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진짜’ 전공을 찾을 때는 ‘진짜’ 고심해야한다. 1957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한 백충현은 ‘국제법’을 선택한다. 국제법이 왜 필요한지는 ‘한일협정’과 ‘독도’ 문제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제법학자인 백충현 교수의 생을 따라간 책이 나왔다. 김수환, 전형필, 최순우, 김환기 등의 전기를 쓴 이충렬 작가가 내놓은 신간이다.
이충렬 교수는 동료들이 판검사로 입신양명을 꿈꿀 때 홀로 국제법 학자의 길을 선택한다. 20대 후반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해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되는 사료인 <관판실측일본지도>를 입수,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밝힌다. 또한 20년 동안 논쟁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 반환 문제에 투신, 맞교환 정책에 반대하며 무조건적 반환을 일구어내기도 했다. 재일 동포들의 지문날인과 강제 퇴거에 저항하고, 위안부에 대한 일본이 책임이 소명되지 않았음을 ‘국제법적으로’ 증명한다.
이 책은 백충현 교수가 국제법에 뜻을 두고, 신혼집 서재에 국제법연구모임을 만들어 후배, 후학에게 국제법의 중요성을 알리고, 자료를 공유하는 오래된 이야기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유엔 고위직 활동까지 마다하지 않은 다양한 ‘한국적 국제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읽으면 몇 가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나게 된다. 독도를 둘러싼 고지도 해법,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이었던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 하이재킹 당한 ‘중공’ 민항기를 둘러싼 숨 가쁜 외교전쟁의 이면을 만날 수 있다.
물론, ‘트럼프가 보여주듯이’ 국제법이란 것이 어떤 프로토콜을 띄고 있는지는 외규장각 반환문제에서 확실해진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 침입해 조선군과 전투를 벌인다. 그들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에 있던 5000여 권의 책 중 어람용 의궤 등 외형적으로 화려한 340여 권을 약탈해서 프랑스 군함에 옮겨 싣는다. 외규장각의 나머지 책은 불태워버린다. 그들이 가져간 책 중 297권이 어람용 의궤였다. 이들은 이를 파리국립도서관으로 보냈다.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93년 YS정권시절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KTX사업권을 두고 이 책의 반환을 비즈니스 카드로 활용했다. 그러나, 국제법과는 상관없는 일들이 20년 이상 이어진다.
책에서 백충현 교수는 거듭하여 “국가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이 행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금의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을 두고, 국제법이 왜 중요한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첫 장은 2007년 치열한 학문의 길을 걷고 유명을 달리한 백충현 교수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2010년 이명박 정권 때 백 교수에서 훈장을 수여한 이유는 “영유권 공고화를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기 때문”이었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김영사, 14000원, 300쪽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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