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마녀전]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어버리면? (우인태 감독 白髮魔女傳 The Bride With White Hair,1993)

2008. 2. 15. 09:34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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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전 쓴 리뷰. 우인태 감독은 최근 헐리우드에서 <처키의 신부>라는 호러무비를 내놓았다. 주연은 <바운드>의 제니퍼 틸리. 홍콩출신 영화인이 헐리우드에 꽤 많이 진출했고, 참으로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백발마녀전>은 우인태 감독의 1993년도 히트작품이다. 우인태-장국영 조합은 <야반가성>을 내놓아 한 차례 더 성공한다.

이 작품의 원작은 양우생의 무협소설 <백발마녀전>이다. 양우생도 인기 무협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영화는 무협소설의 양식을 그대로 따른다. 정통과 이단, 사교의 출몰, 적과의 사랑, 죽음으로 갈라서는 연인, 그리고 끝없는 기다림 등등.

영화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자막이 올라간다.

청(淸)나라 초기 순치제 시절(順治年間). 황제는 중병에 걸려 위독했다. 그러나 천설봉(千雪峰)에 20년마다 피는 꽃이 있으니, 이 꽃을 먹으면 죽은 사람도 살리고 흰머리도 검게 만든단다. 조정에선 사신을 보내 이 꽃을 얻기로 한다. 청대 최고의 궁중고수들이 천설봉에 찾아가니, 그 꽃 근처에는 한 도인이 앉아 그 누구의 접근도 불허한다. 그가 바로 탁일항(卓一航)(장국영)이다. 무슨 사연으로 눈 덮인 설산에서 혼자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원래 탁일항(卓一航)은 중원 8대 문파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당파 자양진인의 수제자였고, 자양진인이 죽으면 무당파 최고의 지존자리를 물려 받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너무나 착해서 문제였다. 무예는 출중하지만, 그다지 권력지향적이다거나 전투적이질 않았다. 어린 시절 한밤에 늑대에게 쫓길 때 한 소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난 뒤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한 명은 강호 최고의 무술 실력가이며 무당파의 차세대 우두머리로 성장하였고, 또 한명은 사악한 마교의 킬러 낭녀(狼女,늑대여자)로 말이다.

마교(魔敎)의 교주는 샴 쌍둥이처럼 등이 붙은 남매이다. 이들은 원래 강호의 제자였으나, 사악한 짓거리를 많이 해서 죽임을 당해야하나, 목숨만을 부지하고 중원에서 쫓겨난 자들이다. 이들이 이제 복수전을 펼치려는 것이다. 그들은 어린 낭녀를 키우며 무공을 전수하고 낭녀는 닥치는 대로 대리복수전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다가 탁일항(卓一航)과 낭녀는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탁일항(卓一航)은 낭녀에게 연일상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사랑을 맹세한다. 연일상(임청하)이 그런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랑할거에요. 내 머리가 하얗게 되면 어쩌죠?” 그러자, 탁일항(장국영)이 맹세한다. “목숨을 걸고 천설봉에 있는 그 꽃를 따다 주지.”라고. 연일상은 자신의 말만을 믿어라 하고선 마교의 교주에게 가서 이제 마교의 손아귀에서 떠날 것이라 선언한다. 하지만, 교주의 계략에 의해 무당파는 거의 몰살 당하고, 탁일항은 그것이 연일상이 저지른 것으로 오해한다. 마교의 손아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연일상은 이제 자신의 운명이 탁일항과 남은 무당파에게 죽임을 당하리란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탁일항에게 분노하고,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새하얗게 변하고 만다. 그리곤, 홍콩영화답게 화려한 액션씬이 이어진다. 탁일항은 자신의 오해를 뒤늦게 깨닫고는 천설봉에서 연일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끝.

영화의 액션 장면은 꽤 멋있다. 장국영과 임청하의 파워풀한 연기도 멋있다. 둘의 로맨스는 강호의 칼날만큼 눈부시고, 장풍의 위력만큼이나 폭발적이다.

이 영화가 무협영화의 클래식으로 남을 이유는 몇몇 돋보이는 장면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마교의 우두머리의 형상. 남매인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등이 서로 달라붙어서 서로를 쳐다볼 수 없다. 남자는 낭녀를 주워 키우며 무공을 전수했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결코 사랑을 획득할 수 없다. 여자는 그런 고통 받는 남자가 재미있다는 듯이 끔찍한 웃음소리를 낸다. 그들이 마지막에 탁일항의 칼에 의해 등이 잘리고 최후를 맞이할 때,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이렇게 누우니, 너무 편안하다…”라는 소리에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동안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십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그러한 신체적 고통의 결과 그들이 중원을 얕잡아 보고, 강호를 평정하려한 것이리라.

그리고, 장국영과 임청하의 러브씬. 특히 폭포수에서의 키스씬은 사실, 아주 멋있다. 장국영의 터프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임청하로 말하자면 그녀의 최고매력은 역시 중성적인 매력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사랑에 배신 당하고 분노 때문에 머리가 새하얗게 바래버리는 비련의 여자로 나온다. 그녀가 마교에서 벗어날 때 당하는 수모와 역경은 다소 매조키스트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임청하의 영화인생 말년에 나온 명작인 것은 분명하다.

임청하는 1954년 11월 3일생이니, 올해 벌써 46살이다. 1994년 6월 29일 임청하는 유명패션 메이커 ESPRIE의 주인인 홍콩 거부 형이원(邢李源)과 결혼식을 올리면서 완전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날 결혼식은 L.A.의 그들의 호화저택에서 열렸다. 그날 대만, 홍콩의 매체들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며 이 세기의 결혼식을 중계했다. 보통 돈 많은 남자와 스타여자배우가 결혼하면 곧 이혼하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했으니 이들도 곧 헤어질 것이라고 관측한 사람이 많았지만, 임청하는 전업주부로 완전히 미국 LA에 콕 박혀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임청하는 그 은퇴까지도 완벽히 그녀의 미스테리한 매력을 덧붙인 것이다. (박재환.1999)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 The Bride With White Hair] 감독:우인태 출연:장국영,임청하,오진우,남결영 개봉:199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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