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 참을 수 없는 자유의 가벼움 (울산대학보 원고)

2011. 6. 7. 11:05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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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고는 울산대 학보사 청탁 원고입니다 *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참을 수 없는 자유의 가벼움

지난 1975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을 통해 개인의 자유의지와 권력의 관계를 논한 작품이다. 영화는 켄 로지가 1962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각종 향정신성 약물의 효과를 실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있고 정신병원에서 야간 보조원으로 일하기도 한 켄 로지는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정신병동내 모습을 그렸다. 소설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브롬든이라는 한 인디언 남자의 눈을 통해 주립 정신병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의 역사가 배태한 인디언은 이제는 이름만 거창한 인디언보호구역내에서 연명하며 대부분 알코올 때문에 멸족의 위기에 처해있다. 브롬든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폐인 신세로 정신병원에서 빗자루만 들고 하루 종일 서 있는 신세이다. 어느 날 맥머피라는 신참이 들어온다. 폭력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그는 정신병자 행세를 하고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정신병원은 랫치드라는 수간호사의 완벽한 통제 하에 운영되고 있다. 수용된 환자들은 랫치드의 엄격한 지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악을 들으면서 정해진 약물치료와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불쑥 끼어든 맥머피는 이곳에서 자기만의 룰을 만들려고 하고 자기만의 자유를 점점 전파시킨다. 자연스레 절대권력과 소소한 자유의지는 충돌하게 된다. 맥머피는 환자들을 이끌고 병원을 빠져나간다. 그들은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긴다. 그리고 한밤에 외부 여자를 끌어들여 난장판을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에 맥머피는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병원 당국에 의해 뇌 전두엽절제술을 받아 절대안정상태(폐인)가 된다. 인디언 브롬든은 그런 맥머피를 베개로 지그시 눌러 육신의 영원한 자유를 선사한다. 영화는 원작소설을 충실히 따른다. 단지 인디언 추장의 내레이션과 관찰이 소설의 구성이었는데 영화에서는 맥머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맥머피는 랫치드 수간호사의 통제에 어깃장을 놓는다. 월드시리즈 야구중계를 보기 위해 환자들을 충동질시키고, 바다낚시 소동을 일으킨다. 시적인 제목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남의 새 둥지에 알을 까는 뻐꾸기의 습성을 들며 자신의 자리가 부재한 존재의 자유의지를 은유했다는 그럴싸한 해석도 나온다. 뻐꾸기 둥지는 또한 ‘정신병원’을 일컫는 속어란다. 켄 로지는 인디언들이 부르던 노래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 ‘뻐꾸기가 둥지 위를 날아간다. 한 마리는 동쪽으로 한 마리는 서쪽으로’ 이것은 아무래도 자유의지와 관련된다. 맥머피는 (사회에 있어서는) 범죄자이며, (정신병원에서는) 질서의 파괴자이다. 그는 거대권력에 맞서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자유와 신체적 평안을 위해 약한 환자들을 이용하여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사회에 함몰된 순수한 자의식과  원초적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와 함께 비트와 히피 문화가 휘몰아쳤던 1960년대의 미국의 병원병원 내에서 이루어지던 반인권적 환자 대우방식이나 인디언의 권리 같은 것은 부차적이면서도 또 다른 논쟁을 안겨준다.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는 우리에게 정당하지 않은 기존질서의 해체를 깨뜨리기 위해 나름대로 열정적이었던 한 남자를 통해 무거운 자유의 여운을 남긴다. 그  둥지 속 온기는 의외로 오래간다. (박재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