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정원 (BIFF2017개막작, 신수원 감독 문근영 김태훈, 2017)

2017. 10. 12. 19:3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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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IFF 개막작 ‘유리정원’ 녹색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

 


 
[박재환 2017.10.12] ‘명왕성’, ‘마돈나’ 등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온 신수원 감독의 신작 <유리정원>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영화제의 막을 여는 작품으로 선정되었으니 기대를 가질만하다. <유리정원>은 문근영과 김태훈이 주연을 맡았다.

<유리정원>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문근영은 대학부설 생체에너지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생명공학 연구원이다. 어릴 때 한쪽 다리가 성장을 멈추면서 몸의 잡지 못한 채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 지도교수 서태화 밑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은 녹혈구. 어릴 적 식물에서 ‘녹혈구’를 추출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겠다는 꿈의 프로젝트에 매달려있다. 하지만, 산학협력을 앞세우는 학교 입장에서는 미래를 알 수 없는 그런 장기 프로젝트보다는 ‘클로레라’와 ‘헤모글로빈’이 결합된 미용상품 개발에 올인한다. 자신의 연구아이템과 그간의 연구결과를 빼앗긴 문근영은 절망과 분노로 숲속의 자기만의 공간-유리정원-으로 숨어든다.
 
또 한 남자, 김태훈은 오래 전 <언더그라운드>라는 소설을 쓴 뒤, 도통 신작을 쓸 수가 없는 소설가. 게다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유명작가로부터 그만두라는 핀잔을 듣게 되자 발끈하여 “표절이나 하는 주제에.”라며 대들었다가 출판계에서 매장 당한다. 의기소침한 이 남자는 우연히 문근영의 존재를 알게 되고, 몰래 그녀를 관찰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다.
 
작가는 처음 “나는 숲에서 태어났다. 내속에는 녹색의 피가 흐른다”라는 말에 매료된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 그리고 창작물의 표절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담고 있다는 것. 하지만, 과학도와 문학도의 결합은 어둡다. 생명연장의 헛된 꿈, 혹은 마비된 (덜 자란) 한쪽 다리의 세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은 여자를 점점 ‘사이코’로 만들어간다.

문근영의 절망과, 그것을 지켜보는 소설가, 영화는 마치, M.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연구를 연상시키며 파멸을 향해, 혹은 그런 광기에 걸맞은 결말로 치닫는다.
 
신수원 감독은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영화판에 뛰어든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 가진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많은 시나리오를 써두었을 것이다. <유리정원>도 거창한 주제에 대한 소박한 상상력이 차곡차곡 쌓여있음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많이 아팠던 문근영은 작품 속에서 의기소침한 연구원, 절망에 빠진 소녀적 감성을 ‘무기력하게’ 잘 표현한다.
 
관객들은 점점 미쳐가는, 하지만, 자기 확신에 찬 생명공학도의 열정이 얼마나 무모하고, 얼마나 위험한지를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작가의 삶도 무기력함을 보탠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유리정원>은 10월 25일 개봉된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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