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여명과 장백지의 만남

2008. 2. 17. 21:56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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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2002/8/27]  꼭 수준높은 영화 팬만이 아니라 평균적인 문화인-그러니까, 1년에 교과서 말고도 <느낌표>에 소개되었던 책 한 권 정도는 읽는 사람-이라면 홍콩영화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아무리 애둘러 말하더라도 결론은 결국 '기본도 안되어 있는 한심한 쓰레기'라는 것이다. 그러한 경향성을 좀더 세분화하기 위해 '왕가위 영화를 제외하면...'이라는 조건을 붙인다든지, '오우삼이 활약하던 시절엔 작가영화란 것이...'어쩌구하는 따분한 이야기를 첨가한다. 이연걸이나 성룡이 짐싸들고 나가버린 홍콩은 사실 엄청난 경제난에 허덕인다. 실업률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으니 잘먹고 열심히 일하던 시절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보던 홍콩식 오락영화가 오늘날에도 잘 팔리기를 기대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홍콩영화의 몰락에 대해서는 한국의 영화기자나 영화평론가들이 '찜'해놓은듯 똑같은 분석을 한다. '창의력 결핍', '자기복제반복의 종말' 등.

사실, 지난 몇년동안 홍콩에서 홍콩영화를 지킨 것은 왕가위도 주성치도 성룡도 아닌 왕정 감독이었다. 왕가위 영화는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운동권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천민해외매판자본의 사생아'에 불과할 뿐이고, 성룡이나 주성치 이름 달고 나온 영화란게 그렇게 홍콩영화 자체를 부흥시키는 땔감이 되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왕정 감독은 그 누가 '머라캐도', "내 영화는 홍콩사람들이 좋아하고 홍콩영화산업발전의 마지막 보루"라고 큰 소리친다. (왕정 감독 영화를 홍콩영화평론가들은 '라지띠엔잉', 즉, '쓰레기영화'라고 총칭하는 경향이 있다)

<발렌타인 데이>는 끝없이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홍콩영화판에서 왕정이 내던진 또한편의 그렇고그런 작품에 불과하다. 1980년대초에 영화판에 뛰어든후 20년동안 그렇고그런 홍콩영화를 양산해온 왕정에게는 '흥행영화'란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이야기거리에 홍콩의 그 많고많은 스타들중 스케줄 맞는 사람 적당히 캐스팅하여 이렇게저렇게 믹싱하면 그냥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홍콩의 그 한심한 영화평론가들이 알아서 홍보해줄 것이고, 먹고살기 바쁜 홍콩사람들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극장에서 웃고 즐기면 대박이 되는 것이다. 그게 VCD로 인터넷에 오르면 저멀리 한국에서도 열성팬들이 기꺼이 사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창의력 결핍', '자기복제 반복의 종말'을 또 보았다. --;

이 영화의 홍콩 원제목은 <정미대화왕>(情迷大話王)이다. '정미'는 껄떡쇠, 플레이보이 정도의 뜻이고, '대화왕'은 허풍쟁이, 뻥쟁이 정도의 뜻이다. 주인공 여명은 엄청난 '구라'의 소유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페에서 '설'을 풀고 있다. "영국에 유학할때 난 축구화도 없었지만 열심히 뛰었지. 친구 하나가 패스도 제대로 못했지. 어느날 그 친구에게 패스를 가르쳐주었지. 나에게 축구를 배웠던 그 친구는 내 여자친구까지 빼앗아갔지. 누구냐고? 저기 나오군." 그때 TV에서는 '베컴'의 경기 장면이 나온다. 그럼 듣고 있던 사람이 "꺄~악"한다. 여명의 직업은 부동산중개업자. 그는 그 번지르한 '말빨'로 수많은 계약을 성사시키며 친구와 동료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한다. 그런데 이 날 여자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게 된다. 같은 날 장백지에게도 대사건이 벌어진다. 장백지는 믿었던 자신의 남자친구가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가장친한 여자친구랑 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물론 여명과 장백지는 '홍콩영화답게'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처음 마주친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명은 엄청난 '부자'행세를 하게 된다. 장백지는 진실한 사랑을 원하고 여명은 이젠 정직하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피노키오가 되어간다.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엎치락뒤치락 소동과 오해, 갈등의 시간이 지나가고 티벳의 사원에서 두 사람은 진실된 사랑을 확인하게된다. 뭐, 그런 이야기.

왕정 감독은 욕심낼 필요도 없이 이들 두 청춘스타의 연애담을 술술 잘도 풀어나간다. 관객들도 왕가위 영화같이 복잡한 스토리보다는 상큼하고 속보이는 이런 스타일에 더 빠져든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장개봉되었다지만 실제 극장을 구해서 개봉이 실현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홍콩영화에 왕정감독 작품에, 여명 출연이라는데.. 누가 볼 것인가? 여명 팬은 보겠지 --;) 그래도 무척 보고 싶어서 비디오 출시를 기다렸는데.. 비디오도 출시되었다는데 도통 동네 비디오가게에 없어서.. 그러다가 지난 주말 HBO에서 방송되기에 깔깔대며 봤다.

때로는 왕정이 왕가위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만큼이나 그냥 키보드 두드리면 리뷰 하나가 끝나기 때문에 말이다.

왕정의 인터뷰를 보니, "홍콩엔 영화평론가다운 영화평론가가 없다. 전부 연줄이나 관계로 이어져 있다." 뭐 그런 이야기도 했었네.. --;

여명은 여전히 여명스럽고, 장백지는 당연히 장백지답다. 보세요. 재미있네요.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를 하나 소개하자면... 장백지가 그런다. "(고산지대인) 티벳은 공기가 희박해서 연인이 키스할 때 중간에 세 번은 쉬어야한대요." 정말일까?

발렌타인 데이 (2001) 情迷大話王
감독: 왕정
출연: 여명, 장백지, 오맹달
홍콩개봉: 2001/4/6 
한국개봉: 200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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