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공자가 살아야 중국이 산다

2010. 2. 4. 14:51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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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일본 = 콘텐츠강국’이라는 등식이 우리나라 창작인에게 받아들여진다. 서점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는 일본소설, 넘쳐나는 일본드라마 동영상, 그리고 소장하고픈 각종 캐릭터 상품들. 그런데 그 콘텐츠강국 경쟁대열에 중국이 나섰다. 중국은 그 많은 사람, 그 오랜 역사에서 배태된 수많은 ‘스토리중심의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포진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한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중국에선 최근 놀랍게도 ‘공자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언뜻 보아 “돈,돈,돈....”하며 오직 경제성장에만 올인할 것만 같은 중국인을 정신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국책 영화(주선율)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콘텐츠 중국의 잠재력’을 십분 보여준 영화가 되었다.  공자가 누구이고,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소개한다.

공자, 중원에서 길을 잃다

공자는 기원 전(前) 사람이다. 무려 2,500년 전 사람이란 말이다. 그 당시에 무슨 주민등록 제도가 있었고, 개인신용 정보가 제대로 있었으리요. 후대에 만들어진 여러 문서 등을 통해 보자면 공자는 기원전 551년경에 중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사료된다. 그의 생몰연대는 주로 사마천의 <사기>와 공자가 저술‘했다는’ <춘추>를 후세사람이 주석을 붙인 책자를 통해 부분적으로 고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하튼 아주 옛날 사람이다. 그가 살던 시절은 중국역사에서 이른바 ‘춘추(春秋)시대의 말기, 전국(戰國)시대로 넘어갈 무렵’이다. 중원 땅에서 오랫동안 주(周)나라의 천자(天子)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각 지역의 제후들이 제각기 세력을 키우며 ‘보스=황제’를 꿈꾼다. 그래도 주 천자의 지위는 받들어진다. 그게 춘추시대이다. 그런데 제후국 중 제나라 환공의 실력이 엄청나게 확장되면서 ‘천자’까지 얕보는 시대로 접어든다. 바로 ‘전국’시대의 도래다. 전쟁이 날마다 일어나던 시절이란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의예지’ 즉, 도덕을 중시하던 공자로서는 감히 천자를 업신여기는 세파를 크게 우려하여 도덕성 회복을 주창한다. 그는 자기의 학당을 열어 제자를 불러 모아 도덕론을 설파하고, 목민관의 자세를 울부짖은 것이다. 한 나라에서 올바른 정치론을 설파하다가 대접 못하면 제자를 이끌고 이웃나라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뜻을 펼치다 좌절되면 또 다시 짐 싸들고 옆 나라로 가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 그의 도덕론은 ‘넘버 원’이 되려는 제후국 군주에겐 사치스러운 구두선일 것이다. 공자는 그렇게 살다가 숨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중국역사에서 공자는 거듭 되살아나고, 거듭 선양되며 절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라선다. 물론, 모택동의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또 한 차례 공자는 ‘상갓집 개’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또다시 ‘도덕적 상징’으로 주목받게 되며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공자, 아바타를 몰아내다

공자는 지난 달 중국에서 개봉되었다. 중국에선 전국 극장가에서 <아바타>가 돈을 긁어모을 때였다. 중국당국은 서둘러 <아바타>의 상영을 중지시키고 중국영화 <공자>의 상영을 강요한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영화시장의 상황을 아는 사람은 일견 이해할만한 사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바타>가 손해 본 것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오판’과 불법동영상 때문에 할리우드영화사들을 절망시킨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그런데 <아바타>는 한 달도 안 되어 엄청난 중국 돈을 긁어모아주었다. 그러면서 진짜 돈 되는 3D상영은 계속 상영하게 해 주었으니 할리우드 입장에선 명분도 서고 실속도 챙기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환한’ 미래를 보장받은 셈이다. 문제는 바통을 건네받은 <공자>이다. 영화 <공자>는 상영 첫 주말부터 논란이 일었다. 영화사측은 3800만 위안을 벌어들였다고 발표했지만, 전국극장가 수익현황을 체크하는 영화당국의 공식발표로는 2800만 위안이었다. 무려 1000만 위안을 뻥튀기했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차이는 결국 중국영화시장의 어수선한 현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집계방식과 집계대상, 그리고 무엇보다 상영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시스템적인 착시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하튼 이 영화는 중국에선 대박흥행의 기준인 1억 위안을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는 1억 5천만 위안이니 아직은 손해인 셈이다. 하지만 더 벌어들일 것이고 해외 수익도 남아있다. 이 영화가 1억 위안을 넘어선다면 중국 여성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1억 고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감독 후메이는 장예모, 진개가와 같은 이른바 ‘5세대 감독군’이다. 그동안 TV드라마를 주로 연출했다. <옹정왕조>,<한무대제>,<교가대원> 등의 역사드라마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공자, 대작영화로 만들어지다

제작비가 1억 5천만 위안이라면 오우삼의 <적벽대전>보다 많은 셈이다. 할리우드 스타 주윤발의 몸값이 아주 높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공자>의 스펙터클한 제작규모는 짐작할 수 있다. 촬영, 미술, 편집 등 제작 스태프도 화려하고 스펙터클 영화로서 볼거리도 풍성하다.

공자, 논란을 야기하다

  영화 <공자>가 공개되면서 곧바로 논쟁이 일었다. 논쟁은 삼국지 영화에서 나오는 ‘사실과 진실’같은 역사문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가 과연 그런 말을 했을까? 그때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런 사람이 있었나? 같은 역사해석 문제 말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신뢰할만한 2,500년 전 기록이 거의 없는 고(古) 시대 인물의 행적을 고증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로 공자의 어록인 <논어>와 사마천의 <사기>에 서술된 기록에 기대어 영화 <공자>의 맹점을 해부한다. 몇 가지 소개하면 이런 것이다.

- 공자, 손자만큼, 제갈공명만큼 병법을 안다

 영화 <공자>에서는 놀랍게도 <삼국지 적벽대전>에서나 만나봄직한 대규모 전투 씬이 몇 장면 나온다. 노나라와 제나라가 군사적 시위를 목적으로 연 외교회담인 ‘협곡지회’와 공자가 노나라의 권신들을 일소하기 위해 펼치는 대규모 숙청작전인 ‘타삼도 전투’ 등은 중국역사서에 나와 있다. 공자가 그 때 그 현장에서 군사적 전략을 짰는지, 실제 전투 지휘봉을 잡고 칼을 휘둘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확실히 할리우드 영향을 너무 받은 것이 티가 난다. 과연 2500년 전 전쟁의 규모가 그리 컸냐는 것이다. 수백 명 단위의 싸움이 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어쩌겠는가 중국콘텐츠의 진짜 특징은 ‘과장과 허풍의 미학’이니. 공자 집안은 무인(武人) 가계였고, 공자는 줄곧 육예(六藝-활쏘기, 말 타기가 포함되어 있다)를 주장하였으니 영화 속 내용이 전혀 허황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공자, 미인계에 대처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목은 ‘자견남자’(子見南子) 부분이다. 공자가 정치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다 한 번은 위나라 경공의 부름을 받는다. 그곳에서 위경공의 첩(왕비)인 ‘남자’(南子)라는 여인네를 접견한다. 공자의 공식어록집이며 지난 2천 년간 아시아 정신문화의 바이블로 여겼던 <<논어>>에는 이 만남과 관련되어 딱 한 구절이 나온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予所否者 天厭之天厭之”이다.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공자선생이 남자를 보러하니 제자인 자로가 마뜩찮았다. 공자는 맹세하여 말하길, 그런 짓을 했다면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 정말이지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 이게 웬 말인가. ‘남자’가 도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남자’는 당시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여장부이다. 아마도 패리스 힐튼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능가하는 스캔들 메이커였을지 모른다. 영화에서는 늙은 위 경공을 휘어잡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나와  경공의 아들(태자)까지 깔보며 정치를 쥐락펴락한다. 그 시절dp 감히 여자가.... 그러하였으니 세상엔 온갖 나쁜 소문이 나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감히 신성한 종교지도자와 진배없는 공자선생을 은밀히 만난다니 제자들이 펄쩍 뛸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제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고, 어떤 이야기가 나돌았는지 알 수 없다. 공자 선생이 대인배이고, <색계>에서 봄직한 미인계에 감히 놀아날 위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란 여인네가 진짜 공자를 너무나 존경하여 한번 만나보고 가르침을 받고 싶었었다면...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까. 다시 <논어> 문장을 해석하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予所否者 天厭之天厭之” “공자선생님께서 ‘화냥년’ 남자를 만났다니 제자 자로가 불쾌했다. 선생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해명하셨다. 그런 (이상한) 일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하늘이 날 벌 할 것이다.” 혹은 “(그 여자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나쁜 여자 아니다. 만약 나쁜 년이면 하늘이 벌할 것이다. 아니면 하늘도 그런 세평을 싫어할 것이다.)
사실 자견남자’(子見南子)와 관련하여서는 많은 해석이 있어왔지만 그다지 중요 논쟁거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중국여배우 ‘주신’이 등장하면서 조금 에로틱한 상상력이 (적어도 영화 관람객에게는) 주어지면서 ‘성인군자’ 공자의 행동거지에 대한 창의적 논쟁이 인 것이다. 혹시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면 공자 어르신네와 ‘남자’의 대화를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그 여자의 다음 대사는 중국에서도 유행어가 되었으니 말이다.

“당신은 인자애인(仁者愛人-인자로운 사람은 타인을 사랑한다)이라고 했는데 나같이 평판 나쁜 여자도 포함되나요?”

乘(승)과 팔일무(八佾舞) 문제

이건 굳이 번역 문제라기보다는 중국 옛날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만들다보니 생기는 넌센스에 가까운 문제이다. 영화에서 회맹을 앞두고 공자가 제후를 ‘경호’하기 위해 전차를 수배하는 장면이 있다. ‘전차 500승’을 내놓으라고 이야기하는데 자막은 “말 500마리를 내놓으시라고 나온다. 중국 고대사에서 전차를 이야기할 때 승(乘)은 ‘말 네 마리가 끄는 전차 1대’를 의미하는 세트 단위이다. 그러니 전차 500승이라 하면 말 2천 마리를 내놓으란 말이다. 이런 것과 관련하여 또 흥미로운 것은 극중에서 노나라의 권력가 집에서 빨간 옷을 입은 무희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팔일무’(八佾舞)이다. 8명씩 8줄로 64명이 춤을 추는 것이다. 고대 중국예법에는 천자만이 팔일무(64명)를 즐길 수 있으며, 제후는 육일무(6*6=36명), 제후의 신하인 대부(大夫)는 사일무(4*4=16명)의 춤이 공식적으로 허락된 오락의 규모였다. 그런데 감히 신하된 자가 팔일무를 추다니.. 공자선생은 몹시 언짢아서 한 마디 한 게 <<논어>>에 나온다.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선생님이 노나라의 대부 계손씨에 대해 평하길 그 놈은 자기 집에서 감히 (천자가 즐기는) 팔일무를 추게 했다. 그런 짓을 능히 할 놈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공자는 춤추는 것에서까지 규칙을 들먹이는 꽤나 고리타분한 형식주의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 문구이다. 물론, 아주 좋게 해석하여 신하된 자의 마음가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사라고 보면 된다. (영화 보면서 무희들이 몇 명인지 세어보기 바란다)

그 외 이 영화에서는 <논어>에서 나온 몇몇 경구가 공자 입에서 술술 나온다. 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명문이다. 자녀교육에 관심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공자>를 보고 아동용 <논어 만화책>이라도 선물하면 좋을 것이다.

중국에서의 공자, 한국에서의 공자

20년 전 즘 싱가포르에서 한 미국인 틴에이저가 스프레이로 자동차에 낙서를 하여 놀랍게도 ‘외교문제’로 비화된 적이 있다. 길거리에 껌을 뱉어도 거액의 벌금을 문다는 싱가포르에서는 이 미국인 소년에게 태형(곤장을 치는 것!)을 선고했다. 이슬람 사회도 아닌데 말이다. 미국에서는 야만스럽다고 항의했지만 싱가포르는 ‘아시아적 정신문화’를 내세우며 기어이 매질을 했다. 그 때 즈음하여 서구학계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유교적 전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관심의 대상은 주로 ‘한국-싱가포르-대만-일본’ 이었다. 그리고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가 나올 즈음해서 한국에서는 도올의 공자강의가 화제가 되었고 (도올에 대한) 논쟁이 격하게 일었다. 그러다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에서는 몇 년 전에 CCTV에서 우단 이란 여교수가 진행한 <논어심득>이란 논어 강의가 초특급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경제성장과 함께 국민성, 도덕성에 대한 - 쉽게 말하자면, 돈을 버니 가슴 어디 한 쪽이 휑하니 뚫린 느낌- 각성이 일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영화도 나온 것이다. 중국은 국가적 사업으로 전 세계에 ‘공자학당’을 지어 ‘공자를 내세워’ 아시아적 유교도덕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물론 중국어 보급과 중국국가이미지제고가지 겸해서 말이다. 6년 전 서울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280여 개의 공자학당이 운영 중이란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에서 새로운 복권(로또)이 하나 나왔는데 공자를 메인 디자인으로 한 공자복권이란다. 공자 어르신네의 금과옥조 같은 명언을 포함시킨 로또가 발행된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논란에 휩싸였다. 정말 중국스런 발상이다.

참, 우리는 전혀 모를 이야기이지만 중국에서는 영화 속 공자의 발언이 중국 공산당, 혹은 중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수준 높은, 즉, 정치적 함의가 다분히 내포된 많은 부문이 있었단다.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오...” 뭐 이런 공자 선생님의 당연한 이야기가 아주 특별하게 들리는 시대에 우리가 산다는 것이다. 한국도, 중국도 말이다.

공자가 살아야 중국이 살고, 한국이 살고,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박재환 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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