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8. 22:32ㆍ한국영화리뷰
<파이란>은 2년 전 설익은 <카라>라는 영화로 평단과 관객의 버림을 받았던 송해성 감독의 역작이다. 인천을 배경으로 실력없고, 인정 못 받는,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나 인간적인 3류 건달이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것은 보스의 살인죄를 뒤집어서야하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그 순간에 날아온 소식은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통보이다. 아내라고? 몇년 전 위장결혼해준 한 중국여인이 한국땅 어디엔가에서 죽은 것이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여자-법적인 아내를 찾아 거진항을 찾아간다. 이 간단한 로드무비의 형태 속에서 3류 막간 인생 주인공은 사랑과 삶에 대한 회의의 눈물을 쏟게 된다.
이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열혈연기일 것이다. 나이만 잔뜩 든 3류 따라지 인생의 전형을 보여주는 최민식의 연기는 <쉬리>이후 최고의 열연이었다. 관객에게 100% 공감을 이끌어내는 딱맞는 복장과 딱맞는 대사, 그리고 딱맞는 얼굴표정들이 영화 속 그의 위상을 여지없이 살려낸다. 조직의 보스로부터 미움받고 새파란 애들에게 멸시받는, 이름만 건달인, 그리고 하는 일이라고는 좀스런 그런 깡패역할을 말이다. 그런 그의 연기를 밀어주는 조직의 보스 용식(손병호)와 룸메이트겸 후배인 경수(공형진), 그리고 거진의 세탁소 할머니역의 김지영의 연기는 좋은 조연의 모범 답안을 보여준 셈이다.
<천사몽>의 여명에 이어 한국영화에 출연한 장백지(세실리아 청, 장빠이쯔)의 연기또한 합격점이다. 장백지가 한국영화팬에게 크게 어필한 것은 홍콩정통 멜로물 <성원>에서의 눈물연기였으니 정말 제대로 작품을 선정한 셈. 한국에 흘러 들어오는 중국여성들 -실제로는 대부분 동북 삼성(三省)의 조선족출신이다-들의 인생유전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시골 노총각과의 위장결혼, 계약결혼,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잡초같은 인생, 그리고 최악의 경우 인신매매와 술집 작부, 윤락녀 등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말들. 그 추악스러울지 모르는 결말을 예상하게 하면서도 장백지는 '순정'과 일편단심의 '고마움'을 죽을때까지 갖는다. 누구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한국인과 생면부지의 3류건달 강재씨(최민식)에게.
이 영화에서 '옥의 티'라면 여명의 한국어발성과는 또다른 관점에서의 장백지의 발성이다. 극중에서 그녀는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는 '조선족 출신'이라는 것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조선족이 아니라 중국여인이라고 보도자료에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 중간에 '파이란'은 놀랍게도 '광동어(홍콩말)'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때? 장백지의 청순함 매력 포인트는 한국배우에게 찾아보기 힘든 이국적인 느낌마저 주니 말이다. 장백지의 극중이름은 백란(白蘭)이다. '바(빠)이란'이지 '파이란'은 아니란 것도 눈에 띄는 결점.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사로잡는 파아란 바닷물의 이미지 때문에 푸른 감정이 살아나는 제목인 것은 사실이다.
만약,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나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의 비장미 넘치는 깡패의 최후를 기억한다면 송해성 감독의 이 영화는 많은 깡패영화들의 결말을 충실히 전수받은 셈이다.
이 영화는 이달 20일부터 26일까지 새롭게 페스티발 형태로 열리는 대종상의 개막작으로 일반 영화팬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 4월 28일 <친구>와 <한니발>의 격돌 속에 정통 한국멜로영화 팬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감독: 송해성
주연: 최민식, 장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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