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asion Of The Home Snatchers
올 여름 극장가엔 기대작들이 어김없이 대거 쏟아졌는데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대박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허정’이라는 신인감독의 ‘숨바꼭질’이다. 감독보다 주연배우 ‘손현주’가 훨씬 더 유명하다. 하지만 ‘손현주+전미선+문정희’ 등 주연배우 셋을 다 합쳐도 요즘 개봉작품들의 주연급 배우 한 사람보단 개런티가 한참이나 못 미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충격은 올 여름 최고이다. 공포유발심과 작품만족도에서 말이다.
주인도 모르는 세입자
일산의 아파트에 사는 성수(손현주)는 평범한 가장이다. 신도시의 충분히 넓은 아파트와 아내, 딸, 아들. 외제차를 갖고 있으며 커피숍 사장이이니 상위급 중산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난스레 깔끔한 행동을 하는 그에게는 남모를 정신적 고통-죄의식이 있다. 사라진 형 때문인 듯하다. 한편 인천의 허름한 아파트에서는 끔찍한 살인이 벌어진다. 재개발 직전의 서민아파트에 거주민인 한 여자가 괴한의 침입에 잔혹하게 살해된다. 고급아파트와 슬럼화가 진행된 서민아파트의 주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성수는 인천의 그 아파트에 살던 형이 어느 날인가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관리인의 전화를 받고 그곳을 찾았다가 미궁에 빠져들게 된다. 형의 아파트 문 앞에 쓰인 기묘한 기호들. 아파트 곳곳에서 감지되는 불온한 느낌. 그리고 그 불쾌감과 불안은 일산의 아파트에까지 이어진다. 알 수 없는 ‘초인종 암부호’는 자기 집에도 있다.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자신의 생명마저 위험해지는 숨은 자의 습격이 시작된다.
암호, 더부살이, 그리고 공포감
사실 아파트가 아니어도 집 앞 초인종이나 문패 주위에는 한두 가지 기호가 쓰여 있다. 알고 보면 숨은 사연이 있다. 내가 듣기로는 신문 판촉사원의 방문기록이라고도 한다. 영화에서는 ‘거주자정보’라고 말한다. 남자 몇, 여자 몇, 아이 몇 식으로. 그런데 요즘 같은 디지털정보사회에 서는, 그리고 히키코모리가 넘쳐나고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그게 정확한 정보일까.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몰래 숨어들어 일을 저지를 범죄자라면 거주자 정보만큼이나 애완견 보유정보가 더 중요할 듯하다. 벽에 숨어살든 옷장에 숨어살든 냄새는 그놈들이 더 잘 맡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그 알 수 없는 부호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이 숨바꼭질의 공포를 이끈다. 원래 아이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좋아한다. 그들이 숨는 곳은 대개 옷장이나 붙박이장 속이다. 그 붙박이장 뒤편에 우리가 아니, 어떤 틈입자가 숨어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면....
영화처럼 누군가의 집에 잠입하여 붙박이장 속에 숨어 지내며 기생하는 사람들은 사실 무서운 존재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숨은 삶보다 더 큰 물리적 공포심을 안겨주는데 주력한다. 깨끗하지 못하고, 정체를 알 수 없고,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살인마가 어떤 식으로 1층 현관문을 통과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앞에 버티고 서서는 “택배왔어요”라고 말할 것 같은 공포 말이다.
전통적인 공포영화는 알 수 없는 곳에 놀려간 사람들이 격리되면서 겪게 되는 ‘당황스런 상황’을 주로 다룬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도 잘 아는 자기 집에서 낯선 자의 침입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깊이의 공포를 안겨준다. 게다가 알고 보면 아파트란 것이 얼마나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공간인가. 키패드 잠금장치가 일반화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감독은 영화에서 그런 아파트 공포를 맘껏 구사한다.
감독은 기존의 호러영화 문법을 충실히 답습한다. 몽둥이에 맞았지만 영원히 기절하지는 않을 것이며, 칼에 찔렸어도 영원히 엎어져있지만 않을 것이란 사실. 여자와 아이들은 비명만 지르다가 한 번 더 당할 것이고 경찰이 제 시간에 오기보다는 경찰의 등장이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듣도 보도 못한 부동산 호러극이 탄생했다. 가진 자에 대한 가지지 못한 자의 증오라기보다는 '미저리'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의 극단적 정신착란극이 ‘숨바꼭질’이다. 아파트 가장이 끊임없이 청결결백에 시달리는 것은 중산층의 위기감을 드러내거나 혹은 숨겨진 과거에 대한 무의식적 도망의 표현인 셈이다.
어둠 속에 살아남은 새끼악어 한 마리가 눈을 깜빡이면 공포가 속편으로 이어지듯 아파트 어는 집인가 그 옷장 속에는 또 다른 틈입자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박재환, 20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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