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싱] X같은 ‘인생은 아름다워’ (김태균 감독 Crossing, 2008)

2008. 6. 25. 14:5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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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8.6.25.)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8년 12월 20일 오후 8시, KBS 1TV [KBS스페셜]에서는 충격적인 르포 프로그램을 하나 방송했다. 제목은 <<1998년 지금 북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였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RENK(북한민중긴급행동네트워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위험하게 촬영한 북한 주민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당시 한국 매체에는 북한이 연이은 수재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전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북한의 어느 하늘 아래서 실제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속 시원하게 알기란 어려웠다. 그런 시점에 목숨을 건 몇몇 비디오 액티비스트들이 찍어온 영상물은 당시 한국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방송내용은 북한의 어느 도시의 모습을 통해 당시 북한의 헐벗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초보적인 시장경제가 도입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나 집에서 기르던 닭이 낳은 달걀 등을 가지고 나와 초보적인 교환경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을 휩쓴 수재 탓에 가난과 배고픔에 내몰린 아이들의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이다. 이들이 바로 ‘꽃제비’이다. 북한 꽃제비 아이들은 더럽고 꾀죄죄했고, 다 헤진 옷과 신발을 걸친 채 진창바닥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 체면과 양심, 그리고. 동심을 내팽겨 치고 있었다.

그 후 10년.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남북한에 이어진 기적적인 교류는 북한의 드라마틱한 붕괴를 유예시켜왔다. 그 이면에는 여전히 배고픔의 원시적 고통에 빠진 북한주민이 존재하고 있다. 이미 많은 매체들이 어떻게 찍어왔는지 북한의 실상과 압록 강변에서 펼쳐지는 사투를 영상으로 전해주고 있다. 이런 감춰진 모습이 남한의 안방에 전해지는 것은 미디어의 힘과 몇몇 종교단체의 숭고한 사명감이 결합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쨌든 10년 전 그 영상을 보았던 사람 중에 김태균 감독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태균 감독은 [박봉곤 가출사건], [화산고], 그리고 강동원이 출연한 [늑대의 유혹] 같은 영화를 감독했던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꽃제비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몰래 이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지난 2년 동안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찍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 영화에 차인표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했다. 개봉을 앞두고서야 [크로싱]의 실체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크로싱]은 함경도 한 탄광의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북한의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아닌 ‘생존’에 대한 원초적 의문을 보여준다.

김용수(차인표)는 오늘도 탄광 막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다. 집에서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그를 기다린다. 아버지는 밥 먹기 전에 아들과 공차기 놀이를 한다. 집안의 또 하나의 가족인 ‘백구’도 이들과 함께 먼지 날리는 마당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 순간을 맛보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 아버지와 아들은 두 팔을 벌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은 이 성스러운 시간에 대한 경배를 올린다.

이들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임신한 아내가 영양실조에 결핵까지 겹친 것이다. 의료소에서는 진단을 할 뿐 약이 없다고 말한다. 용수는 결심한다. 중국으로 건너가자. 중국에서 어떻게든 돈을 모아 약을 사 오는 거야라고….

그날 그야말로 오랜만에 밥상 위엔 고깃국이 오른다. 용수는 환자인 아내에게 고기를 발라주고, 아들에게 많이 먹으라고 그런다. 뼈를 핥던 아들 준이는 신이 나서 백구에게 달려간다. 백구가 없다. 아들은 오열한다.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아버지가 소리 지른다. “니는 엄마 뱃속의 니 동생보다 개새끼가 더 소중하냐”

용수는 목숨 걸고 국경(북한-중국)을 넘는다. 그리곤 벌목장에 불법체류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들. 용수는 도망간다. 그러다가 배에 두르고 있던 전대를 놓치고 만다. 아내의 약을 살 수 있는 돈이 든 전대를……..

영화는 북한의 가난한 한 가장의 궤적을 통해 가족들이 어떻게 불행해지고 끝내 해체되는지를 끔찍하게 보여준다. 겨우 도망쳐온 한 무리의 불법 체류자들. 그들에게 누군가 손을 내민다. 인터뷰만 하면 ‘돈’을 주겠단다. (이들의 존재는 누굴까. 이들은 선의의 구원자일까. 아니면 돈에 눈이 먼 위선자일까.)

용수는 서구TV방송사들이 생방송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영사관으로 뛰어든다.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중국의 외교건물진입장면! 용수는 그곳이 어떤 건물인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단지 시키는 대로 담을 넘어 진입하면 손에 돈이 쥐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는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 되어 ‘남조선’땅에 정착한다. 새터민이 된 것이다. 그는 한국정부와 아마도 종교단체가 마련해준 작은 공장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잊지 못한다. 아내를 위해 억척스레 돈을 모은다.

가장 슬픈 장면은 이 장면이다. 용수는 돈을 손에 꼭 쥐고 약국을 찾는다. 북한 의료소에서 받은 약방문을 보여준다. 결핵… 약사가 썩 보더니 한다는 말. “처방전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 말. “결핵약은 보건소에서 공짜로 줘요!”

모르긴 해도 얼마나 많은 북한 이탈자들이 저 말에 눈물을 쏟았을까.

용수는 위험을 무릅쓴다. 어떻게든 아내를 만나기 위해 중국에 루트를 뚫는다. 가족의 재회를 위해. 하지만 아내는 이미 죽었고 아들은 거지신세가 된다. 꽃제비가 된다. 준이는 아버지를 찾아 목숨 걸고 국경을 넘다 붙잡혀 도저히 사실일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어린 준이가 겪게 되는 수용소 모습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진배없다. 소년이 수용소에서 다시 만난 학교친구 미선. 미선의 등짝은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구더기와 함께. 준이는 미선을 자전거에 태워 북한의 하늘아래를 달린다. 그 순간 관객은 미선이의 운명을 이미 눈치 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왜 그 어린 영혼들이 그렇게 죽어갈까.

남한 땅에서 돈을 모은 아버지. 아버지는 중국 쪽 브로커를 통해 수용소에서 아들을 빼내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아들과 접선하기로 한다. 장소는 몽골. 사랑하는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던 아버지. 결과적으로 가족을 남겨두고 남조선으로 도망가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러면서 또 만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들. 몽골의 황량한 벌판은 그들에게 약속의 땅일까.

감독은 너무나 잔인하다. 감독은 한 가족의 붕괴와 삶의 희망, 생존의 열정을 한순간에 끝장내고 만다. 관객들은 이미 습득한 지식과 예상 가능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북한 사람의 절망을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한다.

몽고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용수는 쏟아지는 비속에서, 축구를 하던 그 행복했던 시절의 북한마을과 가족을 떠올린다. 관객은 감정의 무장해제를 당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가 비밀리에 촬영된 것은 다행이다. 아마도 떠들썩한 관심과 소문 속에서 진행되었다면 2008년 대한민국의 극단적 논쟁의 중심에서 너덜대는 걸레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냐.”는 주장 같은 거 말이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관객은 왜 이런 영화를 보아야할까.

우리가 비싼 먹을거리 논쟁을 펼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중국 지진재해민도 아니고, 아프리카 난민도 아닌, 우리 동족이 굶어 죽어가고 있단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재환 2008-6-25)

감독: 김태균 출연: 차인표,신명철,주다영,서영화,정인기 개봉:2008.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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