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첵] 오우삼의 미래파 액션

2009. 1. 6. 21:02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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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홍콩에서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의 이른바 '홍콩 느와르'로 휘황찬란한 업적을 남겼던 오우삼 감독은 1992년 [첩혈속집](辣手神探)을 마지막으로 홍콩에서의 작품 생활을 종료하고 할리우드로 활동 근거지를 옮긴다. 할리우드로 건너온 오우삼 감독, 즉 존 우 감독은 [하드 타겟]과 [브로큰 애로우]라는 작품으로 미국 영화팬에게 색다른 홍콩식, 오우삼 스타일의 액션을 선보였다. 그 후 그는 계속하여 액션 무비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2]로 인기감독으로 부상한다. [윈드토커]는 제작사 MGM을 파산위기로 내몰 만큼 실망스런 작품이었지만 [페이첵]에서 다시 한번 오우삼의 실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페이첵]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마이어리티 리포트]까지 미래세계에 대한 유니크한 상상력을 발휘한 필립 K. 딕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영화화에는 이미 브래트 래트너나 캐슬린 비글로우가 감독 물망에 올랐었고, 거대한 음모에 빠져든 주인공 제닝스 역에는 맷 데이먼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오우삼과 벤 애플릭에게 돌아간 것이다.

필립 K. 딕의 명성 때문인지 이 영화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팬들은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 방식의 미래구상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스티븐 스필버그 스타일의 나이브한 SF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우삼의 실력으로 보면 [토탈 리콜] 스타일의 팝콘 무비가 될 것임에는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는 [윈드토커]보다는 나은 흥행성적을 보이긴 했지만 필립 K. 딕도, 리들리 스콧도, 스필버그도 아닌 여전히 '오우삼' 작품다운 액션 스릴러가 되었다.

미래 세계. 하이테크 기업의 분해공학전문가 마이클 제닝스(벤 애플렉)는 거액을 받으면서 첨단기업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해 준다. 그가 하는 일은 첨단 제품을 완전히 분해하여 그것의 문제점 등을 찾아내어 더 나은 제품으로 만들어주는 독특한 첨단직종 종사자인 것이다. 마이클 제닝스는 이 노동의 대가로 엄청난 보수를 받으며, 맡겨진 과업이 종료되면 고용한 기업 측은 특별한 장치로 그의 뇌 구조에 있는 작업 기간동안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첨단기업 알콤 사로부터 엄청난 보수를 받기로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는다. 이전의 계약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 2~3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3년의 장기 프로젝트라는 것이었다. 그가 무슨 일을 수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3년 뒤, 그는 그 동안의 기억이 삭제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가 받기로 했던 엄청난 액수의 돈은 받지 못하고 단지 봉투 속의 자질구레한 물건만이 그의 3년 작업의 보수였다.

이 영화의 묘미는 봉투 속에서 등장한 담배, 선글라스, 라이터, 키, 쇠구슬 등의 소도구가 과연 무슨 용도에 사용되는 것인가 이다. 마이클 제닝스는 알콤의 일을 마친 후 알콤에서 보낸 킬러와 연방정부측의 조사를 동시에 받는다. 그가 왜 이런 생사를 건 추격전에 내몰리게 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도망 다닌다. 위기 일발의 순간, 그는 마치 '사전에 다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봉투 속에 준비된 소도구를 하나씩 꺼내어 위험을 탈출한다.

마이클 제닝스, 아니 필립 K. 딕의 소설의 핵심은 바로 '미래를 아는 자의 탁월한 선택'을 다루고 있다. 마치 맥가이버처럼 소도구를 활용하던 마이클 제닝스의 능력은 바로 그가 알콤 사에서 뭔가 이와 관련된 특별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남의 패를 알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만큼 싱거운 일도 없겠지만 제닝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 상태에서 자신이 과거에 관여했었던 어떤 과학적 성과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재미있을 듯 하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원작에서 이야기하는 수세기 이후의 미래상은 단지 겨우 몇 년 뒤의 근미래로 앞당겨진다. 그래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자기부상자동차나 각종 최첨단 장치의 미래 모습은 없다. 세계를 삼키려는 사악한 기업주가 가지고 있는 무기도 결코 최첨단 미래형은 아니다. SF영화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오우삼 감독은 필립 K. 딕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우선적으로 미래 감각을 줄이는 작업을 하였다. 오우삼 영화는 앞으로 얼마나 더 바뀌게 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어설픈 예측보다는 지금과 거의 유사한 미래의 한 순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영문도 모른 채 쫓기는 '재수 없는' 남자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특징은 그가 좋아한다는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을 충실히 따른다. 우선 죄 없는 한 남자가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어 쫓기고 한 여자의 도움으로 자신의 누명을 벗어나간다는 형식은 히치콕 스릴러의 대표적인 구성. 이 영화에선 히치콕의 [이창],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 [Strangers On a Train], [새], [39계단], [Wrong Man] 등의 영화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오우삼은 SF를 찍었다기 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가진 액션 스릴러에 더 가깝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홍콩 시절의 영화에서 볼 수 있던 비장미 넘치는 남성들의 의리 대신 최신 할리우드가 제공할 수 있는 미래와 첨단이 범벅된 액션물이 바로 [페이첵]인 것이다.

밴 애플릭은 촬영장에서 곧잘 스태프들 흉내를 내곤 했다고 한다. 오우삼 감독의 억양(주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영어억양)을 흉내내기도 했는데 오우삼 감독이 굉장히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킬 빌]에 이어 [페이첵]에 출연한 우마 서먼은 미국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우삼 감독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오우삼 감독 작품이 너무 폭력적이고 피가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액션 작품은 바로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라고 했다. [와호장룡]은 피 한 방울 안 나오면서도 우아한 액션을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 촬영 스케줄을 아주 타이트하게 진행시켜야했다. 특히 카 체이스 장면의 촬영은 아주 촉박했다고 한다. 밴 애플릭과 우마 서먼이 BMW제 모터사이클을 타고 추격전을 펼칠 때 우마 서먼이 헬멧으로 추격자를 따돌리는 장면이 있다. 촬영 일정상 더 이상 추격전을 찍을 수 없어 즉흥적으로 끝내 버린 추격전이었단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즐거웠던 장면이다.  ( 박재환 2004/2/1)



페이첵 Paycheck
致命報酬(홍콩) 記憶裂痕 (대만)
감독: 오우삼
주연: 벤 애플렉, 애론 애커트, 우마 서먼, 마이클 C. 홀, 에밀리 홀름즈
한국개봉: 2004/1/20
홍콩개봉: 2004/1/22
http://www.imdb.com/title/tt0338337/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7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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