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유유상종 혹은 동병상련
정주리 감독의 데뷔작 ‘도희야’는 많은 이야기를 담은 것 같지만 단 한 가지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영화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줌으로써 자신의 영혼도 치유된다는 것을. 너무나 힘든 삶을 사는 두 영혼의 어울림이 영화의 전편을 묵직하게 울려준다.
여학생 김새론, 여경 배두나를 만나다
생수통의 물을 글라스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영남(배두나)은 바닷가 파출소 소장으로 새로 부임해온다. 노인네밖에 없는 외딴 바닷가마을에 사건사고란 것이 뭐 있으리오. 거의 유일한 젊은 남자 용하(송새벽)는 불법체류 동남아 노동자를 데리고 바다 일을 시킨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영남은 도희(김새론)를 만난다. 한밤에 울면서 뛰어가는 도희를, 그리고 친구들에게 맞고 있는 도희를. 어느 날 도희의 온몸이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의붓아버지인 용하와 할머니에게 지속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눈치 챈다. 영남은 새론을 자신의 숙소로 데려와서 머물게 한다. 소녀는 점차 맘의 문을 연다. 도희는 TV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 흉내를 내는 평범한 아이인 것 같다. 그런데, 영남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그 일을 잊고자,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매일 밤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 벌컥벌컥 들이켠 것이다. 불쌍한, 불운한, 불행한 도희와 영남의 기이한 동거. 용하는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은근한 협박을 시작한다.
가정폭력, 동성애, 소아성애, 그리고 제복유혹
영화는 민감한 이야기를 은근하게 풀어나간다. 외딴 작은 어촌에서 벌어지는 불법외노자의 노동력착취는 공동체의 담합 속에 큰 일로 번지지 않는다. 가정폭력과 주취폭력 또한 흔한 일이며 개인사일 뿐이라고 이해될 뿐인 ‘최악의 동네’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이다.
배두나가 연기하는 영남은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 경찰.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일로 ‘조용한 시골’로 좌천된 셈이다. 그 지극히 사적인 일이란 것은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것. (혹은 여자 애인을 두었었다는 과거!) 성적 취향의 자유를 보장하는 2014년 대한민국이지만, ‘대한민국 엘리트경찰이 동성애자 ’라는 것이 공공연히 알려지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남은 자신의 상황을 적극 옹호하거나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어쩌면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도희는 명확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친모는 달아나버리고 그 때문에 의붓아버지에겐 오랫동안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술만 마시면 때리는. 그리고 그보다 더한 할머니의 욕설과 폭력. 그런데 아마도 소녀는 어려서부터 매를 맞으면서 생존의 비결을 스스로 터득한 모양이다. 덜 맞고, 덜 외로워지는 맹랑한 방법을.
용하의 폭력은 분명히 알코올 중독에 기인한다.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폭력이 점증할수록 후과는 클 것이다. 피해자는 피해자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니.
영화는 가족의 담 안에서 이뤄지는 아동에 대한 ‘대담한’ 폭력과 여자경찰에게 덧씌운 편견이라는 ‘은밀한’ 폭력을 적절히 섞어 관객에게 적절한 느낌을 골라가게 만든다. 김새론의 연기가 대단한 것은 도희의 존재란 것은 ‘장기적 가정폭력 피해자’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꽃뱀/ 피해자 코스튬을 연상케 하는 위험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새론의 화려한 감정연기에 배두나의 동성애코드 연기도, 송새벽의 취중열연도 빛이 바랠 정도이다.
분명한 것은 영남이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경찰이 아니었다면, 도희는 그 같은 환경에서 그같이 자라서는 결국 앞날이 짐작되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손을 내미는 자 또한, 구원을 얻기는 마찬가지다. ‘도희야’는 그런 영화이다. (박재환, 2014.5.23.)
도희야 (2014.5.22개봉/청소년관람불가)
감독/각본: 정주리
출연: 배두나(영남), 김새론(도희), 송새벽(용하),김진구(할머니), 문성근(특별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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