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청년’의 상한선을 정한다면? 입시지옥, 취업난, 생활고, 그리고 지지부진한 연애까지. 각자의 삶에 있어서 청춘의 한때를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청운의 꿈을 품었고,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스스로 담을 쌓으며 달려온 시간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사람들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도 않다. 오늘(2021.7.30) 밤 방송되는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만나보는 단편 두 편이 그렇다. 독립영화계의 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희가 주연을 맡은 [박미숙, 죽기로 결심하다]와 [늦은 휴가]를 보면 특히 누군가에겐 흘러가버렸을 그 청춘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우선 나상진 감독의 [늦은 휴가]를 본다.
● 그해 늦은 여름, 나는 오랜만에 늦은 휴가를 가졌다
늦여름,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선아는 문자를 받는다. 드디어 첫 직장을 갖게 된다. 고시 준비 하느라 모든 것을 끊고 산 세월이 얼마인가. 서른 중반에 겨우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첫 출근을 앞두고 짧은 휴가란 걸 떠난다. 여름이 끝난 바닷가의 황량함. 친구 진향(전수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해본다. 진향은 반가움과 함께 남자를 소개시켜준다. 카페사장이라는 남자, 배우가 되겠다는 완규(우지현)를 그렇게 만난다. 그런데, 완규는 카페 사장이 아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된다. 진향과 선아는 공연장을 찾아 완규의 무대를 지켜본다. 그리고 셋은 웃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29분 짜리 단편 [늦은 휴가]는 취직을 위해 발버둥 쳤고, 이런 저런 경쟁에서 조금씩 뒤처지며 친구와 연락을 끊게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이다. 굳은 심지로 달려왔지만 꿈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만 간다. 가까스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레 옛 친구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 오래된 친구도, 새로운 친구도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내가 봤을 때는 행복해 보였던 사람도,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한다고 느꼈던 순간도 계절의 변화처럼 바뀌어간다.
나상진 감독은 ‘변화무쌍한 마음, 말할 수 없는 상처, 아주 사적인 저항, 그리고 젊음’을 영화 전체에 아름답게 담아두려 했단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선아도, 진향도, 완규도 각자의 삶을 꾹꾹 밟고 전진할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들의 청춘은 이미 지난여름에 지나갔고, 이제 인생의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LATE IN THE SUMMER, FALL’이다. 어느새 가을이 된 것이다. 참, 이 영화는 넓게 보아 퀴어영화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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