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든 킹덤 -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 성룡과 이연걸이 싸운다면 (롭 민코프 감독 The Forbidden Kingdom, 2008)

2019. 8. 3. 10:28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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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8-5-7)   이 영화 수준과 딱 맞는 입씨름이 있다. ‘성룡과 이연걸이 무술대결을 펼친다면 누가 이기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의 원천은 ‘성룡과 이소룡의 대결’이다. 그리곤 최근에 ‘성룡과 견자단이 싸운다면?’ 이라는 영화팬들의 소박한 가상대결도 있다. ‘돈 킹’ 같은 사람이 나서서 꾸미는 이종격투기 프로모션도 아니면서 이런 리얼 액션 스타들의 가상대결 구도는 영화 제작자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조합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성룡과 이연걸을 더블 캐스팅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계속 어긋났다. 그리곤 마침내 할리우드 자본으로 불세출의 두 쿵푸 스타의 영화 속 대결이 성사되었다. 바로 롭 민코프 감독의 <포비든 킹덤>이라는 영화이다. 성룡과 이연걸의 대결에 롭 민코프가 메거폰을 잡았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서유기>를 다룬 영화라고 알려진 영화가 <포비든 킹덤>이라는 제목으로 내걸린 것도 참 특이하다.


이야기는 이렇다


  미국 보스톤. 널리 알려진 LA의 차이나타운이 아니라 보스톤의 차이나 뒷골목인 것도 흥미롭다. 여기 홍콩 쿵푸 영화 광팬 백인 청년이 하나 있다. 매번 중국 골동품가게를 찾아가 할아버지에게서 쿵푸 DVD를 빌어보는 소년이다. 그의 방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고 벽에는 왕년의 쇼브러더스 영화포스터가 붙어 있다. 소년은 홍콩 액션영화를 보면서 아마도 환상의 액션 히어로의 꿈을 키웠는지 모른다. 물론 밖에서는 놀림당하고 왕따 당하는 신세일 테지만 말이다. 어느 날 우연히 골동품 가게에서 신비로운 물건을 건네받게 된다. 그 옛날 손오공이 갖고 놀던 바로 그 여의봉이다. 골동품 할아버지는 여의봉을 원래 주인에게 꼭 돌려줘야한다는 말을 남긴다. 이제 소년은 여의봉을 손에 쥐고 미국 보스톤에서 시공간을 건너뛰어 ‘희대의 모험’을 펼치게 된다. 물론 소년은 이 모험을 거치면서 정통 쿵푸를 배우게 되고 책임감을 만끽하는 ‘남자’가 될 것이다.

 성룡과 이연걸, 합쳐서 100살의 액션 필살기


  [정무문]에서 이소룡에게 두들겨 맞는 대역스타 등을 거치면서 오랜 세월 무명의 설움을 톡톡히 맛보았던 성룡은 [취권]을 전후하여 불세출의 쿵푸 스타가 된다. 그리고 지난 30년 가까이 홍콩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아시아 출신 영화배우가 된다. 그는 초창기에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하다 한 차례 좌절도 맛보았지만 아시아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뒤 [러시 아워]로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미국에서도 각광받는 스타가 된다. 그런데 이미 그의 나이는 액션 스타로서는 은퇴할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연걸도 마찬가지. 어린 나이에 소림사 무술대회 5연패의 위업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진출했고 홍콩에서 수많은 영화를 찍고, 일찌감치 미국에 진출했지만 거의 비슷한 포맷의 영화에서 자신의 능력을 ‘남발’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 중화권 출신의 배우들은 아마도 자신만의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고유 콘텐츠를 활용하여 중국의 혼을 세계에 심고 싶다는. 구체적으로는 소림사를 배경으로, 삼국지 이야기를 통해 우국충절과 애국애족의 중화 혼을 만방에 떨치고 싶었을 것이다. (나쁠 것 무엇 있을까. 청바지 입고 성조기 휘날리는 팍스아메리카가 이제 태평양 건너 왔을 뿐일 텐데) 성룡은 올해 55살. 이연걸은 45살이다. 합쳐서 100살의 노익장이 이제 중화 혼을 떨칠 준비가 된 셈이다.

 

 그런데 미국영화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포비든 킹덤]은 중국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이다. 헐리우드는 어떻게 중국 콘텐츠를 활용하여 박스오피스 정상에 이 영화를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할리우드 체제의 승리이며 상상력의 발현인 셈이다. 롭 민코프 감독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과 진짜 온가족 패밀리 무비 [스튜어트 리틀]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에게선 중국의 그림자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각본을 쓴 사람이 흥미롭다. 시나리오를 맡은 존 푸스코는 16살에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방황을 했다. 수많은 경험을 했는데 그중에는 공장 노동자 경력과 블루스 뮤지션이라는 것도 있다. IMDB를 보니 ‘본 조비’의 친구라는 정보도 있다. 여하튼 특이한 경력을 쌓은 그는 대학에서 시나리오를 배운다. 그의 시나리오 작품으로는 서부극 [영 건]이나 [히달고] 등이 있다. 이 사람 의외로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중국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서유기>는 물론이고 [노자 도덕경]까지 이야기할 만큼 동방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다. 물론 이소룡과 쇼 브러더스 쿵푸영화 계보는 꿰뚫고 있고 말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열정에 ‘패밀리’ 개념이 탑재된 모양이다. 게다가 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쿵푸를 배웠다고 한다. <포비든 킹덤>은 돈황 근처에서도 촬영이 이루어졌다. 존 푸스코는 돈황에 매료되어 귀국 후 아내에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으면 돈황의 한 동굴에서 수도하고 있는 줄 알아라”라고 이야기했단다. 동방문화에 매료되는 서구인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표준적 액션영화로 각광받는다. 굳이 쿵푸액션영화의 정석이 아니더라도 미국적 이야기 방식을 따른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어린아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온갖 모험을 하게 되고, 친구를 사귀게 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부지 쿵푸 팬 소년은 성룡과 이연걸이라는 기라성 같은 쿵푸대가에게서 꿈에 그리던 쿵푸를 배우게 되고 악당을 물리치고 세계평화를 지킨다는 전형적인 액션형 성장드라마이다.

그래도 중국문화 콘텐츠


  성룡과 이연걸이 출연하고 악당 두목으로는 추조룡이 등장하고, 중국에서 세계진출을 노리고 유역비와 이빙빙을 내세운 이 영화는 미국시장 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거대시장 중국도 노리고 있다.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포덕희(피터 파우)와 홍콩 액션영화의 대부 원화평이 무술감독으로 동참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는 [쿵푸의 왕](功夫之王)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미국소년 제이슨(마이클 안가라노)이다. 성룡과 이연걸은 제이슨의 모험이 성공리에 무사히 끝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이다. 물론 미국과 아시아에서의 흥행성공도 보장하기 위한 캐스팅이다. 사부나 부모의 복수를 한다는 쿵푸영화의 뻔한 내레이션 벗어났지만 고수가 되기 위해 밑바닥부터 도제수업을 한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도 유효하다. 물론 시간 관계상 제이슨이 슈퍼액션히어로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홍콩 액션 팬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성룡과 이연걸의 대결 씬이 있다. 너무 짧아서 아쉽지만 말이다. 견자단만큼이나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는 배우가 바로 추조룡(예성)이다. 여기에 중국영화배우 유역비와 이빙빙이 세계시장을 노리고 '금연자'와 '백발마녀'라는 유명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의 역할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장쯔이처럼 해외시장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기는. 성룡과 이연걸의 조합은 성공적이다. 미국에서는 2,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개봉 첫 주말 흥행 탑을 차지했다. 중국에서도 이미 1억 5천만 위안을 벌어들이며 속편 제작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대만과 홍콩에선 우리나라에서처럼 헐리우드 영화 [아이언맨]에 훨씬 뒤처진다. 성룡과 이연걸의 약발이 중국에선 그나마 통한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이 영화 특수효과 작업에 한국 업체가 참여했다고 한다. 아마도 알게 모르게 우리는 [디 워]나 [중천] 등의 영화에서 특수효과의 힘을 키운 모양이다. 미국은 중국이란 큰 우물에서 콘텐츠를 건져내고 있고, 우린 그걸 분칠하고 있다. 영화란 것은 참 재미난 산업이다.

   참, 그리고 이 영화감독 롭 민코프가 얼마나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문화를 사랑하는지는 그의 아내를 보면 알 것 같다. 작년 롭 민코프는 공령화(孔令華)라는 중국여자와 결혼했다. 이 여자가 공자의 76대 손이라서 중국에선 화제가 되었다. (박재환 20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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