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중국 CSI 납시오~

2010. 10. 11. 14:50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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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역사에 관심 있는 영화팬에게는 흥미로운 영화가 한편 개봉되었다. 홍콩 서극 감독의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이란 작품이다. 서극 감독이야 30년 전부터 홍콩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재간둥이 아닌가. <촉산>(1983)을 필두로 <천녀유혼>, <황비홍>,<영웅본색> 등등 고비마다 신기할 정도로 영화팬의 기호를 사로잡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마구마구’ 양산해온 인물이다. 그가 내놓은 최신 작품은 7세기 무렵 중국을 호령한 여황제 측천무후와 여전히 중국인에게 최고의 수사관으로 기억되는 적인걸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중심처에서 펼쳐지는 황실 대음모극과 CSI 완전범죄 소탕스토리가 이렇게 결합되다니. 놀랍지 않은가.

여황제는 절대 안된다 vs. 반란을 용서할 수 없다

오랜 세월을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수렴청정하던 무측천이 마침내 야욕을 드러낸다.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의 즉위식을 앞두고 엄청난 크기의 대불상이 세워진다. 하지만 여황제의 등장을 꺼려하는 조정의 신료들과 반란세력이 상존하고 있었다. 바로 그 중차대한 시점에 건설 중이던 대불상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공사를 감독하던 고관의 몸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더니 분사(焚死)한 것이다. 이어 수사에 나선 대리사도 같은 현상(인체자연발화 증세)로 불타 죽는다. 고심하던 무측천은 오래 전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신하 적인걸에게 진상조사를 명령한다.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적인걸은 곧바로 수사에 뛰어든다. 무측천이 감시를 위해 곁에 붙인 상관정아(이빙빙)와 대리사의 젊은 수사관 배동래(등초)와 함께. 불이 붙은 것은 서역에서 건너온 괴이한 독충 때문인 것을 밝혀내지만 수사를 진척할수록 거대한 음모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끝내 적인걸은 목숨을 걸고 사건을 해결하고 무측천에게 역사의 순리를 따르라고 직간(直諫)한다.

천하의 악녀 = 무측천

무측천은 서기 624년에 태어났다. (쉽게 대칭시키자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미실보다 한세대(30년) 정도 앞선 인물이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 시절. 무측천은 14살에 당 태종의 재인(才人)으로 입궁한다. 말이 좋아 ‘재인’이지 황제의 수청을 언제 들도 모르고 궁궐 깊숙한 곳에서 숫처녀로 고이 죽어갈 수천 명의 후궁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녀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는데 태종이 시름시름 앓을 동안 바로 곁에서 시중들다 아들 이치(당 고종)와 정이 들게 된다. (아버지의 첩과 눈이 맞았다는 것이다). 태종이 죽자 후궁들은 모두 궁에서 내몰린다. 무측천 또한 감읍사에 비구니로 들어간다. 후세 호사가들은 이를 분명한 ‘페인트 모션’으로 보고 있다. 새로이 욍이 된 이치(고종)는 무측천을 불러들인다. 무측천은 아비(태종)에 이어 그의 아들(고종)의 후궁이 된 셈이다. 무측천은 이치의 총애를 받던 황후를 내쫓고 기어이 정식 황후자리를 차지한다. 당시 궁중음모는 극도로 치열했다. 고종은 장손무기 등 대신들의 위세에 권력이 위태로울 정도였지만 무측천은 이들 대신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로 황태자, 황제 자리에 앉혔다가 내쫓기를 거듭한다. 수렴청정도 분에 안 차서인지 결국 자신이 직접 여황제에 등극한다. 나라이름도 당에서 무주(武周)로 바꾼다. 그녀에 반기를 드는 자에게는 반대파는 무자비한 숙청을 진행하는 공포정치를 펼친다. 이처럼 무측천은 중국역사(正史)에서는 ‘천하의 독녀, 악녀’로 취급된다.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권력찬탈자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는 쪽도 있다. 황제 중심의 고대 계급사회에서는 궁중음모극, 권력쟁탈이란 것은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다. 단지 무측천이 여자였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무측천 시기 신하들은 공포정치에 떨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라는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되었으며 백성들은 살만했다고 한다.

적인걸, 수사는 내가 맡는다

 무측천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과거 등을 통해 신진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했다는 것이다. 적인걸도 무측천 시대를 통해 그의 재능을 백분 떨친 인물이다. 적인걸은 주로 사법 집행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되어있다. 특히 그가 대리승(大理丞)이란 지위에 있는 1년 사이에 무려 1만 7천 명의 안건을 공평하게 해결했다고 한다. 그는 각종 미제사건, 잘못된 판결 등등에 대해 공평무사한 솔로몬의 판결로 칭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판결을 잘 내렸는지 단 한 사람도 그의 결정에 상소한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후대에 <적공안> 같은 책으로 나온다. 네덜란드 출신의 외교관이었던 로베르트 반 훌릭은 적인걸에 매료되어 그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 <탐정 디>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영화개봉에 맞춰 <명판관 디 공: 영화 적인걸 원작소설 세트>과 나왔다. 아마도 300년 쯤 뒤에 등장하는 송나라 때의 판관 포청천과 함께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법 전도사로 평가받는다. 중국에서는 적인걸을 ‘신의 경지에 오른 명수사관’이란 의미에서 ‘신탐’(神探)이라 부른다. ‘신탐 적인걸’은 TV드라마로 수차례 만들어졌기에 중국 사람이라면 ‘가가호호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역사적 캐릭터가 되었다.

진국부, 서극, 그리고 유덕화

이 영화의 시초는 대만출신의 진국부(陳國富,천궈푸)가 먼저 기획했다. 그는 적인걸을 영화로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미스터리가 관객을 사로잡을 것이기에. 진국부는 양가휘가 주연을 맡았던 현대 수사물 <더블 비전>에서 공포와 미스터리를 배합한 새로운 대만영화를 선보였던 영화인이다. 그는 이후 중국과 합작으로 <집결호>, <바람의 소리>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적인걸을 다루며 반 훌릭의 책도 읽어보았지만 자신이 원했던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서극 또한 오래전부터 적인걸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기에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서극은 이 영화를 3D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의 야심은 차기작(신용문객잔 리메이크!)으로 넘겼다.

(** 지난 2008년 4월 중국 갔을 때 찍은 용문석굴 비로자나불 모습 **)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초대형 동상은 120미터로 형상화 되었다. 이 동상은 측천무후의 황제즉위식을 빛내기 위해 건립된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이었다. 실제 그런 동상을 세웠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사한 건축물은 있다. 허난(하남)성 낙양(뤄양)에는 그 유명한 용문석굴이 있다. 크고 작은 불상 10만 여개가 돌산에 조각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비로나사불 (중국식 표기: 卢舍那大佛) 석상이 측천무후를 본뜬 것이라고 전해진다. 전체 높이는 17.14. 미터이다. 지극한 불심을 가졌던 측천무후는 자신의 묘비에는 단 한글자도 새기지 말라고 했기에 불상조차 자신의 얼굴을 본떠 만들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녀를 여전히 광기의 악녀, 최고의 조형물을 만들게 한 야심가로만 기억하는 것 같다.

영화는 서극 감독의 재간을 최대한 살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엄청난 규모의 동상, 그리고 고스트시티(鬼都)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 장면은 서극 표 액션의 최종 결과물인 듯하다. 적인걸을 연기한 유덕화나 양가휘, 유가령의 연기에서는 완숙미가 느껴지고, 그동안 예쁘기만 보였던 이빙빙에게서는 왕년의 임청하까지는 안 가더라도 왕조현의 한창때를 떠올리게 하는 포스가 느껴진다. ('상관정아'라는 인물은 상관완아(上官婉儿)라는 실존인물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이 여자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음울한 ‘귀도’에서 벌레의 비밀을 알려주는 인물은 홍콩영화팬에게는 반가운 얼굴이다. 변신하기 전에는 오요한(吳耀漢)이, 변신 이후에는 태적라빈(泰迪羅賓)이 연기한다. 두 사람 다 서극이 신인감독일 때부터 수많은 영화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던 코믹연기의 지존들이다. 그들도 참 많이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박재환,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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