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 명예를 위해, 비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요즘은 서부극(웨스턴 무비)이 잘 만들어지지 않지만 한때는 인기 폭발의 할리우드 장르영화였다. 존 웨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히어로였고, 쟝고나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말이 서부극과 함께 회자되었다. 서부극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래먼지 휘날리는 거리에서 두 남자가 마주보며 대결하는 장면일 것이다. 한쪽은 착한 보안관, 다른 한 쪽은 악당. 숨 막히는 긴장의 순간이 잠시 흐르고 동시에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총성과 화약연기가 감돌면 악당은 스르르 쓰러진다. 정의가 이기는 순간이다. 너무나 익숙한 광경. 적어도 스크린에서 재현되는 서부시대 건맨의 총싸움 결투는 서기 1880년대 좌우였다. 그런데 기억을 더 되짚어보면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라는 소설이 있었다. 그 소설 첫 부분은 시골마을의 무대포 기사 달타냥이 도시로 올라와서 왕실의 근위무사에게 무작정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이 있다. 책을 찾아보니 시대적 배경은 1625년부터 시작된다. 19세기 미국 서부극의 총잡이 결투와 17세기 프랑스 무사의 칼싸움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의를 찾기 위해, 국가적 사법체제의 관여 없이 사적(私的)으로 ‘무식한’ 대결방식으로 사안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게 소설(혹은 영화 속) 이야기일까 아니면 실재한 이야기일까. 항상 궁금했는데 흥미로운 책을 한권 읽게 되었다. 영국의 제임스 랜달이라는 사람이 쓴 <결투 명예와 죽음의 역사>라는 책이다. 꽤나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오랫동안 유럽, 그리고 신대륙에까지 유행시킨 ‘결투’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전형적인 모습, 결투의 원인, 결투의 과정, 결투의 결과
이 책은 1826년 어느 날 새벽, 영국 스코틀랜드 동남부 해안의 작은 도시 키르컬디의 한 숲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실제로 결투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사례분석을 하는 셈이다. 결투가 일어나게 된 이유, 그리고 결투를 강행, 혹은 저지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 그리고 결국 결투가 이루어지게 될 때 관계된 사람들의 여러 입장들, 사용할 무기에 대한 선택방식, 결투 이후 산자와 죽은 자의 거취, 사법적인 재판 등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결투는 키르컬디의 상공인 데이비드 랜달과 은행인 조지 모건 사이에서 일어난다. 데이비드 랜달은 존경받는 상공인이자 마을 유지이다. 린넨 천을 가공생산판매하는 업체 사장이다. 린넨을 생산하기 위한 아마포 구입과정에서 자금난을 겪게 되고 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야하는데 당시 경기불황으로 은행에선 엄격한 대출심의를 있었다. 거래은행의 조지 모건이 랜달에게 더욱 엄격한 신용거래를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랜달의 여신거래 상황이 외부인에게 알려지는 등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런 조치는 키르컬디의 유명인사이며 상공인 대표인 랜달에게는 모욕적인 처사였고 둘 사이에는 은행과 고객의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사이의 명예훼손 문제가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랜달과 모건은 서로에게 “중상모략과 비신사적인 표현에 대해” 사과하고 취소하라는 편지가 오간다. 1826년 8월 22일, 마을에서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군 장교출신인 모건은 관습적인 은행거래방식이나, 문제해결방식보단 군대(?)식 해결방식을 택한다. 키르컬디의 제임스 커밍의 가게에서 두 사람을 맞닥친 것이다. 조지 모건은 들고 있는 우산으로 데이비드 랜달의 어깨를 격하게 내리친다. “맛 좀 보시지, 선생!”하고 외치면서. 뜻밖의 가격에 놀란 랜달. 랜달은 그에게 “가련하고 어리석은 인간,. 너는 비겁한 놈이야.”라고 말할 수밖에 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짧은 충돌에서 전형적인 결투의 양상이 다 드러난다. 당시의 사회규범은 누군가가 신체적인 가격과 모욕적인 언사를 하였다면 그것은 곧 결투를 뜻한다. 결투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이다. 모욕받은 랜달은 곧바로 결투신청서를 작성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최종문서인 셈이다. 결투는 현장에서 바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복잡한 과정이 있다.
랜달은 친구 윌리엄 밀리에게 입회인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밀리는 마지못해 입회인을 수락한다. 랜달은 그리고 에딘버러로 가서 결투에 사용될 권총을 한 정 구입한다. 한편 조지 모건도 입회인을 찾는다. 약간의 안면이 있는 해군중위 윌리엄 밀너에게 부탁한다. 밀너는 사건의 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부탁을 받았고, 곧 상황을 인지하고는 그 결투를 중단시키기 위해 ‘짧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입회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당시 이미 ‘사적인 결투’는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결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범죄자(살인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다. 또한 입회인도 ‘살인의 방조자’로 역시 같은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투’는 상류사회 저명인사의 명예유지 방식이었던 것이다)
(1804년 알렉산더 해밀턴과 애런 버의 결투는 미국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의 결투이다)
결투에는 당사자와 그들의 입회인뿐만 아니라 의사도 필요하다. 의사는 보통 시간과 장소만 통보받고 현장에 나온다. 그들은 의학적인 견지에서 현장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해야 ‘살인의 방조자’라는 오명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닥터 스미스와 제임스 존스턴이 외과의사로 각각의 의뢰인의 입회닥터가 된다.
1826년 8월 23일, 결국 데이비드 랜달과 조지 모건은 각자의 입회인이 보는 가운데 결투에 들어간다. 랜달과 모건은 12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서로를 노려본다. 입회자 밀리가 “준비,”라고 소리친다. 조지 모건이 총을 들어 올리자 “모건씨 ,그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발사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총을 내리고 있어야합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양측 결투자는 고통스럽게 멈춰선 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신사분들, 준비되셨습니까?- 발사!” 그 소리에 양측은 총을 쏜다. 의사가 다가와서 한 사람의 사망을 확인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이제 미리 준비해둔 마차로 현장을 즉시 떠나 최대한 멀리 달아난다. 죽은 자는 죽은 것이고 산 자는 명예를 얻었지만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이 벌어진다. 당시 이루어진 결투에서 살아남은 자는 외국으로 도망가거나 오랫동안 도망자 신세가 되기도 하고, 상황이 가라앉을 때 즈음하여 돌아와서 재판에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재판은 법률논쟁임과 동시에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예’와 ‘설득’의 과정이다.
결투, 해결책인가?
랜달과 모건은 왜 싸웠을까. 그것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죽음’이 오가는 총싸움의 성질은 아니다. ‘개인 금융거래 정보를 임의로 유출한’ 은행가의 범죄행위이거나, 은행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상인의 명예훼손 사건인 것이다. 그런 명예의 문제를 총싸움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피할 수 없는 모욕(우산으로 내리치는)을 가하게 되고 그것이 숲속에서의 총질로 이어진다. 결투의 원칙을 간단하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총을 뽑는 것이다. 이기는 사람, 즉 살아남는 사람이 정의로운 것이다. 이 논리는 굉장히 이상하다. 특히 서부극을 본 사람이라면 누가 총을 빨리 뽑는가는 정의의 문제와는 사실 별개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결투는 신의 판단과 연결되어 있다. 두 사람이 첨예하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경우 그 유일한 해결책은 ‘육법전서’가 아니라 ‘신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총을 뽑는다는 것이 누구 한 사람에게 유리한 것은 절대 아니란 것이다. 명예를 지키고자하는 쪽의 신념이 더욱 정의롭다면 신의 은총으로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던 시절이다.
저자는 랜달과 모건의 결투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중간 중간에 결투의 역사와 과정, 사례를 소개해 주고 있다. 유럽에 등장한 첫 번째 ‘결투’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등장한다. 1096년, 고드프로이 베이나르라는 노르만 기사는 윌리엄 백작 기사가 윌리엄 2세(윌리엄 루퍼스)에 대한 모반을 계획했다며 반역죄로 고발한다. 당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윌리엄 2세가 내린 ‘솔로몬의 지혜’는 ‘결투’이다. 왕과 신하들이 보는 가운데 두 기사를 벌판에 세우고 남자 대 남자로 1대 1의 유혈결투를 시킨다. 백작이 패배한다. 왕은 백작의 혀를 자르고 눈알을 뽑는다. 이게 문화적으로,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근대유럽의 첫 번째 결투 사례란다.
이런 1대 1 대결은 그 전부터 존재했단다. 서기 501년 군더발트라는 부르군디 왕이 두 명의 개인 간 분쟁을 공개결투로 해결했단다. 신은 죄 없는 자를 보호하고 죄 있는 자를 심판할 것이라는 이론에 따른 것이다.
이런 결투는 세월이 흐르면서 나름대로의 룰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 고발당하거나 결투신청을 받은 자는 누구든 싸워야한다는 것
- 여자와 성직자, 장애인 그리고 16살 이하나 60살 이상의 남자는 예외다.
- 총을 쏴대는 서부극 영향으로 결투에서는 재수 없는 상대가 현장에서 다 죽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꼭 그렇지는 않다. 총이 등장하기 전에는 당연히 칼로 싸운다. 그러니 치명적인 부상을 입겠지만 현장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 전사가 결투에서 질 경우, 오른손이 잘리게 된다. 물론 다음에 교수형에 처해진다.
- 결투는 기사만 하냐고? 1400년 슈발리에 마퀴에라는 프랑스 기사가 친구인 오브레이 드 몽디디에을 살해 후 시신을 몰래 매장한다. 그런데 죽은 자가 키우던 그레이하운드 종의 개가 그 장면을 목격(?)하였고, 주인의 시신을 파낸다. 왕은 그를 의심하게 되고 사건의 해결책으로 결투를 지시한다. 누구와 누구? 슈발리에와 개다. 슈발리에는 허리까지 파묻힌 채 막대기와 방패를 들고 개와 싸운다. 개는 기사의 목을 물어뜯는다. 결투의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케이스.
이런 기사들의 결투 관행은 근대유럽의 군대에서 귀족출신 장교들에 의해 더욱 확산된다. 알량한 명예를 위해 칼을 뽑아들고 무리수를 드는 것이다. 많은 유럽전쟁을 거치면서 유럽 곳곳으로 결투악습이 번져간다. 하급장교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고급장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싸우는 이유도 황당하다.
1803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두 고급장교가 마주친다. 대령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데 공원에서 또 다른 개를 만난 것. “저거 누구 개야? 이놈의 개를 때려눕혀 버릴테다.”고 소리쳤고, 그 개 주인(중령)이 “건방지게 내 개를 때리겠다고? 그전에 날 때려눕혀야할걸?” 개싸움이 장교들의 결투로 이어지고 대령은 총에 맞아 죽고, 중령은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다.
아, 결투 이야기를 하니 리들리 스콧 감독의 <결투자들> ( The Duellists,1977)이라는 영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1794년에 캡틴 뒤퐁이라는 젊은 프랑스 장교가 장군에게서 명령을 하나 받는다. 캡틴 푸니에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날 무도회 참석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전하라는 것이다. 푸니에가 결투로 지역주민을 살해하였고, 장군은 그 일 때문에 무도회장에서 주민의 항의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니에는 그 결정을 불쾌하게 생각했고 오히려 명령을 전달한 뒤퐁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둘은 싸운다.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두 사람은 단락적으로 만나 결투를 거듭한다. 부상을 입고,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만나 결투하고, 또 부상을 입고.. 그런다. 무려 19년 동안 17차례 결투를 한다. (칼은 총보다 치명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 3장 서문에 실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3막 1장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신은 당신보다 수염이 더 적거나 더 많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싸우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단지 당신이 담갈색 눈이라는 이유로 혀를 차기 때문에 싸우게 될 것이다. 당신은 길거리에서 기침을 한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과 싸웠다.....”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는 ‘명예’라기 보다는 집착에 가깝다. 보복, 열정, 분노로 살인을 하는 것이다. 우연한 충돌, 오해, 욕설, 객기, 말다툼, 고함, 신문에 실린 논평 등으로 칼을 뽑아들고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어떤 사람이 또 다른 사람과 같은 음식을 시켰기 때문에, 반말을 했기 때문에, 별명을 불렀기 때문에, 단테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등등. 그래서 싸우고 결투를 신청하고, 죽는 것이다.
개싸움만큼 흥미로운 것은 여자들도 결투를 한다. 몸져누운 아버지를 대신하여 결투에 참여한 ‘뮬란’같은 경우도 많다. 칼과 총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터키에서는 신호가 내려지면 상대를 향해 서로 ‘맹’돌진하여 이마를 부딪치는 사례도 있었단다. 1813년, 런던 감옥에서는 수감된 전쟁죄수들이 빗자루 끝에 가위를 묶고 결투를 했단다. 가장 황당한 것은 1843년 당구알 결투이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는 차례로 당구공을 상대에게 던지는 것이다. 결투는 순서가 있다. A가 B에게, 다음엔 (살아남았다면) B가 A에게 당구공을 던진다. 이런 경우 먼저 던지는 사람이 유리한 것은 ‘꼭’ 아니다. 총싸움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보통 처음 쏘는 사람은 흥분과 긴장으로 목표물을 놓친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 좀 더 주의하여 조심스레 목표물을 가격한다는 것이다. 당구볼이라니....
두 사람 중간에 권총 한 자루를 두고 차례로 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안 룰렛처럼 장난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정의와는 상관없는 ‘닭대가리 운과의 희롱’이 비일비재하였다.
랜달과 모건은 12발자국 떨어져서 총을 뽑았는데 그 거리도 다양했다. 총의 유효사거리가 짧았을 때 ‘알란 랏드’같은 총솜씨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결투의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1796년 심한 근시의 장교가 겨우 4발자국에서의 결투를 신청한다. 상대가 먼저 총을 쏜다. “맙소사, 빗맞추다니...”라는 소리를 듣고 근시의 장교는 상대의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시킨다.
근대적 사법체제가 더욱 굳건해지면서 결투의 풍습은 사라져갔다. 저자가 랜달과 모건의 결투를 예로 든 것은 그 결투가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마지막 결투였다는 역사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결투’는 여전히 추상적인 의미로 남아있다. 사법체제를 뛰어넘는 레토릭으로 말이다. 그런데 2002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이라크 부통령이었던 “타하 야신 라마단”은 조지 W부시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이 1대 1결투로 자신들의 견해 차이를 해결하라고 제안했단다.(▶관련기사 Bush challenged to 'duel' with Saddam BBC뉴스 2002년 10월 3일) 결투가 정의의 현현(顯現)이라기보다는 닭대가리 운수놀음이란 것을 알지만, 어찌 보면 괜찮은 문제해결방법인 듯도 하다. (박재환 2010.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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