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월동화] 꿈같은 홍콩에서의 몇날 밤 (이인항 감독 星月童話 Moonlight Express,1999)

2008. 2. 23. 10:02홍콩영화리뷰

반응형

(박재환 1999.11.4.) 오랜 만에 홍콩영화를 극장에서 내 돈 내고 보았네^^ (99년 작성 리뷰!) 이 영화를 비디오 나올 때까지, 혹은 케이블TV에서 방영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조급하게 달려가서 본 이유가 있다. 물론 장국영 때문에 본 것은 아니고, ‘음악’ 때문이다. 영화에 삽입된 비트가 강한 곡이 끌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인항이 감독했다. 며칠 전 채널 브이에서 대만 가수 장청방의 새로운 뮤직비디오 <選擇結束>을 보았는데 그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사람이 바로 이 이인항이란 사람이다. 우리나라엔 이연걸 주연의 <흑협>으로 소개된 감독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액션’쪽이겠지 싶어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팜플렛 보니 이인항 감독은 허안화 감독 밑에서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87)의 조감독을 했단다. 이 영화 제작진 명단에 허안화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난, 의외로 감독 이름보고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잘 갖는 사람이라서 –;)

자막이 오르자, 황백명이 제작진 이름에 올랐다. 얼마 전 이 사람이 하세편(賀歲片,설 영화)을 새로 만들 것이며 장국영이 출연할 것이라고 언론에 흘렸고, 장국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단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일본과 홍콩의 합작이다. 이제 홍콩이 혼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뻔한 줄거리, 뻔한 소재, 뻔한 배경, 뻔한 배우..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오는 것은 뻔한, 혹은 뻔뻔한 이른바 ‘또 다시 그렇고 그런’ 홍콩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눈이 부쩍 높아진 대한민국의 영화팬들은 홍콩영화라면 옆 극장 프로가 매진되었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보는 심심풀이 대타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개봉 첫째 날은 열성팬들의 성원으로 매진사례가 생길 수도 있지만-이젠 그런 경우조차 없다!) 그럼, 이대로 홍콩영화의 영화(榮華)가 물거품처럼 꺼져버리는가? 물론 아니다. 홍콩영화도 나름대로의 활로를 찾아 나섰고, 이런저런 영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미국 따라하기이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 <용가리>처럼, 저예산, 좁은 내수시장으로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아예 영화를 만들 때 홍콩, 동남아, 중국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시장을 넓혀, 일본을 상대로 한다. 그래서 금성무를 동원하든지, 아니면 이 영화에서처럼 일본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 적어도 일본에서의 흥행은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영화제작의 발언권은 조금씩 외국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대만영화가 그런 식이다) 이는 뭐, 우리가 보기엔 우려할만한 현상 아니냐겠지만, 홍콩 입장에선 아주 긍정적인 세계화 추세인 것이다. 홍콩영화에 우리나라가 끼어든 것도 몇 편 있다. <언픽스>나 <금성무의 캘리포니아>? 정도. 그러나, 홍콩인은 아직 한국시장을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요즘 와서 중문 웹사이트를 보니 우리나라 여자 탤런트 사진 올리는 중국애, 홍콩애들이 많이 생긴 걸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애들이 서기나 주인, 장국영, 진혜림 사진 챙기듯이 홍콩애들도 최진실이나 한고은, 송채현 같은 애들 사진을 모아 자기 홈페이지 꾸미는 것이다. 아직 정우성이나 안성기 같은 배우사진 모은 것은 못 보았다.–; 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우리나라 영화계 돈줄이 언젠가는 홍콩으로 흘려들어가서 ‘이명세 감독-장국영 주연’, 혹은 ‘진가신 감독-한석규 주연’, 아니면 ‘박재환 각본-왕가위 감독-장국영 여명 양조위 기타 등등 몽땅 주연’.. 이런 영화도 쏟아지겠지… 자 쓸데없는 소리 작작하고…

어쨌든 이 영화는 일본자본을 끌어들이고, 일본배우 끌어들이고 만든 홍콩 영화이다. 북경 표준어는 거의 – 웅얼대는 것 빼고는 한 마디도 안 나오고, 전부 광동어, 일본어로 채워졌다. 가끔가다 생큐, 익스큐즈 미.. 같은 영어도 나오고…

이 영화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총 쏘고 달리는 액션에 대한 기대 때문이거나, 장국영의 개인적 카리스마, 히토미 역의 일본배우 다카코 토키와의 풋풋한 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정도의 밑천이라면 개봉 다음 주에 바로 간판 내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드라마가 있다. 그것도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로맨스, 우연, 사랑, 스쳐지나가는 하룻밤의 사랑, 애절한 기다림, 갑자기 다가온 그 사람, 그리고 말려드는 사건. 등등. 이러한 줄거리는 바로 흥행의 제 1요소인 것이다.

장국영은 알려진 대로 1인 2역이다. 한 사람은 동경에서의 깔끔한 다쯔야. 그는 곧 히토미와 결혼할 것이다. 그리고 홍콩으로 부임하여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죽는다. 혼자가 된 히토미. 히토미는 살아생전 함께 홍콩의 야경을 보기로 약속했었는데. 그래서 혼자 홍콩에 간다. 다쯔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녀의 눈 앞에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키스를 한다.. 아아.

여기서부터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장국영의 매력은 깔끔해도 멋있고, 수염을 좀 길려도 멋있다는 것이다. <영웅본색>이후 최고로 멋진 경찰 – 비록 의심이 좀 가는 비밀경찰 역이지만 – 로 나왔다. 이제부터 누명선 홍콩 비밀경찰 가보역의 장국영과 옛 연인의 그림자라도 찾아볼까 홍콩으로 날아온 히토미가 위험스런 사랑의 도피행각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아마 그러한 숨 막히는 극한 상황에서의 사랑이 더욱 낭만적이고 영화다울 것이다.

장국영(56년생)도 이미 마흔 넷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장국영의 최근 사진을 유심히 보면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영웅본색>이나 <패왕별희>에서의 인상이 너무 짙어서 그렇지 장국영만큼 내적인 연륜이 쌓인 홍콩배우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름답게, 꽤 점잖게 무게 있게 늙은 셈이다. 장국영이 이미 늙었다니~~~~ 세월은 성룡만 비켜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뒷부분에서 장국영의 처형(아내의 언니)으로 나오는 양자경이다. 양자경은 말레지아 화교이고 영국에서 공부한 배우이다. 이 영화에서는 장국영과 좀 의심 가는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는 역으로 나온다. 장국영처럼 위험한 비밀경찰 출신이고, 장국영의 아내가 그런 장국영의 위험한 직업이 싫어서 자살했다고 히토미에게 알려준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배우로는 이찬삼이 있다. 우리나라엔 <메이드 인 홍콩>말고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지만, 이 배우도 홍콩배우답게 지난 3년 동안 수십 편의 영화에 다작출연했다. 이 영화에선 마작 장면에서 수초간 후다닥 지나간다. 이찬삼 팬에겐 복 받은 셈. 멀쩡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의 해결구도 -장국영이 누명을 벗는 것- 는 여지없이 홍콩액션 영화임을 증명해 보인다. 그러니 너무 많은 기대를 말고. 차라리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같은, 역시 다들 짐작하는 라스트 씬이지만 그래도 멋있고 여운이 남는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교훈하나. 영화 첫 장면은 히토미와 그의 친구가 동경의 고가도로를 달리며 즉석카메라로 찍는 장면이 있다. 운전 중에 서로 장난치며 말이다. 그리고, 동경의 장국영이 운전하다가 핸드폰 벨 소리에 “어어..”하다가 “꽝!”하고는 죽었다. 운전 중에 딴 짓 절대 하지 말라는 교훈.

연애하는 사람들… 주말에 볼 것 없으면, 할 것 없으면 두 손 꼭 잡고, 가서 볼만한 영화. 그리고, 어디 멋있는 곳 찾아가서 열심히 사진 찍어보는 낭만도 즐겨보길. (박재환 1999/11/4)

[성월동화|星月童話] 감독:이인항 출연: 장국영, 토키와 다카코(常盤貴子), 양자경 (Moonlight Express,1999) 한국개봉: 1999/8/2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