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16-05-23] 이재한 감독이 중국에서 찍은 멜로영화 <제3의 사랑>이 지난 주 개봉되었다. 송승헌과 유역비가 공연하여 화제가 된 이 작품은 중국 인터넷소설이 원작이다. 중국네티즌을 열광시킨 신데렐라 이야기를 이재한 감독이 어떻게 영화로 옮겼을까 궁금했다.
이재한 감독은 1999년 <컷 런스 딥>이라는 왕가위(열혈남아) 풍의 영화로 데뷔했다. 뉴욕의 뒷골목 교포청춘들이 갱단의 겉멋에 빠져들더니 '나빠지거나 죽거나'로 허망한 삶을 끝내는 그런 어두운 느와르였다. 이후 한국에서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멜로와 전쟁영화를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제3의 사랑>은 중국네티즌들이 선호하는 스토리라인과 캐릭터를 갖고 있다. 최근 비(정지훈)가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끈 중국드라마 <캐럿 연인>(다이어몬드 러버)처럼.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잘 생기고, 메너가 아주 좋거나 처음엔 콧대가 무지 높은 재벌 2세 남자가 등장하고, 당돌한 여비서나 말단사원이 어떻게 “쾅” 부딪쳐 사랑을 하게 되고, 갈등을 겪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구조이다.
<제3의 사랑>에서 송승헌은 재벌기업가이고 유역비는 변호사이다. 어쨌든 엮일 운명일 두 사람은 영화 첫 장면에서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있다. 유역비는 이혼도장을 찍은 직후라 하염없이 울고 있고, 메너 좋은 송승헌은 그런 그녀에게 티슈를 전해줬을 뿐이다. 하지만 나중에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이다. 송승헌은 너무 잘 생겼고, 유역비는 너무 예쁘기에 리얼리티는 떨어질지 모른다.
이재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거나, 사랑의 덧없음을 보려주려고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유역비가 연기하는 여자주인공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듯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송승헌이 연기하는 남자주인공도 여자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목숨을 건 그런 사랑은 아니다. 그런 현실적인 주저거림이 이 영화 전편에서 아슬아슬 이어진다.
이재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사거리 커피숍에 송승헌이 앉아서 유역비를 지켜보는/훔쳐보는 장면이란다. 사랑에 빠진 송승헌의 모습은 순애보적이라기 보다는 바보 같다. 하지만 원래 사랑의 첫걸음은 바보같다. 하지만 여자는 비행기에서 티슈를 건네준 그 남자를 기억 못했다. 사랑의 우여곡절에는 그런 사소한 기다림과 기대가 중첩되는 것이다.
원작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세월이 흐른 뒤 상하이. 건널목에 선 여자는 신호대기 중인 차 속의 남자를 알아본다. 강어신(극중 송승헌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 함께 있다. 그 여자도 자기를 알아보지만, 남자는 자신을 보지 못한 채 차가 지나간다. 소설 속 현실인 셈이다.
감독은 해피엔딩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결코 해피엔딩이 아닌 것 같다. 이재한 감독은 제3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동화 속에 있는 것도 아닌. 진정한 그 무언가”라고.
아마도 사랑이란 것이 상대가 있는 경우의 게임이라면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랑(그래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사랑), 한쪽만이 사랑하는 사랑(그래서 아프거나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또 하나의 사랑이 바로 둘이 사랑하지만 이뤄지지 않는(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거리 커피숍에서 훔쳐보는 송승헌의 사랑이 그럴 것이다.
멜로 대가가 만든 영화치고는 드라마적 요소보다는 이미지가 압도한다. 중국의 도시는 현대적인 것 같으면서도 뒷골목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곳을 걷고, 배회하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모든 사람에게 적당한 사연의 장을 제공한다.
송승헌, 유역비와 함께 미쓰에이의 멤버 지아(孟佳, 멍지아)가 출연한다. 하필이면 이 영화 한국개봉 즈음에 지아가 미쓰에이를 탈퇴했다. 유역비의 여동생 역할이다. (감독은 지아가 죽은 것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화를 보시고 확인해 보시길.)
이 영화는 중국에서 작년 9월 개봉되어 7324만 위엔의 흥행수익을 올렸단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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