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델타 보이즈]나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영화를 보았는지. 썩 내키는 제목은 아니다. 영화포스터도 키치스럽다. 그런데, 영화는 꽤나 재밌고 진지하다. “저예산으로 어렵게 완성시킨 마이너의 이야기”라고 딱 한 줄로 정리할 영화가 결코 아니다. 그 영화를 만든 고봉수 감독이 [습도 다소 높음]이라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제목과 키치스러운 포스터를 들고 돌아왔다. 백승환, 차유미, 김충길, 신민재, 고성완 등 낯이 익은 배우들이 이번에도 저예산 작품에서 마이너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번에는 무려 충무로배우 ‘이희준’과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가 함께 출연한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은 종로의 낭만극장에서 열리는 한 독립영화의 시사회 풍경을 담고 있다. 평소 관객 없는 이 극장은 코로나 때문에 더 손님이 없다. 극장의 하나뿐인 직원(김충길)은 극장주인 사장(신민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자신이 혼자서 매표업무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하고 있으니 월급을 아주 조금만 올려달라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단다. 이런 ‘낭만극장’에 이희준 감독의 신작 [젊은 그들]의 시사회를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출연배우 몇 명, 그 출연배우의 일가친척. 뒤늦게 도착한 영화평론가(전찬일)는 자신에게 커피 하나 서비스 안 해 주는 극장시스템에 부아가 끓어오른다. ‘영화감독’ 이희준은 코로나예방을 위한 방문객등록 문제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다. 영화 속 영화 ‘젊은 그들’은 아마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의 하위버전인 듯하다. 영화상영이 끝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과 GV시간이 이어진다. 감독과 배우가 무대에 오르고, 모든 것이 못마땅한 영화평론가, 그리고 불만에 가득한 관객이 영화에 대한 설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고봉수 감독은 전작 [델타 보이즈]에서는 ‘비끕’ 인생의 남성사중창단 노래 도전을, [튼튼이의 모험]에서는 (전남) 함평에 있는 해체 직전의 고등학교 레슬링 선수들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담았다. 두 작품 모두 유쾌하고, 진지하고, 애처롭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감독은 영화에 대한 거대 담론을 펼친다. 영화란 무엇인가, 극장은 어떤 곳인가,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무슨 말을 전하려고 하는가, 배우는 어떻게 연기를 펼치는가, 관객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그리고, 영화평론가라는 작자는 [영화]라는 커다란 오브제를 앞에 두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낭만극장은 종로 낙원악기상가 건물에 있다. 예전엔 허리우드극장이었고 지금은 실버극장인 모양이다. 퇴락(?)한 극장만큼 등장하는 인물도, 전해주는 이야기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고봉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심지 굳게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배우들도 여전히 열심히, 목숨 걸고 인생 마지막 작품인 듯한 연기를 펼친다. 기존 고봉수사단 배우들의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극중감독 이희준의 허세 가득한 연기와 전찬일 평론가 몸소 보여주는 영화평론가 연기는 영화판에서 길이 회자될 생활연기일 듯.
근데 고봉수 감독은 [델타 보이스], [튼튼이의 모험], [습도 다소 높음]만 만든 게 아니다. [우리 마을]. [갈까부다], [다영씨], [근본주의자] 등 몇 편의 작품이 더 있다. 기대가 되면서도 두렵다. 고봉수 영화의 매력에 더 빠져들까 봐! 과연 그럴까? 믿을 수 없다면 극장에 가서 [습도 다소 높음]을 보든지 OTT에 올라온 감독의 전작을 한번 찾아보시라. 그러면,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의 진정성 철철 넘치는 마이너 스토리에 감동받을 것이다. ▶2021년 9월 1일 개봉/15세 관람가 #박재환 KBS미디어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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