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 형! 1분만이라도 유명해지고 싶어.. (왕가위 감독,旺角下門1988)

2008. 2. 15. 08:49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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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11.23. – 꽤 오래 전에 쓴 리뷰네. 언젠가 다시 보고 다시 쓸 예정)

왕가위 팬이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이 영화는 그의 감독 데뷔작품이다. 아마, 유덕화 팬이라면 그가 <天若有情>(비디오 출시제목이 ‘천장지구’>에서처럼 조금 잔인하게 얻어터지는 장면 때문에라도 ‘멋진’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 때문에 이 영화는 오늘날, 좀 덜 떨어진 신창원 따라하기 추종자들이 볼 경우, 잘못된 감동을 충분히 받을 수도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장학우는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친다. 확실히 이 영화는 소외와 고독의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홍콩의 어두운 밤풍경과 칙칙한 거리, 조명들로 가득한 도심을 스쳐 지나간다. 가라오케의 수많은 모니터에서는 알 수 없는 화면들이 흘러나오고 있고, 곧이어 유덕화의 어두운 아파트 공간으로 안내된다. 유덕화는 자다가 친척의 전화를 받는다. 곧, 그의 사촌 여동생이 오게 된다. 장만옥은 어둠 속에 마스크를 한 채 나타난다. 그리고,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는 장학우가 등장한다. 이제, 이 기울어가는 홍콩, 운명이 다한 한 국가의 뒷동네의 어중간한 암흑가의 넘버 투, 쓰리쯤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왕가위 영화가 그렇게 매력적인 것은 전적으로 ‘스타일리스트’로 이름 날리는 왕가위의 모호한 위상과 관련되어 있다. 대가의 숨결이라 보기에는 실험적 영화감독 느낌이 난다. 하지만 확실히 작가주의 감독의 숨결이 느껴진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덜컹대며 휭휭 지나가는 편집의 묘미에 묻혀있는 슬픔과 고독이 절절히 베어나기 때문이다.

유덕화가 연기하는 아걸은 14살에 첫 살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언제나 똑같은 그렇고 그런 생활을 한다. 해결사이기도 하며, 구역 내 상권을 보호해주고, 자기 세력-창이 하나밖에 없지만-의 보스로서 위상도 지켜야하는 그런 생활. 하지만, 그에게는 암흑가의 보스가 될 것이라는 직업적 의식도, 라이벌 세력을 무찌르고 천하통일 하겠다는 야심도,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도 없다. 그냥, 말썽 많은 동생 ‘창이’를 제대로 보호하면 그만이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아화라는 존재는 그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준다. ‘내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이지만, 이제는 그녀와 대만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창이만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장학우가 연기하는 ‘창이’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는, 언제나 덜렁대며,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날뛰는지 모를 만큼 제멋대로이다. 언제나, 듬직한 아걸 형님이 나서서 수습해주지만 일이 커질수록 형님까지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창이는 언제나 밑바닥 인생이며,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자신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나도 한번만이라도 유명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동정심마저 불러일으키는 그 장면. 달동네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창이. 목숨을 내놓고 구한 돈으로 에어콘을 사들고 가지만 전화에서 들려오는 매정한 소리. 창이는 에어콘을 언덕으로 집어던진다. 아걸이 나타나서 이런 생활을 끝내고 새출발하기를 권한다. 창이는 더 이상 자기에게 관심 갖지 말라고 한다. 아걸이 말한다. “내가 널 신경 안 쓰면, 누가 널 신경 써주니” 그렇다. 이 영화의 핵심코드는 어쨌든 ‘소외’인 셈이다.

그것은 장만옥의 얼굴 마스크에서 단절된 세상이 아니라, 바로, 장학우의 ‘왕따돌림’인 것이다. 장학우는 그러한 현실을 타파하고 싶어서 결국은 마지막 위험한 선택을 한다. “1분 만이라도 유명해지고 싶어, 평생이 아니라도 좋아”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 참 많이 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짧은 것임은 확실하지만, 굵은 것인가는 논외의 문제이다. 결국, 아걸이 그런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가지.” 이런 형님을 모시는 것은 암흑가 패거리에겐 정말 행운이요, 복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정통 갱단이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고.. “형. 내게 너무 친절하게 하지 마. 은혜를 갚을 수가 없단 말야”

그리고, 라스트 씬은 왕가위 영화의 영원한 등록상표인 스텝 프린팅과 슬로우 모션이다. 경찰보호하의 증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 창이는 마지막까지 업무수행을 완벽하게 해치우지 못한다. 그러니, 다시 아걸이 나타나서 그 뒷수습을 해준다. (유덕화가 분명, 뇌를 다쳐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나오는 감호소 장면은 홍콩버전이다. 대만버전에서는 총 맞고 죽는 걸로 끝난다) <천장지구 (‘속 천장지구’로 비디오 나옴)> 라스트 신과 유사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왕가위 영화답지 않은 장면을 고르라면, 아마, 베드신 아닐까 한다. 유덕화가 죽도록 얻어맞고,(야구방망이로 머리를, 권총으로 그쪽 부위를…) 비틀대며 장만옥을 찾아왔고, 치료한 다음날 침대에서 상처투성이의 유덕화가 장만옥에게 그런다. “꼬우 라이…”(이리 와봐!) 장만옥. 손을 톡톡 치며. “간지러워…” 그리곤, 유덕화가 장만옥을 끌어서 침대에 눕힌다. 다음 장면은 러브씬이 아니라, 마루바닥의 얼음통에서 맴돌고 있는 물이다. 그리고, 아침 햇살에 둘이 눈을 뜬다. 참, 유치하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남는 장면은 유덕화가 핫팬츠를 입고, 장만옥은 미니 스커트 입고, 유덕화가 닭날개 가득 든 짐을 들고 부둣가를 걸어가는 장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유덕화는 더 이상 왕가위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참, 우리나라에 출시된 비디오(90년 3월 대하프로덕션) 번역문제. 아마, 비 내리는 장면일 것이다. 유덕화가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뛰어들고, 오래 전에 헤어진 -자기의 아이를 낙태시켜버리고, 더 이상, 그런 유덕화가 싫다며 떠나가 버린 바로 그 – 여자를 만난다. 이 여자는 자신은 곧 결혼할 것이라고 한다. 관객의 눈에도, 유덕화의 눈에도 이 여자가 임신 중인 것이 확실하다. 여자가 “나 결혼해. 저기 저 남자랑..” 유덕화가 그녀의 배를 쳐다본다. 여자가 말한다. “부셔니더.(不是你的).”라고. “당신의 (아이)가 아냐.”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자막은 “미안해”로 나온다.

내가 아는 대만의 흑사회(암흑가)(출신)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한국깡패와 이른바 중국계-정확히는 화교계열의 조직- 갱들의 가장 특징적인 차이는 ‘실속’이라고 한다. 최민식 검사가 일찍이 <넘버3>에서 갈파한 “건달-불한당”처럼, 우리나라 깡패는 이른바 멋을 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한참 빗나간 ‘겉멋’말이다. 건들대고, 머리엔 무스 바르고, 뒷 호주머니엔 빗 꽂고, 선글라스는 기본이다. 길에서 다른 패거리와 만나면 이런다. “내가 말야…”부터 시작하여, 과장과 황당의 이야기만 줄줄이 쏟아 붓는단다. 반면, 중국계는 표가 난다. 딸딸이(슬리퍼) 질질 끌고, 담배 꼬나물고, 팔찌 끼고(이건, 중국인은 다 그렇지만..), 그리고, 대부분은 롤렉스를 차고 있다. 이들이 한국깡패와 따악- 마주치면, 답이 바로 나온다. 한국 깡패는 예의 그 “내가 말야… 너 내가 누군지 알어? 신림동 사시미야. 들어봤지? 별이 몇 갠 줄 알어?” 어쩌고저쩌고 그런다. 그러면, 중국계의 반응은 이렇단다. “아. 예 형님…” 하고 고개 숙이면서, 어느 순간에 뒤에서 칼을 뽑아 배를 푹 지르고는, 바람같이 사라져버린단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엄청 쫄렸었다. 우리나라, 깡패들도 이제 인터넷하고, 외국어 하는 것이 다는 아니다. 깡패든 뭐든, 기본이 중요한 것이다. 거들먹거리는 겉멋보다는 자기의 위치에서 가장 적합한 실력과 위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을 결단 내는 그런 실속 말이다.

1분만이라도 유명해지고 싶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旺角卡门(1988年王家卫执导电影)_百度百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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