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 쇼브러더스 장철 감독의 역사 액션물

2008. 12. 21. 21:3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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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청(晩淸)시기 정치는 부패했고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동치 9년=1870년)에 양강총독(兩江總督)이었던 마신이(馬新貽)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른바 청말 4대 미스테리(清末四大奇案)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마안(刺馬案)‘이다.

   실제 마신이 총독의 암살사건은 단순했다. 동치(同治) 9년 7월 26일 상오, 연병장에서 열병의식을 마친 마신이가 총독부서로 돌아오는 길에 자객 장문상(張文祥)의 습격을 받는다. 장문상은 달아날 생각은커녕 그 자리에서 오히려 "자객은 나, 장문상이다"고 소리 지르기까지 했다. 총독이 살해되자 청 정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런저런 이유로 신속하게 처리될 필요가 있었다. 마신이에 대한 추문이 흉흉했고, 정권 실세였던 서태후는 통치기반의 동요를 막기 위해 서둘러 봉합에 나선다. '태평천국의 난' 진압에 큰 공을 세운 증국번에게 처리가 맡겨졌다. 결국 마신이의 좋은 관리였고, 장문상은 도적과 내통 관리를 살해한 것으로 사형에 처했다. 장문상의 심장은 도려내져서 마신이의 제단에 바쳐졌다. 이상이 전해오는 마신이 암살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100년이 넘도록 소설과 연극 등으로 충분히 각색된다. 내용도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당시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 마신이가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곳에서 도적 패거리에 불과했던 황종(黄緃)과 장문상과 의형제를 맺게 되며, 나중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결국 양광총독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신이가 황종의 아내 미란(米蘭)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고, 마신이는 황종을 죽음에 몰아넣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장문상은 배신감을 느끼게 되어 마신이를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형제간의 의리를 중시하는 ‘협객/무협소설’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신이는 못된 놈이고, 출세를 위해 온갖 음모를 저지르는 악당인 것은 당연하였다.

  중국인(특히 광동-홍콩인)에겐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이야기를 1973년에 쇼 브러더스의 장철 감독이 영화로 옮기려고 하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당시 청장극(淸裝劇;청나라 복장의 드라마)은 매력 없는 시대극으로 취급되었다. 멋진 남자주인공이 앞머리는 밀고, 뒷머리는 댕기처럼 하고 다니는 꼴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철 감독은 적당히 헤어스타일을 처리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한편의 사극액션물을 완성시킨다. <자마>는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다.

   장철 감독은 그 동안 100년은 훨씬 더 알려진 ‘자마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한다. 특히 악당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던 마신이를 고뇌하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혼란의 시기에  우국충정으로 가득한 마신이는 산적 패거리를 규합하여 반란군을 제압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적인 술수를 써서 높은 자리에 오른다. 마신이를 연기하는 배우는 ‘적룡’이다. 우리에겐 <영웅본색>의 대머리 장국영 형으로 먼저 인식된 적룡을 지금 다시 보면 그가 쇼브러더스 시절 꽤 미남이었음을 알게 된다. 적룡의 출중한 외모에 더하여 깊은 인간적 갈등을 표출하는데 무리가 없다. 의동생을 향한 시선은 큰형님의 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생의 아내와의 불순한 감정은 그에게 극한의 자제심과 함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의 결정을 이끌게 한다.
   장철 감독은 ‘미란’의 행동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안겨준다. 장철 감독이 누구인가. 그는 홍콩의 대표적 양강(陽剛)주의 감독이다. 오우삼 감독 훨씬 이전에 남성미학과 형제의 의리를 최고의 영상미학으로 내세웠던 감독이다. 그가 선 굵은 남자배우들의 의리에 올 인하더니 어느 순간에 큰형과 동생의 아내라는 기이한 애정전선을 내세운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용납할 수 없는 불륜’이며, 형제의 정을 끊어놓는 극한의 장치가 아닌가. 그런데 극중에서 미란은 “지금 남편은 아무 것도 몰랐던 철없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인연이다. 이제 이렇게 멋진 남자를 알게 되었으니 나는 새로운 선택을 할 것이다.”는 뜻밖의 ‘여성선언’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페미니스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하튼 장철 감독은 뜻밖에도 한 여자 때문에 벌어지는 배신과 비극의 드라마를 이끌어낸다.

  마신이 역을 맡은 적룡의 열연은 지금 봐도 훌륭하다. 장철 액션극의 정형화된 액션스타일에 성숙한 남성미를 더해주었으니 말이다. 장철 영화의 페르소나 강대위는 여전히 뺀질대며 시니컬한 웃음에 통쾌한 액션을 안겨준다. (지금 보니 분위기가 참 주성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매한 둘째 역을 맡은 배우도 장철 사단의 한 사람인 진관태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미란 역을 맡은 배우는 정리(井莉)이다. 정리는 6살에 영화를 시작하였고 67년에 쇼브러더스에 들어와서 10년 동안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오우삼은 이 영화에서 장철의 조감독으로 활약했다. 홍콩의 진가신은 이 영화에 매료되어 결국 작년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를 캐스팅하여 <명장>(投名状)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명장> 박재환 리뷰보기)

   참, 그리고 마신이 암살사건을 좀 더 소개하자면.. 마신이가 암살당한 이유와 장문상을 신속히 처형한 이유가 흥미롭다. 태평천국을 진압한 증국번의 세력이 커지자 불안감을 느낀 서태후는 양강총독 자리에 마신이를 집어넣는다. 증국번의 상군(湘軍)이 태평천국의 근거지 남경을 함락(1864)시키고는 당시 반란군을 이끌던 이수성(李秀成)을 심문했는데 당시 여러 가지 말이 나돌았다. 이수성은 증국번에게 남은 태평천국군을 이끌어 청을 무너뜨리고 황제가 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소문이 나돌면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증국번은 이수성을 즉각 처형하여 입을 막는다. 하지만 증국번의 부하들은 증국번에게 계속 ‘반란’을 주문한 모양이다. 게다가 남경에서 거둬들인 태평천국군의 수많은 보화의 행방도 관심거리이다. 서태후는 이런 것을 조사하기 위해 마신이를 총독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마신이가 제대로 조사도 해보기 전에 암살당한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정치적 음모론이 횡행할 여지가 있는 시대적 배경이며, 사건인 것이다.  (박재환 200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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