이하응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기기로 작심한다. 그런데 이곳에는 절(가야사)이 들어서 있었다. 이하응은 절을 불태우고, 탑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옮긴다. (영화는 활극으로 치장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하응이 아버지 묘를 이장한 뒤 18년 뒤 아들(이명복)이 왕위에 오른다(고종). 그리고 그 뒤를 순종이 즉위하고. 

아버지 남연군의 묘는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 역사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 1868년 이른바 오르페트 사건의 무대가 된 것이다. 독일인 오르페트는 통상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는 반천륜적 범죄행각을 저지른 것이다. 이하응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명약관화.

영화 <명당>은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인물을 불러내어 생생한 캐릭터를 만든다. 그리고 모든 역사적 사건을 ‘명당자리 다툼’으로 연계하여 효과적인 갈등구조와 정쟁을 이끈다. 궁중음모극으로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김좌근의 끝 간 데 없는 노욕이다. 왕실을 쥐락펴락하던 그가 왕과 정면으로 맞서던 장면은 ‘역사에는 없지만’ 영화에서는 확실히 빛이 나는 순간이다. 조승우의 지관 연기도 훌륭하지만  박충선의 선 굵은 연기는 이 영화의 권력게임에 강력한 힘을 실어준다. 또한 이하응(지성)이 사저에서 어린 아들과 왕 놀이를 하는 장면도 소름끼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애비의 시체(관)를 흥정하듯, 그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김성균)가 결단을 내리는 장면은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 못지않게 무시무시하다.

풍수(FENGSHUI)는 중국 동진(東晉)시대 곽박(郭璞,276-324)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장서’(葬書)에 처음 등장하며, 땅을 살펴보는 방법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세서는 ‘풍수지리’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도예찬: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전시회가 에 가면 많은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전시물이 있다. 정유재란 때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군대의 일원으로 왔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杜思忠)이 쓴 풍수지리책 ‘두사충결산도’(杜思忠訣山圖)와 청나라 육포(六圃) 심신주(沈新周)가 1713년에 간행한 풍수지리서를 베낀 책이 있다. 이들 책은 땅의 지세를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오행으로 분류, 해설한다.

이번 명절에 조상 묘를 찾아가 본 사람이라면, 한번 조상 묘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모르겠다. 안 가본 사람이면 영화로 ‘명당’자리를 살펴보시길. 2018년 9월 19일/ 12세관람가 (박재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