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맛쇼] 맛집의 비밀은 조미료 두 스푼 반!

2011. 6. 3. 10:36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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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200편 가까운 영화가 상영되었지만 가장 화제가 된(될) 작품은 ‘딱’ 2회 상영하여 모두 350명의 관객만이 보았다는 다큐멘터리 <트루맛쇼>인 것 같다. ‘트루맛쇼’라니. 10여 년 전에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트루먼 쇼>가 떠오른다. 얼굴근육 전문 코미디언으로만 알았던 짐 캐리의 진지한 연기변신이 돋보였던 <트루먼 쇼>는 극중 주인공 트루먼 씨의 인생 자체가 전 국민(TV시청자)의 관음증을 해소시키는 ‘쇼’의 대상물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이른바 ‘리얼리티 쇼’를 통해 미디어의 위험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회드라마였다. <트루맛쇼>는 지상파TV에서 넘쳐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이면을 통해 방송사, 제작사, 그리고 수용자의 현실인식 문제를 해학적으로 뽑아낸 ‘블랙 코미디’가 분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실제 이 작품에서 거론되고 ‘영상화된’ 지상파TV방송사로서는 맘이 편치 않은 작품이다. 그래서 한 방송사는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내기까지 했다. 어떤 영화이기에 이런 화제를 모으고 있을까.

맛집의 비밀, 며느리도 몰라요

<트루맛쇼>는 한 영상제작자의 발칙한 고발극이다. 왜 TV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한결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을까. 그리고 정말 맛집 음식은 맛있을까라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딱 봐도 수십 년은 똑같은 음식을 했을 것 같은 전통식당의 주인 할머니를 보여준다. 물론 인터뷰 배경은 확실하다. 식당 벽은 수십 년간 출연한 각 TV방송사의 캡처 사진으로 도배되어있다. 방송에만 34번 나온 맛집이란다. “**말고는 누군지도 몰라”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그리고 계속되는 “맛있어요.” “끝내줘요.” “최고에요.”라는 감탄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우리가 다 아는 맛집 프로그램이 무한반복된다. <<어느 방송사, 어느 프로그램 출연>>이라는 광고 문고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그래서 이런 광고까지 등장한다.

“곧 방송에 나올 식당”
“꼭 방송에 나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도
“한 번도 방송에 나오지 않은 식당”까지.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은 발칙한 ‘조작극’을 준비하다. 일산의 식당가에 방송용으로 <맛 Taste>라는 식당을 연다. 그리고 소문으로만 떠돌던, 아니 인터넷에도 다 나와 있는 브로커를 찾는다. 전설적인 임 선생님을. 그는 각 방송사 프로그램과 식당을 연결시켜주는 사람이다. 하루에 수십 곳이 TV에서 “우리 식당 맛있어요.”라고 아우성치는 요즘 그의 노하우는 달인 수준이다. (이 작품에서 거론되기로는 2010년 3월 셋째 주 지상파TV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9,229개의 식당이 TV에 소개된단다!!!) 브로커 임 선생의 역할은 맛집에 나오고 싶어 하는 식당 사장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꾸며라...” 그런데 가장 놀라운 TV출연비법은 “새로운 메뉴를 만들라”인 것이다. 이건 명퇴 당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은 창업희망자를 위한 프랜차이즈업체 컨설팅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새로운 메뉴라니? “내가 만든 메뉴 중엔 심봤다 삼겹살이 있어요. 삼겹살에 인삼 올린 것. 캐비어 삼겹살이란 것도 있어요. 삼겹살에 캐비어를 얹어 내놓은 거죠.” ‘르 코르동 블루’의 프랑스 요리사는 그 장면을 보고 기겁을 한다. “차게 먹어야하는 캐비어를 삼겹살에 얹어 구워먹다니... ”근데 더욱 놀라운 것은 캐비어는 30그램에 30만원이란다. 도대체 어떤 유통과정을 거쳤기에 삼겹살 고명으로 다 나올까. (비결은 철갑상어 알이 아니고 물고기 알이란다. 단지 상표가 ‘캐비어’일뿐이란다. 이건 ‘호텔이라는 이름의 여관’ 과 같은 논리다)
* 그래도 궁금해서 찾아보니 캐비아라고 모두 철갑상어 알은 아니란다. 그 대용품으로 ‘lumpfish 알도 사용된단다. *

여하튼 <맛 Taste> 레스토랑은 TV맛집에 나오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요리를 개발한다. 주방장도 생전 처음 만들어본단다. 요리의 비결은 청양고추를 마구마구 집어넣는 것. 찌개에 팍팍 넣고, 돈까스에도 마구 버물리고... 브로커는 열심히 방송사를 섭외한다. 정확히는 외주제작사겠지. 불쌍하게(?) 걸려든 모 방송사. 이 말도 안 되는 메뉴를 소개한다. 물론 그 전 과정은 방송사 몰래 녹화된다. 브로커와의 협잡(?), 메뉴 개발의 지난한 과정, (알바나 후배들로 채워진) 손님 동원, 리액션 연습, 리허설, 그리고 곳곳에 몰카 설치하기...  결국 그 말도 안 되게 매운 청양고추 돈까스는 실제 방송으로 나간다.

김재환 감독의 신랄한 비판은 70분을 꽉 채운다. 맛집을 찾은 스타들이 속없는 음식예찬을 늘어놓는 장면은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의 찰톤 헤스톤만큼 사람바보 만든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영화용어 중에 클리세(cliches)라는 게 있다. 그 때 그 장면에 꼭 등장하는 진부하고도 식상한 장면이다. 왜 호러영화 보면 꼭 머리 빈 반나체의 여자가 뭔가를 할 때 꼭 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악마를 물리쳤다고 한숨 쉴 때 별안간 악마의 한 손이 번쩍 움직인다는 것 등 말이다. 옛날 서부극에도 그런 게 있다. 멍청한 인디언들이 떼거리로 말 타고 나타나 하품하듯 고함을 지르고 뱅뱅 돌기만 하다가 백인의 총을 맞고는 멋지게 말에서 떨어져 말에 질질 끌려가는 장면들. <개콘>에서 최효종이 이 문제를 짚었다. TV맛집에는 다 나오는 포맷이다. 한결같다. 천편일률적으로 나온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면 “끝내줘요” 소리치거나, 주방장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건 못 가르쳐주지..”하는 멘트까지. 알면서 같이 보아온 모습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청자는 “저거 못 믿어.”하면서도 어느새 그런 집은 손님으로 북적대고 대박집이 된다. 아니면 적어도 식당 간판 밑에 “TV에 나왔어요..”라든지.

물론 이런 문제는 방송사 혹은 방송제작시스템의 초보적 필터링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한 음식비평가가 시니컬하게 말한다. “우리 방송 수준이 그런 거나 식당 수준이 그런 것은 결국 우리 사람들 수준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천박함. 음식 먹는 것까지 남들 다 따라하려는 그런 ‘나도주의’. 물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피해의식에서 발원한 미각평등주의의 결과물일 것이다.

김재환 감독의 실험

김재환 감독은 MBC에서 교양피디로 7년 일했고 외주독립제작사로 9년을 버티고 있단다. 그가 그의 친정(?)에 내던진 비수는 짜고, 맵고, 혓바늘을 마구 자극한다. 지상파 방송사의 고발프로그램(K의 경우 <소비자고발>이나 <추적 60분> 같은...)의 피디의 경우 방송 때문에 꽤 많은 소송에 시달린다. 특히 종교 같은 ‘언터처블’로 여겨지는 대상과는 힘겨운 소송을 오랫동안 해나가야 한다. 이럴 경우 방송사의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개별피디들이 고생을 하게 된다. 그건 정말 고역이다. 그런데 그런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김 감독은 법적 소송전도 담담히 예상하고 있다.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기각되었다는 것은 본안소송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어려운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방송사 출신 독립제작사 대표’ 김 감독은 이런 작품은 언젠가는,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방송사나 이쪽 계통 사람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다음, 다다음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 역시 ‘방송관련’이란다. 드라마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한류스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사소한 문제제기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거대한 난제가 되어버린 그런 이야기들이 또 어떻게 기막힌 다큐로 탄생될지 불안하고도 기대된다. 김재환 감독의 자신의 프로젝트를 ‘역지사지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있으니 알 만한 사람은 알 듯도 하다. 어여어여 시스템을 개선하고 주의해야겠다. 그래야 공영방송의 길일 테니 말이다.

세상에 마이클 무어는 많다

방송계에는 ‘인풋코리아’란 연례행사가 있다. 몇 해 전에 열린 <<인풋 서울>> 행사에서 흥미로운 호주의 TV프로그램이 하나 소개되었다. 호주의 공영방송사 ABC에서 방송된 코미디 쇼 프로그램인 < The Chaser’s War on Everything>이다. 일종의 몰카 코미디이다. APEC 행사장에 가짜 아이디카드 차고 오사마 빈 라덴처럼 분장하여 회의장에 들어가거나, 아랍 사람으로 분장하여 가짜폭탄을 들고 비행기를 탈 수 있나 없나를 공항에서 실험하는 등 꽤나 위험하고 비공영적인 몰카였다. 그런데 해외 방송사들은 그런 것을 마구 만든다. <현장고발 치터스> 같은 것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라따뚜이>의 식당평가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맛집 소개에선 빠질 수 없는 미각선생 홍성유 같은 분도 있다. 외국에선 이런 음식(식당)품평가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제돈 내고 음식을 여러 번 맛보고 그제서야 ‘공정한’ 별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서야 그럴 순 없지. 비주얼이 있어야하고, 호들갑 떨며 리액션 하는 식객이 있어야하고, 시청자를 사로잡는 진행자와 게스트가 있어야할 터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불암 선생님의 <한국인의 밥상>을 보시든지. 그런데, 네티즌들도 정신 차려야한다. TV방송만 문제가 아니다. 요즘 사이비기자만큼이나 파워블로거라는 미명하에 맛집과 IT업계를 쥐락펴락 하는 존재도 ‘공평한 리뷰’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도 조만간 ‘김재환 감독’의 안테나에 걸릴 것 같으니 말이다.

참, 이 작품에는 연예인 3명과 김재철 MBC사장, 그리고 MB가 등장하다.  (박재환 230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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