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시]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

2008.09.23 09:48중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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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그다지 흥미를 못 느낄 영화이지만 중국사-특히 모택동과 장개석이 중국대륙의 운명을 걸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던 시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꽤 흥미로울 영화이다. 그렇지 않은 영화팬이라도 나름대로 감상할 수 있는 간단한 정보를 먼저 소개한다.

    영화는 1930~40년대 전란의 와중에 휩싸인 중국이 배경이다. 중국대륙은 모택동의 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이 싸울 때였고 일본이 남경(南京,난징)에서 30만 명의 민간인을 대학살할 때였다. 중국에 갓 건너온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젊은이 죠지 호그는 중국에서 펼쳐지는 아비귀환의 지옥장면을 직접 목도하고는 인생과 가치관이 바뀌게 된다. 죠지 호그는 전란으로 부모를 잃은 중국인 고아 60명의 보호자가 된다. 전란이 심화되자 영국인은 어린 60명의 중국 고아들을 이끌고 평화의 땅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 장장 1,000킬로미터의 장정을 떠난다. 아직도 중국인들은 이 영국 청년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단다.

   얼핏 보아도 <쉰들러 리스트>의 중국 대장정 버전이다. 영국인 죠지 호그 역을 맡은 배우는 영국드라마 [튜더스: 천년의 스캔들]에서 헨리 8세로 분했던 조너선 리스 메이어스이다. 넓게 보아 미드 팬들에겐 꽤 인기를 끈 배우이다. 중국에서 찍은 영화답게 주윤발과 양자경이라는 톱 스타가 출연한다. 조너선 리스 메이어스의 헌신적 연기도 괜찮았고 [와호장룡]이후 오랜만에 함께 출연한 주윤발과 양자경의 포스도 느낄 만하다. 중국아이들의 연기도 정말 ‘중국스럽게’ 자연스러웠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인들은 ‘심정적으로’ 서양사람들이 공산주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거나, 아니면 그러한 사실을 훈육시킬 필요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 그럼, 심화학습

   먼저 영화를 보고 나면 죠지 호그가 실존인물일까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당시 생명을 구한 60명의 고아 중에 아직도 생존해 있는 몇 사람이 호그에 대한 회상을 하는 장면이 있다. 죠지 호그는 실존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게 각색되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죠지 호그란 인물은 한마디로 열정적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죠지 호그는 191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어떤 자료에는 문학을 공부했다고도 함) 학창시절 럭비선수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 뒤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간다. 일본에 있을 때 중국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나돌았고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풍문이 있었다. 죠지 호그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상하이로 향한다. 단지 이틀 체류할 목적으로. 그러나 그는 7년을 중국에 눌러앉았고 결국 중국에서 숨을 거둔다. 상하이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중국을 몰랐고 중국어도 할 줄 몰랐다.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던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남경에 진입 무려 30만 명을 무차별 학살하는 ‘남경대학살’(1937년 12월)이 벌어진다. 죠지 호그는 AP통신사 촬영기자로 남경에 잠입한다.

   영화를 보면 죠지 호그는 남경에서 엄청난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일본의 잔학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일본군에 발각되고 참수당할 위기에 놓인다. 이때 유격대 대장 주윤발이 등장하여 죠지 호그를 구해낸다. 주윤발의 극중 이름은 잭(Jack). 중국어 이름은 진한생(陳漢生)이다. 중공군의 편제인 ‘신사군’(新四軍) 마크를 단 군복을 입고 있다. 이 남자 영어가 유창하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육사)출신이란다. 죠지 호그는 잭의 도움으로 ‘황석(黃石)’이란 곳에 보내진다. 그곳에서 그는 60명의 중국 고아들과 조우하게 되고, 또 한 명의 푸른 눈을 가진 이방인 ‘리’와 함께 이들을 돌보게 된다. ‘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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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죠지 호그의 이야기는 오래 전에 문자화되었다. 죠지 호그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르위 앨리(Rewi Alley)라는 사람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이 사람은 사회개혁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전형적인 서구 공산주의자였다. 이념을 위해 중국에서 평생을 바쳤다. 그는 국공내전 당시 그 유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애드가 스노우와 함께 일종의 유니언인 ‘꿍허’(工合,工業合作社)운동을 펼쳤고 직업학교인 베일리 스쿨(Bailie, 培黎學校)을 운영했었다. 죠지 호그는 중국에 건너와서 르위 앨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이 사람의 영향으로 공산당 관계자와 친분을 쌓았고 ‘꿍허’운동에 참여했다. 르위가 섬서성 쌍석(雙石鋪)에 세운 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했다. 바로 이 학교라는 것이 보기에 따라선 고아원이 될 수도 있고, 직업학교도 될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이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쌍석의 이 학교는 이동을 결단하게 된다.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의 대공세를 피해 만리 대장정을 떠난 것처럼 말이다. 죠지 호그는 눈 덮인 설산 등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고 결국 감숙성 샨단(山丹)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다시 학교를 세우고 말이다. 죠지 호그는 이곳에서 숨을 거둔다. 영화에서는 아마도 사막지대에서 회오리 모래바람을 만났을 때 트럭을 수리하다 손을 다치고 아마 그 후유증으로 죽는 것으로 보인다. 자료에 따르면 죠지 호그는 학생들과 농구를 하다 발을 다치고 파상풍으로 숨을 거둔다. 그 날이 바로 1945년 7월 22일이다. 일본군이 항복한 것이 그해 8월 15일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30살.

  르위 앨리는 나중에 [ Fruition: The Story of George Alwin Hogg]라는 책을 썼다. 죠지 호그에 대한 책은 이후 몇 권 더 나온다. 이 영화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맥머너스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을 때 쓴 그의 기사가 저본이 된다. 맥머너스는 올해 [ Ocean Devil: The Life and Legend of George Hogg]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르위 앨리나 에드가 스노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서구인이다. 중국을 이해했고 사랑했고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노먼 베슌이라는 캐나다 의사도 생각날 것이다. 영화에서 죠지 호그와 함께 중국인민(고아)에게 헌신하는 여자 간호사 ‘리’도 실존인물인지 궁금했다. 죠지 호그가 중국에서 실제 만난간호사는 뉴질랜드 출신의 ‘凯塞琳 霍尔’(캐서린 후어)였단다. (정확한 영문이름은 확인 안 됨) 캐서린은 중공군과 함께 대장정을 했던 캐나다 의사 노먼 베슌(Norman Bethune)에 매료되어 역시 중국에 ‘헌신’했던 서구인이다. 캐서린은 의약품 등을 빼돌려 해방구에 있는 노먼 베슌에게 전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하튼 중국을, 중국인민을, 중국공산당의 열정과 이상을 사랑했던 인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영화에서 죠지 호그와 간호사 ‘리’의 이데올로기적 문제는 탈색된다. 대신 중국에서 중국정부의 절대적 지원과 지지를 받은 영화답게 국민당(장개석) 군에 대한 부정적 색채가 강하다. 일본 놈은 엄청나게 나쁜 놈으로 묘사되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제목에 대한 딴지

   우리나라에 이 영화는 [황시]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중국어제목은 [황석의 아이들](黄石的孩子们)이다. ‘황석’(黃石)의 중국어 발음은 [황쓰/황스](Huang Shi)이다. 한국인에게(특히 경상도사람에겐) 저 ‘Shi’발음이 꽤 어렵다. 중국의 그 유명한 여배우 章子怡(Zhang Zhi-yi)를 보자 중국어 발음은 [장쯔이]이다. 아마도 이 여자 검색하면 장즈이/장쯔이/장자이/장지이 해도 다 나올 것이다. 자(子)의 발음이 [zhi]인데 이것 역시 [쯔]이지만 잘 모르는 한국사람은 [찌/지]라고 읽는다. 황석의 ‘석’(石) 발음은 [쓰/스]이어야하는데 [시]라고 한 것이다.
  큰 문제 아니라고 여기면 큰 문제 아니다. 외국 인명이나 지명에 대해서는 현지발음대로 표기해야한다는 ‘룰’에 따르자면 논란을 야기할만하다. ‘부산’을 ‘버산’이라고 읽고는 “비슷하잖아~”하는 것이랑 같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정말 ‘황석’일까. 황석은 중국 호북(湖北,후베이)성에 있는 마을이다. 그런데 실제 영화의 발생지는 섬서성 쌍석(双石)이라고 한다. 르위 앨리가 처음 ‘쌍석’(슈앙스)을 ‘황석’(후앙스)으로 잘못 알아듣고 책에 그런 식으로 표기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중국내 첫 떠들썩한 시사회는 섬서성 쌍석이 아니라, 호북성 ‘황석’에서 거행되었다. 중국 고아들의 고향도 쌍석이 아니고 황석이 되어버렸고 말이다.

   영화는 그저 그랬는데 영화 때문에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한 시기를 다시 보게 되어 흥미로웠다. (박재환 2008-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