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워’ 홍콩은 어떻게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가 되었는가

2012. 10. 5. 08:54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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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품으로 홍콩 신예감독 류젠칭(陸劍青,륙검청)과 량러민(梁樂民,양악민)의 <콜드 워>가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이달 18일 홍콩에서 개봉될 예정인 정말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부산영화제에서 홍콩영화를 개막작품으로 선정한 것은 왕가위의 <2046> 이후 8년만이다. 왕가위만큼이나 유명세도 없고, 한물 간 홍콩 범죄물을 개막작으로 선뜻 선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류젠칭 감독은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 놀랍게도 1999년 주성치의 <희극지왕>의 조감독으로 이름이 올라있다니! 량러민은 두기봉 감독의 <복수> 등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했단다. 아, 이를 어쩔 것인가.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뭘 믿고 이런 백그라운드의 중고신인감독의 개봉도 안한 홍콩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했을까. 곽부성과 양가휘라는 네임벨류를 믿고? <범죄와의 전쟁>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했기에 홍콩은 어떨지 기대가 되어서? 어쨌든 한동안 홍콩영화는 액션이고, 코미디이고, 뭐고간에 개봉조차 힘들었던 한국에 소개된다고 하니 일단 기대는 된다.

 

염정공서, 부패와의 전쟁

 

이 영화에는 홍콩의 치안유지와 공정사회를 지키는 두 보루가 등장한다. 바로 홍콩경찰과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이다. 홍콩경찰이야 이전에 성룡이 날아다닐 때 출연했던 폴리스 스토리류나 두기봉 작품에서 충분히 그 존재감을 알 것이다. 그런데 ‘염정공서’는 홍콩의 대표적 상품(!)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청렴위원회’와 많이 대비되는데 염정공서는 홍콩 공무원의 염라대왕으로 통한다. 1970년대 부패가 판을 치던 홍콩을 뒤집어놓기 위해 세워진 이 기관은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아니 연루되었다는 의심만 들어도) 공무원, 경찰, 관련인물들을 거의 ‘삼청교육대’수준으로 집어넣는 기관이다. 인터넷을 보니 이런 소개글이 있다. 출처를 규명하지 못하는 금전이 있을 경우 이를 몰수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고, 비리혐의가 있으면 영장없이 48시간 구속시킬 수 있는 막강 권력감시기관이란다. 자, <콜드 워>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최전선에 나선 홍콩경찰과 홍콩의 모든 부정부패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염정공서가 어떤 활약을 펼칠까. 영화보기 전에 들은 정보로는 홍콩 염정공서가 이 영화 제작에 적극 협조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홍콩경찰, 최대의 위기에 빠지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가 63빌딩 쯤이야 우습게 보이는 홍콩의 마천루를 훑고 지나간다. 번화가 빌딩에 갑작스런 폭발이 일어나고 외곽도로를 순찰중이던 홍콩경찰 5명이 순식간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익명의 전화가 걸려오고 경찰 몸값을 요구한다. 문제는 홍콩경찰의 총수가 외국방문 중이고 테러에 준하는 이 사태를 해결해야하는 것은 두 부처장 몫이다. 한 사람은 현장수사에 잔뼈가 굵은 노회한 양가휘, 또 한사람은 ‘관리의 경찰’을 주창하는 곽부성. 두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서 지휘권을 두고 마찰을 빚는다. 결국 원리원칙과 규정에 따라 곽부성은 양가휘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사태해결의 전권을 쥔다. 하지만 단순한 경찰납치, 테러로만 알았던 사건에는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경찰내부에 적이 있다는 ‘무간도’식 스토리에서 경찰과 염정공서의 파워게임까지 거론된다. 사태는 겉잡을 수없이 커져만가고 곽부성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배우의 힘

 

<콜드 워>는 테러발생 직후 부처장 양가휘가 사태수습에 나서면서 코드명으로 삼은 것이다. 홍콩치안은 절대 안전하다고 믿는 홍콩시민에게는 비밀로 하고 전 경찰력이 동원되어 수색에 나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곽부성과 대결구조가 생긴다. 양가휘는 사극에서, 액션, 드라마, 코미디, 멜로까지 모든 영역에서 일가를 이룬 연기베테라이고 곽부성 또한 홍콩액션물을 주름잡았던 왕년의, 그리고 지금도 스타이다. 두 사람의 연기력은 홍콩영화의 연기력인 셈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가 상대의 부하들을 의심하는 극한의 상황을 박진감 있게 연기한다. 양가휘 곽부성 말고도 양채니. 임가동, 전가락, 윤자유 등 중견배우들이 열연한다. 대만 출신의 팽우안에게도 시선이 간다.

 

홍콩의 힘

 

<콜드 워>는 전적으로 홍콩의 도시를 보여주는 영화이고, 홍콩경찰과 염정공서가 자로 잰 듯 정확하고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무간도> 이후 확실히 홍콩영화는 홍콩 도시가 살아있는 것처럼 영상이 생생하다. 물론 영화는 묵직한 두 배우들의 대결구도에서 어느 순간 한쪽으로 권력이 이양되면서 긴장도가 떨어진다. 마치 이너 써클이라도 존재하는 것 같은 결론을 남긴다. 이것은 제작자에겐 속편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무간도>처럼 이 영화가 홍콩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지 시대착오적 홍콩 느와르의 버전 업인지는 조금 기다려 봐야할 듯. (박재환, 201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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