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니 표양아] 황건신 감독의 모던 차이나

2009. 10. 19. 10:37중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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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나의 선행을 알아주세요] 황건신 감독의 모던 차이나

   중국에 황건신(黄建新,황졘신)이라는 감독이 있다. 장예모, 진개가와 함께 이른바 5세대감독 군에 속하는 영화인이다.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다. (장예모와 진개가보다 몇 년 늦게 북경전영학원에 입학했다) 그의 최신작은 최근 중국에서 개봉된 중국건국 60주년 초거대작 <건국대업>이다. 이 영화는 이미 4억 위안을 벌어들이며 중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익 작품이 되었다. 황건신 감독의 작품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 줄곧 현대화되어가는 중국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청년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소개된 것은 아마도 3년 전 CJ중국영화제에서 상영된 <스탠드 업!>(站直啰!别趴下)일 것 같다. 그는 한국자본도 투입된 <묵공>의 제작자로 한국영화계와도 친분이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한 번씩 곰곰 되짚어볼 필요가 있는 작품들이다. 그의 2005년도 작품 <구구니 표양아>(求求你表扬我)도 그러하다.

착한 사람, 착한 행동, 그리고 선행기사 한 줄



  영화는 중국의 한 도시(남경)의 신문사 기자가 만나게 되는 취재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명일만보>>(明日晩報)라는 석간신문의 베테랑 기자 고국가(古國歌)는 어느 날 한 남자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는다. 건설현장 노동자인 양홍기(楊紅旗)는 다짜고짜 자신이 좋은 일을 했으니 신문에 선행기사를 실어달라는 것이었다. 고 기자는 황당하지만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어서 도대체 무슨 좋은 일을 했냐고 물어본다. 양홍기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밸런타인데이 밤에 골목길에서 몹쓸 짓을 당할 뻔한 여자를 구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좋은 일을 하였다면 그것으로 끝이지, 그 오래 전 일을 왜 지금 와서 “내가 착한 일 한 거 알아 달라”고 요구할까. 고 기자는 맘에 내키지 않았지만 매일 찾아와서 언제 신문에 기사가 실리느냐고 보채는 양홍기 때문에 취재에 나선다. 그때 도와준 여자는 여대생 구양화(歐陽花)이다. 하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그 여대생은 펄쩍 뛰며 도대체 무슨 심보로 그러냐면서 그런 일 없었다고 그런다. 친구들도 그날 밤 같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고 기자는 난감하다. 편집장은 이 일에 관심을 가지면 양홍기 집을 한번 찾아가보라고 한다. 시골마을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에는 병으로 누워있는 양홍기의 늙은 아버지뿐. 그런데 그 집안 벽은 온통 표창장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모범노동자로 살아오면 받은 수많은 선행상, 표창장들이다. 그 아버지는 자신의 ‘모범인생’에 무한대의 자부심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아들(양홍기) 말로는 그런 아버지가 암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자신에게 “넌 착하게 살았지만 한 번도 표창장을 받은 적이 없구나. 내 살아생전 네가 장한 일 했다는 것을 보고 싶구나..”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효자로 소문만 양홍기는 아버지 살아생전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요량으로 기자를 찾아가서 옛날 자신의 착한 일을 신문에 실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어쩌겠는가. 고 기자가 아무리 탐사취재를 해도 여자 쪽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그러니. 결국. 양홍기의 아버지는 숨을 거두고, 효자 양홍기는 절망에 빠진다. 그런데 대반전. 그 여대생이 결국 고 기자에게 울면서 소리친다. “이제 와서 뭘 어쩌란 거예요. 내 인생을 어떻게 되고요. 왜 잊고 싶은 일을 자꾸 들춰내려고 그래요...”.  고 기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신문사에 사표를 낸다. 그리곤 북경을 돌아다니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누군가가 보고는 쫓아간다. 효자 양홍기가 휠체어를 탄 아버지를 모시고 자금성을 관람하는 모습이었다. 고 기자가 쫓아가서 보니 아버지는 만면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고 기자는 그게 자신의 환상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사회부 사건기자라면...

   그냥 보아도 이 영화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자가 진실을 안다고 해서, 그 진실이 만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해 단 한사람의 피해자가 생길 경우 어찌할 것인가라는 저널리즘의 원론적 딜레마를 담고 있다. 여자가 강간당할 뻔했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준다. 이 남자는 자신의 선행을 내세우고 싶지도 않고, 여자도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기억에서 깡그리 지워졌음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정상 그 남자는 그날 자신이 그곳에서 어떤 착한 일을 했음을 증명해야할 경우. 어찌할 것인가.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옐로우 페이퍼 찌라시라면 여자가 굉장히 미모이고, 그 날 따라 초미니스커트를 입었었고, 평소 행실이 문란했고... 등으로 기사를 작성한다면 신문발행부수는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면 포털사이트 기사 클릭수가 폭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니면 A대학 B양이 어쩌고 식으로 처리하면서 인권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방어막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우선 피해자 측에서 극구 자신의 사건을 기사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답은 나온다. 그냥 포기하라고.

인민의 영웅



   중국에서는 10억 인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범 인민영웅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뇌봉 따라배우기’의 인민영웅 뇌봉(雷峰) 같은 인물 말이다. 뇌봉은 1940년에 태어나서 1962년, 22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 나이에 중국건국을 위해, 아니면 공산주의 사회를 위해 무슨 거창한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택동의 중국은 아니 그 후에도 오랫동안 중국사회가 정신적으로 느슨해질 때이면 ‘뇌봉정신 따라 배우기 운동’이 효력을 발휘한다. (뇌봉에 대해선 중국사회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각자 좀 더 연구해 보시기 바라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양홍기의 아버지가 그런 인민영웅이다. 아마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초기부터 모택동의 열렬한 추종자로,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분위기에서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마을 앞길 내가 먼저 청소하기, 모택동 동상 닦기, 모주석 어록 외기 등등.... 그래서 그는 매번 우수당원, 모범시민으로 표창장을 받고, 박수를 받고,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이라는 사회는, 중국이란 국가는 깨끗하고, 살기 좋고, 강대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람(양홍기 아버지)이 병으로 죽어갈 때 고 기자가 마을 공산당 서기에게 그런다. “이런 인민의 영웅을 국가가 이런 허름한 집에서, 이렇게 병들어 죽어갈 동안 아무 조치도 안 해줬단 말인가요?‘ 그러자 당서기가 그런다. ”아니죠. 국가가, 당이, 할아버지를 위해 돈을 주면 그 돈을 불쌍한 사람에게 줘버리고, 병원에 가자면, 자신보다 더 아픈 사람을 돌봐야지 하며 말을 듣지 않았어요...“라고.

   아마도 그런 사회,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양홍기는 비록 (학교에서) 잘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가는 근본을 알고, 정의를 알고, 착한 일의 의미를 나름대로 알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영화에서 후반부의 황당한 극 전개에 한국영화팬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인간심리의 근본적 회의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고 기자의 고뇌도 이해할 만할 것이다.

다시 여대생의 경우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할 것이다. 피해자가 두 번 다시 악몽에 빠져들도록 하지 않는 방식과 보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대중적 호기심과 공익의 이름, 그리고 알권리라는 무서운 무기로 자행되는 언론의 만행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황건신 감독은 어쩌면 소소한 사건을 통해 거대한 문제를 툭 던져놓은 것인지 모른다. 답은 없다. 각자 고민할 수밖에.

중국 배우들

  고국가 기자로 나오는 배우는 왕지문(王志文,왕쯔원)이다. <묵공>과 진개가 감독의 <해피 투게더>에 나왔었다. 순박한 효자 왕홍기 역으로 나온 배우는 범위(范偉,판웨이)이다. 영화배우 TV탤런트이며 상성(相聲)연기자이다. ‘상성’은 음.. 장소팔 고춘자 스타일의 만담가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여대생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진호(陳好,천하오)이다. 중앙희극학원 연기과 출신이다. 강문, 공리, 장쯔이, 유엽 등이 여기 출신이다. 꽤 많은 TV드라마에 출연했지만 한국 팬에게는 2002년 김용 드라마 <천룡팔부>에서의 아자(阿紫) 역으로 기억된다. 고 기자의 여친으로 나오는 배우는 묘포(苗圃,먀오푸)이다. 역시 한국 팬에게는 낯설지만 중국에서는 이소로(李小璐,리샤오루), 도홍(陶虹,타오훙), 주원원(朱媛媛,쭈위앤위앤)과 함께 사소청의(四小青衣)라 불린다.

 장예모나 진개가 말고 중국의 재능 있는 감독이 전하는 현대화되어가는 중국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by 박재환 20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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