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느 박’ 박찬욱에게 ‘마침내’ 감독상을 안겨준 깐느영화제 수상작 [헤어질 결심]이 개봉되었다. ‘헤어질 결심’은 시네필 박찬욱의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관계에 대한 집착이 완벽하게 구현된 ‘영화적’ 작품이다. 분명 이 영화는 볼 때마다 그 미장센에 매혹되고, 장면과 대사를 곱씹어볼 때마다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박찬욱이라는 명감독이 조율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앙상블로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름다운 중국여자 서래(탕웨이)의 혐의를 파헤치다가 공교롭게 그 피의자에게 매혹되고 마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이야기이다. 출중한 수사실력, 그리고 세련된 매너로 ‘최연소 경감’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박해일은 구소산에서 추락사한 남자(유승목)의 사인에 의문을 품는다. 산이 좋아 산을 타다 산에서 떨어져 죽은 이 늙은 남자의 젊은 처자 탕웨이를 보는 순간부터 박해일은 묘한 긴장감을 갖게 된다. 이제 형사와 피의자는 애매한 관계에 놓인다. 불면에 시달리는 이 중년의 형사는 “주말부부 열 쌍 중 여섯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속설과 싸우는 셈이고, 훌륭한 혈통(!)의 중국여자는 TV통속드라마로 배운 한국어를 언젠가는 멋들어지게 써먹을 요량이다. 두 사람은 살인사건을 앞에 두고 밀당 아닌 밀당을 펼치게 된다. 이 모든 드라마는 박찬욱의 치밀한 설계 아래 펼쳐지는 것이다.
● 치정멜로와 정통수사극, ‘단일’한 이야기가 ‘마침내’ 펼쳐지다
남자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식탁에서, 침대에서 항상 직장동료인 이 주임 이야기를 꺼낸다. “섹스리스 부부의 55%는 이혼한대. 괜찮냐고”. 항상 변태(?)적 관계를 놓치지 않는 박 감독이 던져놓은 화두는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남자는 자신의 직업(경찰)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항상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자기도 모르게 ‘꼿꼿한’ 팜므파탈에게 경도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한다. 중국여자가 생선 비린내를 맡으며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에서 탕웨이는 몇 차례 ‘마침내’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한국드라마에서 보았을 것이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내뱉을 수 있는 뿌듯한 성취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죽음에 대해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탕웨이의 속마음의 표현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홈스쿨링의 한계일수도 있으니. 그가 자신의 말을 들어준 ‘단일한’ 사람이라고 믿으니까. 형사는 한국어를 독학한 이 ‘독한’ 중국여자의 열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저보다 한국어를 잘 하시네요.”라고 말한다.
●마음을 보여 달랬더니 심장을 꺼낸 영화
[헤어질 결심]은 결국은 탐정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청록색의 멜로드라마이다. 남자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심사가 복잡한 여자에게 경도된다. 그래서 그 여자의 손바닥을 만지며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이제는 손이 보드랍다”는 말을 잊지 않고. 여자는 남자에게 립밤을 발라주고 입술을 탐한다. 둘의 관계는 부적절하다. 아내(이정현)는 직감한다. ‘폈네 폈어!“라고. 그런데 이과 출신의 촉은 다르다. 그 촉은 마지막 이주임의 등장 때처럼 항상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한 번 더 보시라. 그러면 다시 들리고 새롭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박 감독은 확실히 그런 면에서 치밀하다. 악취미라고나 할까) 고경표가 ‘월요일할머니’를 찾아가서 사과를 깎아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사과껍질을 얇게 잘 깎지.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이 빨리 오기를 기도해. 그러면 가끔 월요일이 일찍 오는 것 같아.”라고. 박해일이 탕웨이를 위해 중국요리를 한다고 할 때 그의 거실에는 중국어교본과 함께 마르틴 베크 전집이 한곳에 쌓여있다. (감독이 이 영화 찍을 때 좋아한 탐정소설이란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고, 잉크가 물에 떨어지듯 서서히 퍼지는 사람이 있다”
물론, 감독의 영화적 고뇌는 과할 정도이다. 걸작과 집착 사이에서 방황하다 편집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잘려나갔겠지만 여전히 그 단초는 남아있다. [산해경]의 경우는 중국적 신비감과 한국적 드라마의 이질적 결합이다. 아마 ‘산’과 ‘바다’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작품에 구겨놓고 싶은 욕망의 흔적일 것이다. 그래도 녹색의 벽지와 책 표지에서만큼은 인상적으로 쓰인다.
감독은 탕웨이라는 매혹의 여신을 두고, 박해일이라는 엉거주춤한 명탐정의 추리극을 통해 인간본성을 해부한다. 선을 넘을 것인지 말 것인지 아슬아슬하게. 그 심장을 꺼내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유혹일 것이다. 확실히 2022년에 만난 박찬욱의 걸작이다. ⓒ박재환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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