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안겨준 1941년 할리우드 흑백영화이다. 영화를 꽤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 책의 원작소설을 읽었다. [레베카]는 대프니 뒤 모리에가 1938년에 쓴 소설이다. 대프니 뒤 모리에는 영국인이다.
소설 <레베카>는 ‘레베카’라는 여인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람들의 기억과 숭모, 질투와 경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은 한 여자의 회고로 시작된다. “어젯 밤 난 멘덜리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어떤 일인지 이 여자는 멘덜리에 대한 악몽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여자는 멘덜리에 왜 갔었고, 왜 멘덜리를 떠났으며, 왜 멘덜리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몸부림칠까.
우선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레베카’가 아니다. 소설에선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주인공은 몬테카를로의 코트다쥐르 호텔에서 미국 밴 호프 부인의 견습 말동무로 머물고 있었다. 이게 당시 무슨 직업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연봉 90파운드을 받으며 유원지의 한 호텔에서 외롭고 적적한 한 유한 마나님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 맡은 일의 전부이다. 미국 아줌마답게 주책떨기 좋아하는, 거들먹거리고, 남의 일에 과도하게 관여하는 타입이다. 이 유한마담 곁에서 시무룩하게, 촌티 풍기며, 세상물정 모르는 어줍은 하녀 아닌 하녀로 서 있었을 뿐이다. 어느 날 이곳에 와 있던 영국 귀족 맥스를 만나게 된다. 맥스는 웬일로 여주인공과 몇 번의 데이트를 하더니 곧바로 프러포즈를 한다.
맥스는 1년 전 아내를 잃고 중심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여주인공은 어제까지 하찮은 수습하녀에서 맥스 더 윈터 부인이 되어 맨덜리의 거대한 저택 안주인이 된다. 신혼여행을 끝내고 멘덜리 저택에 들어온 원터 부인은 첫날부터 저택의 이상한 기운에 주눅 들게 된다. 아마도 새 부인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자괴감과 전 부인에 대한 위축감으로 기를 펴지 못하는 모양. 게다가 멘딜리 저택의 하녀 수장인 댄버스의 존재는 그녀를 더욱 위축시킨다. ‘큰 키에 빼빼 마른 체격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 해골 같은 몸매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움푹 팬 커다란 눈에 안색까지 파리해 마치 두개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와 함께 이 저택에 들어온 고참 하녀이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맥스의 전(前) 부인 ‘레베카’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조금씩 알게 되는 맨딜리의 비밀.
집안 하녀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은 전부,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친척들도 모두 ‘레베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으며, 세상에서 가장 친절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우아했던 맨딜리의 안주인으로 기억한다. 그럴수록 새로 들어온 부인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레베카가 살아생전 이용하던 저택의 서관은 봉해져 있다. 서관은 바다를 향해 있고. 저택의 고급 물건은 모두 이곳에 옮겨져 있다. 호기심 많은 맨딜리의 새 안주인은 점점 금지된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이 집안을 억누르는 어떤 분위기에 접근한다. 그리곤 바닷가 별관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다. 1년 전 어느 폭풍우가 치던 날 레베카는 한밤에 바다에 요트를 타고 나갔다고 폭풍우에 전복되었고. 두 달이 지난 뒤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맨딜리 저택에서 가면무도회가 있던 날, 마침내 비밀의 문이 활짝 열린다.
알고 보니, 레베카는 천하의 악녀였다. 겉으로는 온갖 우아함과 고상함을 내비추었지만 실제는 정숙하지 못한 여인. 맥스는 귀족의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면을 쓴 채 행복한척 연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떤 날, 아내가 부정과 뻔뻔함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한다. 아내 레베카를 죽이고 보트에 태워 바다 속으로 수장시킨 것이었다. 뒤늦게 레베카의 정체와 레베카의 본모습을 알게 된 ‘새 안주인’은 남편 맥스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잠깐의 법정스릴러가 이어지고 범죄의 기억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봉인된다. 끝.
레베카를 잊어라!
이 소설은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에 의해 스릴러의 걸작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조금 내용이 수정되었다. 남편 ‘맥스’에 의한 살인극이 수정된 것이다. 범죄자, 악인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내막이 있었기에 레베카의 죽음은 ‘사고사’로 표현된다.
대프니 뒤 모리에의 이 소설은 샤롯데 블론디의 <제인 에어>만큼이나 유명한, 영향력 있는 소설이 되었지만 발표 직후부터 표절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소설과 작가의 뒷이야기를 찾다보니 아마도 작가 ‘대프니 뒤 모리에’는 양성애적 취향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풍기는 댄버스 부인의 우울함도 그 영향이었으리라. (박재환 2009-1-19)
[레베카] Rebecca, 대프니 듀 모리에 (1938)] [위키 Rebecca| Daphne du Maurier][영화 레베카 리뷰]
[관련기사] How Daphne du Maurier wrote Rebecca (Telegraph 19 Ap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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