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를 읽다보면 머저리 같은 임금에 등신 같은 신하들, 그리고 그런 상전에게 전혀 신뢰가 없던 백성들이 어울러 살던 조선이 “왜 하루라도 일찍 망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조선 선조 때가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들이 조선은 물론 명을 칠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하던 일본에 대해 정세분석이랍시고 내놓았다는 논쟁의 극한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쥐같이 생긴 몰골로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못 돼 보입니다”였으니. 어쨌든 일본은 쳐들어왔고 불쌍한 백성들만 도륙된다. 그리고 잠깐의 수습기간. 어이없게도 이순신은 쫓겨나고, 고문당하고, 백의종군한다. 그리고 또 다시 왜군이 쳐들어온다. 정유재란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의 연장이라고도 한다. 바로 그 때, 1597년의 이야기이다. 왜군은 이번엔 조선 땅을 확실히 짓밟아놓을 것이라고 이를 갈았고, 머저리 같은 선조와 등신 같은 신하들은 여전히 이순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바로 그 때이다. 그 이야기가 김한민 감독의 ‘명량’에서 펼쳐진다. CJ가 200억 원을 쏟아 부으며 만들었다는 그 명량! 최민식의 카리스마가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는 바로 그 명량!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조선 땅은 이미 전쟁으로 거덜이 난 상태였다. 왜군은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돌격해오고 있는 상태였다.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조정은 어쩔 수 없이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한다. 그러나, 이미 원균이 칠천량에서 무모한 해전을 펼쳤다가 조선의 배들을 모두 침몰시킨 상태. 이순신이 긁어모은 배는 오직 12척 뿐. 병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 뿐이다. 한양의 ‘등신 같은 왕’이 위태로워지자 이순신에게 교지를 내려서는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재촉할 뿐. 이순신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그리고 남은 병사에겐 추상같은 말을 전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명량 앞바다로 12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330척의 왜군과 피할 수 없는 ‘필사즉생’의 사투를 펼치게 된다.
장수의 충(忠)은….. 백성을 향한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이순신 장군의 기백과 정신은 돋보인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책과 TV드라마로, 그리고 영화로. 어릴 적 ‘성웅 이순신’을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웅 이순신’에서 이순신 장군이 백성들과 함께 거북선을 만드는 장면이 수십 년이 지났지만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최민식의 ‘명량’에서는 거북선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당시 해전의 구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조선의 배는 왜군의 배보다 큰 판옥선이다. 그런데 말이 해군이지 왜군은 –마치 해적선처럼- 근접 백병전에 우위를 보였다. 뛰어난 지략가였던 이순신 장군은 남해 앞바다의 지리를 100%를 활용하여 왜선을 농락했다. 때로는 좁은 수로에서, 물길의 흐름을 활용하여, 조총을 능가하는 화포로 왜군을 박멸하여 그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군사적 성과는 오늘날까지 해군사가의 칭송을 받는 것이란다.
영화 ‘명량’은 그런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해전을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만끽할 수 있다. 올해 개봉된 ‘300:제국의 부활’에서 보여주었던 만화 같은 살라미스 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박감과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물론, 이순신을 모해하고, 등진 조선의 회색분자들도 목도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영화 ‘변호인’의 노무현 변호사(송강호)가 일갈했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래 가장 멋진 대사가 등장한다. 조정의 절대적인 신뢰는 고사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내칠 궁리만 하는 조국/조정이 뭐가 아쉬워 죽음을 무릅쓰냐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자고 이야기하는 아들에게 이순신장군=최민식이 말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한다.”고. 그리고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라고. 조선이 제 때 망하지 않고, 이씨 왕조가 조금이라도 더 연명했던 것은 그런 이순신 같은 위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량’은 두 번은 봐야한다. 한 번은 스펙터클한 재미로, 또 한 번은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위해서 말이다. (박재환, 201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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